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영아리오름 / 한국관광공사-이범수 |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중산간에 있는 물영아리오름은 아래에서 보면 사면이 완만한 초지 오름에 가깝다. 그런데 정상부가 함지박처럼 움푹 파여 있고, 그 분화구 바닥에 물이 고여 습지가 만들어졌다. 화구호는 둘레 300여m, 깊이 40여m 규모다.
제주에서 산 위에 물이 고인 곳이라면 백록담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물영아리오름은 탐방안내소에서 출발해 한 시간 반이면 산정 습지를 내려다볼 수 있다. 습지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 전국에서 처음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고, 2006년 10월 18일 람사르 협약 습지로 등록됐다.
800계단 오르는 동안 쉼터 세 곳
물영아리오름 / 한국관광공사-이범수 |
탐방안내소에서 왼쪽으로 난 계단길은 왕복 2.5km, 걷는 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거리는 짧지만 800여 개 계단이 사면을 따라 곧장 위로 이어져 오르막이 가파르다. 중간에 쉼터가 3곳 있어 숨을 고르고 다시 오르는 식으로 정상까지 간다.
탐방안내소에는 습지에 사는 동식물과 분화구가 만들어진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 공간이 있다. 오름에 오르기 전 지형을 한 번 보고 가면 정상 데크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달라진다.
계단 양옆은 삼나무와 잡목이 빽빽한 숲이다. 위로 갈수록 나무 사이가 벌어지면서 수망리 목초지와 이웃한 오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능선길을 고르면 왕복 2시간 코스로, 숲 그늘을 길게 걸어 정상에 닿는다. 두 길은 정상 데크에서 만난다.
분화구 안 습지와 은빛으로 눕는 억새
물영아리오름 / 한국관광공사-이범수 |
정상에 서면 분화구 안쪽을 따라 놓인 데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게 된다. 바깥 둘레가 1km에 가까운 큰 그릇 모양이고, 그 안에 초원처럼 보이는 습지가 깔려 있다. 물이 찬 시기에는 풀 사이로 수면이 드러나고, 마른 시기에는 넓은 풀밭에 가까운 모습이 된다.
제주 오름은 비가 그치면 물이 곧 땅속으로 스며드는 곳이 많다. 물영아리오름 분화구는 바닥에 물이 잘 빠지지 않는 층이 있어 비가 지난 뒤에도 물이 남는다. 산 위에 습지가 자리를 잡고 오래 유지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영아리오름 / 한국관광공사-이범수 |
습지에는 물장군과 물고추나물 같은 습지 동식물이 산다. 뱀이 나타나는 일도 있어 탐방은 계단길과 능선길 두 코스로만 관리되고, 데크와 정해진 길 밖으로는 들어가지 않게 되어 있다.
오름 사면은 억새가 덮는다. 제주 오름 억새는 10월 한 달 절정을 이어가는데, 바람이 지나가면 사면 전체가 한쪽으로 누우며 은빛으로 흔들린다. 가을장마가 지난 뒤 분화구에 물이 고이는 때와 억새가 무르익는 때가 겹치는 것이 10월이다.
입장료 없이 걷고, 차로 찾아가는 길
물영아리오름 / 한국관광공사-이범수 |
입장료와 주차료는 받지 않는다. 탐방안내소 앞에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고, 안내소에서 그날 탐방로 상황을 알려준다. 따로 정해진 개방 시간은 없지만 계단 구간이 가파르고 숲 안이 어두워 해가 있는 동안 오르는 편이 안전하다.
오름 주변은 넓은 목초지다. 탐방로에 들어서기 전부터 소를 놓아 기르는 초지가 길 양쪽으로 펼쳐지고, 그 사이에 삼나무 방풍림이 줄지어 서 있다. 오름 하나만 보고 내려와도 두 시간 남짓이라 남원읍 해안 쪽 일정과 함께 다녀오기에도 무리가 없다.
차로 갈 경우 남조로 옆에 탐방안내소 입구가 있어 제주시에서 40분쯤 걸린다. 비가 온 뒤에는 계단의 나무판이 미끄러워 바닥이 잘 잡히는 신발이 낫다. 습지와 억새를 함께 보려면 오후 햇빛이 사면에 비스듬히 드는 시간대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