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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을 통해 현대인이 풍요 속에서도 늘 조급함과 시간 결핍에 시달리는 원인을 철학적으로 추적합니다.
  • 소비는 새로운 변화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확장하는 과정에 불과하며, 이로 인해 참된 변화를 이끄는 '타자와의 만남'이 원천 차단됩니다.
  • 레비나스의 철학처럼 자신의 기준을 내려놓고 온전한 타자를 마주할 때 비로소 삶의 구별점이 생기며 충만한 주관적 시간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세상의 온갖 좋은 물건과 음식을 집 앞으로 불러올 수 있는 시대이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은 늘 조급하고 불안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사고 채워 넣어도 만족은 잠시뿐, 이내 또 다른 사물을 갈망하며 시간에 쫓기듯 살아갑니다. 과연 우리는 왜 끝없이 소비하면서도 진정으로 행복해지지 않는 걸까요?

저는 그 답을 프랑스 작가 조르주 페렉의 1960년대 소설 『사물들』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에 등증하는 젊은 커플은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이 '좋은 사물들을 소유하는 것'이라 믿고 끊임없이 소비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늘 시간의 결핍과 조급함이었습니다. 제가 제안하는 핵심 논지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소비를 통해 행복해지지 않고 늘 시간에 쫓기는 진짜 이유는,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소비라는 행위가 우리 삶에서 주관적 시간을 구성하는 ‘진정한 변화’를 삭제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강변 돌밭에 앉아 이야기하는 남성과 화면 하단에 표시된 자막

풍요로운 시대 속에서도 우리가 끊임없이 시간에 쫓기며 조급함을 느끼는 이유를 되짚어봅니다.


시간은 변화의 척도다: 우리가 주관적 시간을 잃어버리는 이유

전통적으로 철학에서 시간은 언제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습니다. 만약 이 우주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과연 시간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시계바늘이 움직이거나 계절이 바뀌는 등의 변화를 인지함으로써 비로소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감각합니다. 즉, 주관적 시간의 길이는 우리가 삶에서 얼마나 많은 '유의미한 변화'를 인지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소비에 너무 분주한 나머지 정작 자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물건을 사고, 영화를 보고, 쉬는 날에는 또 소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입니다. 그러다 몇 년이 흐른 뒤에야 문득 변해 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당황합니다. 자아 성찰을 하기 전까지의 수많은 시간들이 이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니, 그 시간들은 그저 삭제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소비라는 이름의 '나 홀로의 왕국': 변화를 가장한 제자리걸음

어떤 분들은 이렇게 반론할지도 모릅니다. 소파를 바꾸고,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고, 새로운 영화를 보는 소비 활동 자체가 일상의 소중한 변화들이 아니냐고 말이죠. 하지만 저는 오히려 소비란 자신의 욕망이라는 단일한 체계를 통해 세상을 채워 나가는 자기 확장 과정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야외 강변을 배경으로 베이지색 패딩을 입은 남성이 카메라를 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진정한 변화는 단순히 사물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마주하며 맺는 관계 속에서 시작됩니다.


진정한 의미의 변화는 나 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 즉 나와 완전히 구별되는 '타자(Other)'와 마주하고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우리 삶에 깊은 변곡점이 생겨납니다. 가족, 친구, 연인처럼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타자들과 부딪히는 순간들이 인생의 밀도를 결정합니다. 반면 소비하는 물건들은 결국 나의 돈과 욕망의 연장선일 뿐입니다. 그것은 온전히 나 혼자 지배하는 '나 홀로의 왕국'이며, 그 안에서는 진정한 타자와의 만남이 주는 인생의 변곡점들을 완전히 빼앗기게 됩니다.

레비나스의 경고: 잠들지 못하는 의식과 소비의 굴레

프랑스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인간의 의식이 가진 독특한 능력으로 '잠에 빠져드는 능력'을 꼽았습니다. 만약 인간이 평생 잠들지 못하고 의식만 유지해야 한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것입니다. 우리는 잠에 빠져 의식을 잃어봄으로써 비로소 의식이 아닌 무언가를 체험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 의식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오직 소비로만 채워진 삶은 잠들지 못한 채 자신의 욕망을 무한히 반복하는 불면증의 상태와 같습니다. 욕심을 내고, 돈을 벌고, 물건을 사고, 다시 또 다른 욕심을 내는 굴레 속에는 그 어떤 이질적인 멈춤이나 진정한 휴식이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동일한 욕망의 패턴만 계속해서 반복되다 보니, 삶에는 아무런 질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주관적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야외 강변을 배경으로 눈을 감고 서 있는 한 남성

소비에 매몰된 삶은 타자와의 만남을 차단하고, 결국 자신만의 좁은 세계에 갇히게 만듭니다.


한계와 경계: 관계와 종교마저 소비하는 태도에 대하여

이러한 소비 중심적 태도는 물질적 소유를 넘어 우리의 인간관계와 신념 체계마저 위협합니다. 우리는 때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시간의 부족함을 느끼며 조급해하곤 합니다. "이 행복한 시간이 끝나면 어쩌지?"라는 불안에 휩싸이는 것이죠. 이는 상대방을 그 자체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규정한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의 관점에서 관계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신앙을 가진 이들 중 진정으로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삶이 영원하다고 믿기에 결코 시간에 쫓기지 않습니다. 그 비결은 자신의 기준을 완전히 내려놓고 '신'이라는 절대적인 타자의 기준을 온전히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종교마저도 자신의 기복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소비재로 대하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충만한 시간이 결코 허락되지 않습니다.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한, 어떤 영역에서도 참된 시간의 밀도를 느낄 수 없습니다.

온전한 타자를 마주할 때 열리는 충만한 시간

결국 우리가 시간의 결핍에서 벗어나 삶의 충만함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나 중심의 소비적 태도를 내려놓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진짜 '세상'과 마주하는 것뿐입니다. 내 기준에 맞춰 상대방과의 관계를 설계하려 들지 않고, 상대방이 나와 완전히 구별되는 독립된 존재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관계 속에 숨겨진 수많은 소중한 지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오늘 글에서는 조르주 페렉의 소설과 철학적 개념들을 통해 소비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끊임없는 소비의 굴레 속에서 하루하루가 그저 사라져 버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계셨다면, 이제는 나의 왕국 바깥에 존재하는 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여러분은 혹시 일상에서 시간의 조급함을 느낄 때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루하루를 조금 더 충만하게 진정한 변화로 채워 나갈 수 있을지,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나누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FAQ

소비를 많이 하면 삶이 다채로워지는 것 아닌가요?

다양한 물건을 사는 행위가 겉보기에는 다채로운 변화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볼 때, 소비는 오직 나의 욕망과 자본이라는 단일한 체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확장'에 가깝습니다. 나와 완전히 다른 진짜 '타자'와 마주하며 겪는 삶의 질적 변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레비나스가 말한 '잠들지 못하는 능력'과 소비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레비나스는 의식을 잃는 '잠'을 통해 의식이 아닌 무언가를 경험해야 의식의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일하고 소비하는 과정만 끊임없이 반복하는 삶은 '잠들지 못하고 동일한 의식 상태를 유지하는 불면증'과 같습니다. 이 굴레를 멈추고 나를 내려놓는 순간이 있어야 진정한 삶의 변화를 인지할 수 있습니다.

시간의 결핍과 조급함에서 벗어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기준과 욕망으로 세상을 규정하려는 태도를 멈추어야 합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을 내 뜻대로 통제하거나 소유하려 하지 않고, 나와 완전히 다른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고 마주할 때 비로소 삶의 밀도가 높아지고 충만한 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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