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계 특화적 투자인 '문신'이나 핵심 부품 협력사에 종속되는 상황은 계약의 빈틈을 이용해 상대를 인질로 잡는 '홀드업(Hold-up)'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 기업은 이 통제권 상실을 막기 위해 핵심 자산을 소유하려 M&A를 진행하며, 직원이 회사에 통제되는 이유 역시 생산 자산이 회사에 있기 때문입니다.
- 측정 가능한 기준에만 치중하게 만드는 과도한 성과급은 오히려 조직의 품질과 신뢰를 망칠 수 있으므로, 인센티브 설계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연인의 이름을 절대 지워지지 않는 문신으로 몸에 새기면 과연 더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경제학의 관점에서 이는 철저히 주도권을 빼앗기고 '팽' 당하기 딱 좋은 지름길입니다. 내가 이 사람만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징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는 이제 너 아니면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스스로 쥐여준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얄궂은 비유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올리버 하트(Oliver Hart)와 벵트 홀름스트롬(Bengt Holmström)의 '계약이론(Contract Theory)'이 말하고자 하는 기업 제도의 본질을 관통하는 핵심 논리입니다. 일상적인 연인 관계의 문신 비유부터 거대 글로벌 기업들의 복잡한 인수합병(M&A)과 직장 내 성과급 논란까지. 도대체 세상의 모든 관계에서 '통제권'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동하는지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발목을 잡히는 순간, 홀드업(Hold-up)의 덫
특정 대상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맞추는 것을 경제학에서는 관계 특화 투자라고 부릅니다. 여자친구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는 순간, 이 투자는 다른 연인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는 매몰 비용이 매몰비용이 되어버립니다. 이제 주도권은 완전히 상대방에게 넘어갑니다. 상대는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관계에 소홀해지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되죠. 이렇게 어떤 관계에 묶여 옴짝달싹 못 하게 발목이 잡힌 인질 같은 상태를 '홀드업(Hold-up)' 상황이라고 부릅니다.
비즈니스 생태계에서도 이 홀드업 상황은 비일비재하게 발생합니다. 자동차 회사가 특정 납품업체에게 자신의 차량 규격에만 딱 맞는 전용 금형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납품업체가 огром한 돈을 들여 그 금형을 투자하고 나면, 며칠 뒤 자동차 회사가 은근슬쩍 단가를 후려치며 압박을 넣습니다. 부품사 입장에서는 다른 완성차 업체에 팔 수도 없는 금형이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출판사와 저자의 관계도 유사합니다. 인세 계약을 맺어도 저자는 자신의 책이 정확히 몇 권이나 팔렸는지 출판사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들어야 합니다. 설령 의심스럽더라도 이미 책을 넘긴 저자는 홀드업 상황에 빠져 협상력을 상실한 채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관계는 경제적 거래에서도 협상력을 잃고 통제권을 빼앗기는 홀드업 상황을 초래합니다.
대기업은 왜 엄청난 돈을 들여 회사를 인수할까
자, 여기서 수많은 경영자와 주주들이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이 나옵니다. 필요한 부품이나 서비스가 있다면 그냥 똑똑하게 계산해서 계약서만 잘 쓰고 납품을 받으면 될 텐데, 기업들은 대체 왜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귀찮은 인수합병(M&A)을 단행하는 걸까요? 올리버 하트는 그 해답을 불완전 계약과 잔여 통제권(Residual Control Rights)이라는 개념으로 통찰했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변호사들을 동원해 계약서를 수백 장 쓴다 한들, 미래에 발생할 모든 경우의 수를 완벽하게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계약의 빈틈이 나오게 마련인데, 이 예상치 못한 구멍이 생겼을 때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바로 잔여 통제권입니다. 이 권리는 오직 자산을 소유한 자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자동차 기업 제너럴 모터스(GM)와 철제 차체 제조사였던 피셔 바디(Fisher Body)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목재 차에서 철제 차로 넘어가던 시기, GM은 피셔 바디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했습니다. 차체 운반비를 절감하기 위해 피셔 바디에게 공장을 가까운 곳으로 옮겨달라고 요구했지만, 원가에 비례해 마진을 받기로 계약되어 있던 피셔 바디는 운반비가 많이 나올수록 이윤이 남는 구조였기에 이를 거절했습니다. 철저한 홀드업에 걸려버린 GM은 몇 번의 피 말리는 협상 끝에 결국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피셔 바디를 통째로 인수해 버립니다. 통제권을 소유로 뺏어온 것이죠.
과거 자동차 산업의 홀드업 사례가 오늘날 AI 반도체 시장의 종속성 문제와 어떻게 닮아있는지 보여줍니다.
넷플릭스가 영화 후반 작업(VFX) 등을 관리하는 '인터포지티브'를 무려 8천억 원 단위의 비용을 들여 인수한 것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같은 글로벌 빅테크들이 엔비디아의 생태계(쿠다, CUDA) 안에서 전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다가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자체 AI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겠다고 뛰어든 것도, 모두 이 잔여 통제권을 잃고 홀드업 당하는 것을 막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입니다.
회사의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가
그렇다면 좀 더 조직 내부로 시선을 돌려볼까요? 아침 9시만 되면 지옥철을 뚫고 직원들이 꼬박꼬박 회사로 출근하고 상사의 지시를 따르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흔히 충성심, 소속감, 근로계약서, 혹은 인센티브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조금 다릅니다.
핵심은 자산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입니다. 삼성전자 엔지니어가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수조 원짜리 팹(의 반도체 공장)이 있어야 하고, 기자가 취재해서 글을 널리 퍼뜨리려면 언론사의 간판과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만약 해고를 당한다면, 직원은 이 생산 자산에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해 자신의 가치를 창출할 수 없게 됩니다. 올리버 하트의 눈으로 볼 때, 회사가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은 순전히 이런 '물적 자산의 소유권'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본인이 자산을 전부 내재화하고 있다면 회사의 통제는 전혀 먹히지 않습니다. 지자체 공무원이었다가 폭발적인 개인 브랜드를 직접 구축한 충주시의 '충주맨' 사례나, 방송국이라는 간판을 벗어나도 자신의 지적 자산과 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 조직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통제권이 회사에서 개인으로 완벽히 이전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산을 직접 소유한 개인은 회사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더 큰 주도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성과급이라는 환상과 인센티브의 딜레마
통제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해결되었다면, এবার은 공동 수상자인 벵트 홀름스트롬이 지적한 조직 내 인센티브 설계의 함정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흔히들 직원들의 성과를 극대화하려면 투명하고 강력한 성과급을 많이 줘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는 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조직의 업무는 크게 두 가지 성질로 나뉩니다. 매출처럼 '명확히 측정할 수 있는 일'과 팀워크, 브랜드 신뢰도 파괴 관리, 안전 점검처럼 '측정하기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문제는 과도한 성과급을 걸면, 조직원들은 당장 눈앞에 측정되어 돈이 되는 일에만 몰두하고 측정이 모호한 장기적 가치는 서슴없이 포기해 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다중 업무의 딜레마입니다. 오히려 조직을 좀먹는 결과를 낳을 위험이 아주 크죠.
또한 대다수의 대기업이 직원들을 주주로 만들어 주인의식을 갖게 하겠다며 보통의 평직원들에게 주식(Stock) 형태의 성과 보상을 주기도 합니다. 물론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내 노력 하나하나가 기업 가치 상승으로 직결되기에 엄청난 동기부여가 됩니다. 하지만 이미 수백조 원 규모의 대기업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내 개인이 아무리 뼈 빠지게 일을 한들 글로벌 반도체 사이클이나 거시경제 상황이라는 거대한 외부 변수에 주가가 좌우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결국 직원들은 성과급은 운 좋은 보너스 정도로 여길 뿐, 주식 보상이 실제 획기적인 업무 태도 변화를 끌어내지는 못합니다.
시장의 논리와 회사의 논리 사이에서
자, 결론적으로 정리해 볼까요? 우리가 속한 자본주의에서 시장과 기업은 분명히 다르게 작동해야 합니다.
만약 철저한 능력주의 안에서 내가 한 건 한 건 달성하는 만큼 엄청난 인센티브와 자유를 원한다면, 조직 바깥인 시장(Market)으로 나가 프리랜서로서 자신의 자산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며 승부하는 것이 맞습니다. 반대로 회사의 자산과 규칙이라는 안전망 내부에 남기로 했다면, 과도한 개인 성과급의 왜곡을 줄이고 좀 더 넉넉하고 안정적인 기본급을 제공해 직원들이 다른 유혹에 빠지지 않고 조직이 굴러가게 만드는 것이 경영 전략적 측면에서 훨씬 안전합니다.
경영진이 성과급을 던져주는 이유는 선의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우리가 월급으로 고용한 것 이상을 집요하게 '더 뽑아 먹기 위해' 설계한 고도의 장치입니다. 혹시 오늘 조직 내부에서 너무 맹목적으로 성과급 투쟁에 몰두하고 있진 않으신가요? 잡은 물고기에게는 생각보다 쉽게 먹이를 주지 않는 법. 그보다는 훗날 시장에 나가서도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는 나만의 강력한 대체 불가능한 자산을 지금 차곡차곡 쌓고 있는지, 진지하게 점검해 볼 시간입니다.
FAQ
기업들은 납품업체와 계약을 맺으면 되는데 왜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인수합병(M&A)을 하나요?
계약서를 아무리 잘 써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언제든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 계약' 때문입니다. 이때 발생한 변수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잔여 통제권'은 자산의 소유자에게만 귀속되므로, 기업들은 납품업체에 끌려다니는 홀드업 상황을 막기 위해 핵심 협력사를 직접 인수하곤 합니다.
요즘 기업들이 성과급을 주식으로 주기도 하는데, 이건 일반 직원에게 실질적인 동기부여 효과가 있나요?
스타트업 같은 소규모 조직에서는 효과가 큽니다. 하지만 규모가 큰 대기업의 경우, 일반 직원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더라도 거시 경제나 산업 사이클 같은 외부 요인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서 실질적인 업무 태도 변화나 동기부여를 이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조직 내에서 과도한 성과급 지급이 오히려 독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회사 업무는 측정 가능한 단기 목표(매출 등)와 측정하기 어려운 장기 가치(품질, 팀워크 등)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성과급을 강하게 걸면 직원들은 돈이 되는 측정 가능한 성과에만 매달리고, 신뢰나 안전 같은 중요한 가치를 방치하게 되어 조직 전체로는 손실을 입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