- 현대 건축의 단조로움과 현대 철학의 난해함은 대중의 무지 때문이 아니라, 전문가 집단이 인간의 직관적 느낌을 평가 기준에서 배제했기 때문입니다.
- 설계와 제작의 분리, 그리고 효율성만 앞세운 모더니즘의 독선은 건축과 학문을 그들만의 언어로 가득 찬 폐쇄적인 컬트로 만들었습니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처럼 모든 분야에 동일한 엄밀함을 요구할 수 없기에, 우리는 이제 '두루뭉술하지만 소중한' 대중의 목소리와 감각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수많은 건물 사이를 지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언제부터인가 도시의 풍경이 참으로 밋밋하고 지루해졌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거대한 유리 상자 같은 빌딩들, 정감 없는 직선의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가득하죠. 대중은 직관적으로 이러한 건물들이 별로라고 느끼지만, 막상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습니다. "세계적인 거장이 설계한 훌륭한 작품인데, 내가 건축을 잘 몰라서 그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뿐이겠지"라며 스스로의 감각을 의심하곤 합니다.
과연 우리가 전문 지식이 없다는 이유로 좋은 건축을 판단할 자격이 없는 걸까요? 저는 최근에 읽은 건축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의 저서 『더 인간적인 건축』에서 이 질문에 대한 아주 통쾌하고도 명확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헤더윅은 현대 건축이 지난 100년 동안 재앙을 겪어왔다고 강력하게 비판합니다. 그리고 이 비판은 놀랍게도 대중과 완전히 유리된 채 그들만의 리그에 갇혀버린 현대 철학과 인문학의 현실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현대 건축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인간 중심의 공간을 고민하게 만드는 토마스 헤더윅의 저서입니다.
설계와 제작의 분리: 장인의 자율성이 박탈된 자리
헤더윅의 분석에 따르면, 과거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수수하게 지은 건물조차도 지금처럼 따분하지 않았습니다. 그 비결은 건축 방식에 있었습니다. 16세기 이전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건축은 특정한 한 명의 천재 설계자가 아니라 '장인 공동체'가 주도했습니다. 석공, 목수 등 각 분야의 장인들이 자율성과 책임을 가지고 자신이 다루는 재료의 예술적 잠재력을 극대화하며 협력했습니다. 대리석을 평생 만져온 장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디테일과 장식이 건물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 이후 해외의 새로운 건축 양식이 유입되면서 변화가 생겼습니다. 낯선 양식을 정교하게 구현하기 위해 미리 결과물을 정해놓고 지시하는 '건축가'라는 라이센스 직업이 등장한 것이죠. 이 과정에서 지적인 화이트 칼라인 건축가가 설계를 독점하게 되었고, 현장의 장인들은 그저 지시를 따르는 블루 칼라 노동자로 격하되었습니다. 재료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의 자율성이 억압되면서, 건축물이 가질 수 있었던 풍부한 장소성과 디테일은 급격히 메마르기 시작했습니다.
모더니즘의 독선: "장식은 야만적이며, 효율만이 진실이다"
이러한 단절을 결정적으로 굳힌 것은 20세기 초를 휩쓴 모더니즘 예술 사조였습니다. 모더니즘 예술가들은 기존의 "예술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공식을 거부하고, 감각적인 아름다움 대신 날것의 '진실'과 '이론적 탐구'를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건축 영역에도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효율성과 기능만을 강조하며 장식을 배제했던 모더니즘 건축의 흐름은 현대 도시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가 된 르코르뷔지에 같은 엘리트 건축가들은 "장식은 야만인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며 경멸했습니다. 그들에게 건물은 사람이 생활하기 위한 효율적인 '기계'여야 했고, 도시는 자동차가 시원하게 달릴 수 있도록 직선과 직각으로 쭉쭉 뻗어 있어야 했습니다. 겉보기에 아름다운가보다는 내부의 기능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건축의 유일한 본질이자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죠.
여기에 자본의 논리가 강력하게 결합했습니다. 디테일과 장식을 모두 걷어내고 직선으로만 짓는 모더니즘 건축은 건축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건축가들의 엘리트주의적 신념과 건축주들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전 세계의 도시는 개성 없고 밋밋한 콘크리트 상자들로 완전히 도배되고 말았습니다.
학계의 '컬트화'와 현대 철학의 동병상련
토마스 헤더윅은 현대 건축 업계의 이러한 폐쇄성을 '컬트(사이비 종교)'에 비유합니다. 컬트 집단에서는 신도들에게 "너희는 진리를 깨달은 특별한 존재이며, 외부 세계의 대중은 무지하다"고 세뇌합니다. 그리고 그들만의 난해한 전문 용어를 만들어 소통하며 강한 엘리트 정체성을 공유하죠. 지금의 건축학과 교육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이나 대중적 흥미와는 완전히 멀어진 채, 모호한 사유로 서로에게 똑똑해 보이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이 그의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이것이 비단 건축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철학과 인문학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물리학처럼 엄밀한 학문이 대중에게 신뢰받는 이유는 명확한 결과물을 통해 그 가치를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물리학 같은 자연과학 역시 대중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수식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의 폐쇄성을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주선을 쏘아 올리거나 스마트폰을 작동시키는 등 명확하고 눈에 보이는 결과로 자신들의 엄밀성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은 본질적으로 기계적인 결과물로 증명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철학은 자연과학의 엄밀함을 흉내 내기 위해, 대중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지극히 난해하고 폐쇄적인 언어 장벽을 쌓아 올렸습니다. 그 장벽 뒤에서 학문적 권위와 지위를 누리며, 정작 삶의 현장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직관적인 느낌은 '무지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엄밀함과 효율성이 결코 무가치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물론 건축에서 안전이나 구조적 안정성, 공간의 효율성 같은 요소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엄밀한 영역입니다. 철학 역시 논리적 정합성과 개념의 명확성을 추구하는 학문적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전문적인 지식과 엄격한 기준이 없다면 건물은 붕괴할 것이고, 학문은 단순한 궤변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전문성이 인간의 직관적인 느낌과 감각을 완전히 배제하는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건축이든 철학이든, 결국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인간적인 느낌'의 가치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분야마다 요구할 수 있는 엄밀함의 정도가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인간의 본성이나 정치, 삶의 태도를 다루는 영역은 본질적으로 수학처럼 딱 떨어질 수 없이 두루뭉술한 성격을 가집니다. 이러한 분야를 억지로 과학처럼 엄밀하게 다루려 하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 그의 통찰이었습니다.
건물은 우리가 매일 보고 만지며 살아가는 공간이고, 철학은 우리가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지도입니다. 그렇기에 전문가들이 아무리 이론적으로 훌륭하다고 찬사를 보낼지라도, 수많은 대중이 본능적으로 지루함과 괴리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결코 성공한 건축도, 생명력 있는 철학도 아닐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전문가들의 지적 독선에서 벗어나, "이 건물은 참 아름답고 정감이 간다", "이 이야기는 내 삶에 정말로 와닿는다"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직관적인 느낌과 목소리에 다시금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글에서는 토마스 헤더윅의 통찰을 빌려 현대 건축과 철학이 잃어버린 '인간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는데요. 여러분은 전문가들의 높은 장벽 뒤에 가려진 현대 건축물과 학문적 논의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연 대중의 직관적인 느낌이 좋은 건축과 철학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FAQ
토마스 헤더윅이 현대 건축을 '100년의 재앙'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난 10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너무나 밋밋하고 단조로우며 개성이 없는 익명적인 건물들이 양산되었기 때문입니다. 헤더윅은 과거의 풍부한 디테일과 장식, 장소 고유의 정감이 사라지고 획일적인 직선 위주의 건물만 들어선 것을 재앙으로 규정합니다.
왜 현대 건축가들은 대중이 원하는 장식이나 디테일을 피하게 되었나요?
20세기 초 모더니즘 예술 사조의 영향을 받아 '장식은 야만적인 것'이며 '건물의 본질은 순수한 기능과 효율성'이라는 엘리트주의적 믿음이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직선 위주의 단순한 설계가 건축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는 자본의 논리가 결합하면서 밋밋한 건축이 표준이 되었습니다.
건축의 폐쇄성이 현대 철학이나 인문학과는 어떻게 연결되나요?
두 분야 모두 전문가 집단이 대중과 소통하기보다는 자신들만의 난해한 용어로 장벽을 세우고, 이론적 엄밀함만을 숭상하며 대중의 직관적인 느낌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헤더윅은 이를 '깨달은 자들만의 비밀 정체성을 공유하는 컬트(사이비 종교)'의 세뇌 과정과 유사하다고 지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