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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은 본질적으로 나와 세계의 에너지가 충돌하는 투쟁의 과정이므로, 만족과 행복의 순간은 필연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 인간은 진화론적으로 이득보다 손실과 불행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작은 행복을 의식적으로 기억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세상이 나를 특별히 대우해야 할 의무가 없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에 우연히 찾아오는 작고 평범한 행복들에 깊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굉장한 환희와 기쁨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을 때조차 대단한 기쁨보다는 그저 기대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게 삶이란 기쁨을 얻기 위한 찬란한 여정이라기보다, 하루하루 그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삶이 불행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제 삶에 충분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화려한 성취가 없을지라도, 우리 삶은 아주 작고 짧은 행복의 순간들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글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작은 긍정의 순간들이 왜 결코 가벼운 '정신 승리'가 아닌지, 그리고 당신의 삶이 왜 이미 충분히 괜찮은지에 대한 세 가지 철학적 근거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지극한 행복의 한 순간, 과연 그것으로 충분할까?

얼마 전 강연을 마친 뒤, 공간을 운영하시는 대표님과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제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아가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때 저는 명확한 논리적 답변 대신, 인상 깊게 읽었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야』의 마지막 구절을 들려드렸습니다.

"그래, 한 순간이었던 지극한 행복이여. 한 사람의 일생에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소설 속 주인공은 객관적으로 보면 몹시 외롭고 고립된 환경에 처해 있으며, 뼈아픈 사건까지 겪게 됩니다. 누군가라면 삶을 완전히 비관했을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는 삶을 저주하는 대신, 오히려 그 비극 안에서 겪었던 일말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잠깐의 행복을 느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괜찮은 삶이었다고 긍정합니다.


통유리창 앞 소파에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두 남성의 실루엣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깊은 대화가 일상의 무게를 견디는 힘이 되어줍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일명 '정신 승리'라고 비판할지도 모릅니다. 객관적으로 끔찍한 일을 당해 놓고 작은 행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고 말이죠. 하지만 우리 삶에는 애초에 얼마만큼의 행복이 있어야 진정으로 좋은 것인지에 대한 정해진 규칙이 없습니다. 규칙이 없는 조건 속에 내던져진 우리는, 결국 스스로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삶의 색채를 결정하게 됩니다. 제가 작은 행복의 순간에도 충분히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믿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 진실 때문입니다.

첫째, 삶은 본질적으로 끝없는 투쟁과 좌절입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공통적으로 삶을 '끊임없이 이어지는 투쟁의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날뛰는 에너지가 있지만, 이 거대한 세계에는 나 말고도 각자의 에너지를 가진 수많은 사물과 생명체가 가득합니다. 두 에너지가 충돌하면 약한 쪽은 자신을 굽힐 수밖에 없으며, 한 명의 인간은 세계에 비해 너무나 작고 나약합니다.


검은 배경에 흰색 글씨로 '2.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복보다 불행에 더 많이 주목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화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긍정적인 경험보다 부정적인 상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갑니다.


결국 인간은 언제나 좌절을 겪으며 세상에 자신을 맞추는 갈등과 조정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인생의 기본값이 불만족과 좌절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좌절의 망망대해 속에서, 가끔씩 내 에너지의 방향과 세상의 흐름이 기적적으로 합치하는 순간이 주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찰나입니다. 이 순간은 필연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으며, 이내 다른 에너지들의 거센 파도 속으로 흩어지고 맙니다.

원래 인생의 대부분이 만족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놀랍게도 우리는 불만족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내 삶에 고통이 많은 것은 내가 특별히 무언가를 잘못해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좌절이 더 많다고 해서 찰나의 행복이 가진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둘째, 우리는 본능적으로 행복보다 불행에 더 주목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편향된 인식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니얼 카너먼의 행동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이득보다 손실을 훨씬 더 크게 체감합니다. 또한 진화심리학의 '덤불 속 호랑이 가설'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덤불 속에 숨은 호랑이를 지나쳐가는 원시인의 모습을 그린 삽화

생존을 위해 위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한 인간의 본능적인 특성입니다.


원시 시대의 조상들은 숲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을 때, 그것이 귀여운 토끼일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호랑이일 것이라고 과하게 걱정하는 편이 생존 확률이 훨씬 높았습니다. 즉, 우리는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본능적으로 부정적인 상황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조건 지어졌습니다. 게다가 행복은 대개 모호하고 은은한 반면, 불행과 모욕은 아주 날카롭고 분명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셀 수 없이 많은 행복을 경험합니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그 작은 행복들을 기억하고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자꾸만 부정성으로 치우치려는 우리의 생물학적 편향을 극복하는 가장 건전한 저항입니다.

셋째, 이 세상은 나에게 잘해줘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톨스토이는 이성을 '나와 남이 동등하게 유일자라는 것을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성이 없는 동물은 철저히 자신의 취향과 입장만을 내세우지만, 이성을 갖춘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 역시 각자의 입장이 있음을 이해합니다. 근본적으로 세계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나의 입장이라는 것은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붉은 지붕이 빽빽하게 들어선 유럽의 고풍스러운 도시 전경과 하늘에 떠 있는 자막

불운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며, 우리는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와 관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톨스토이의 『부활』 같은 위대한 문학 작품 속 주인공들은 모두 시대적 상황이나 우연한 불운으로 인해 깊은 몰락과 좌절을 겪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부조리한 고통 속에서도 삶을 끝내지 않고, 새로운 상황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으며 내면적인 부활을 이루어냅니다.

어릴 적 저는 제가 마땅히 행복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불행한 것은 세상이 무언가 잘못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 일종의 '자기중심성'에 빠져 있었죠. 하지만 세상은 저의 입장을 특별히 존중해 주거나 배려해 줘야 할 의무가 전혀 없습니다. 내가 잘 살도록 세계가 배려해 줄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이런 행복의 순간이 주어졌다는 것.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삶의 작은 찰나에도 깊이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당신의 삶이 충분히 괜찮은 이유

물론 아직 더 깊은 시련을 겪어보지 않아서 할 수 있는 한가한 소리라고 비판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진정으로 단단한 철학을 갖추려면 더 거대한 좌절을 돌파해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남들보다 더 많은 권리와 행복을 누려야 하는가?"라는 이 담담한 물음은, 견디기 힘든 순간에도 저를 완전히 주저앉지 않게 만들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밝게 웃고 있는 아기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영상 화면

일상 속 작은 순간들에서 발견하는 찬란함이 우리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됩니다.


인생에는 원래 불만족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는 것, 우리는 본능적으로 불행에 더 쉽게 잡아먹힌다는 것, 그리고 세계는 나를 특별히 대우해 줄 의무가 없다는 것. 이 세 가지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평범한 순간들이 얼마나 기적 같은지 알게 될 겁니다.

어느 날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아름답다면, 살갗에 닿는 바람이 선선하다면, 우연히 만난 책이 재미있다면, 누군가와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나누었다면. 과연 그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일생에는 충분한 찬란함이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삶에 주어지는 작은 행복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FAQ

작은 행복에 만족하는 것은 현실을 도피하는 '정신 승리'가 아닌가요?

삶에 얼만큼의 행복이 있어야 성공적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규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규칙이 없는 세상에서, 우연히 찾아온 작은 행복에 자신만의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기 기만이 아니라 삶을 긍정하는 주체적인 태도입니다.

왜 우리는 긍정적인 일보다 부정적인 일을 더 오래 기억할까요?

진화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인간은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이득보다 손실과 위협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습니다. 덤불 속의 소리를 토끼가 아닌 호랑이로 의심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시 조상들의 생존 본능이 우리 뇌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나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는 생각은 너무 비관적이지 않나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세상이 내 뜻대로 흘러가야 한다는 '자기중심성'을 내려놓으면, 삶에서 겪는 좌절을 온전히 내 탓이나 세상의 저주로 돌리지 않게 됩니다. 동시에, 나를 배려할 의무가 없는 세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작은 행복에 더욱 깊이 감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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