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코리아=조성란 기자] 초콜릿을 뿌린 듯 둥글게 솟아오른 언덕, 야자수가 빼곡한 강을 따라 흐르는 유람선, 에메랄드빛 바닷속을 유영하는 바다거북. 화려한 도시의 불빛 대신 자연이 만들어낸 풍경 속에서 잠시 쉬어가고 싶다면 필리핀 보홀(Bohol)이 제격이다.
보홀은 아름다운 해변과 리조트뿐 아니라 수백만 년에 걸쳐 형성된 독특한 지형과 풍부한 생태계를 간직한 섬이다. 필리핀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지정된 곳으로, 신비로운 자연경관과 야생동물, 해양 체험까지 한 번에 즐길 수 있어 휴양과 탐험을 함께 원하는 여행객에게 매력적인 여행지다.
한국에서의 접근성도 좋은 편이다. 인천과 부산에서 보홀 팡라오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직항 노선이 운항되고 있으며, 공항에서 주요 휴양지인 알로나 비치까지는 차량으로 약 10~15분이면 이동할 수 있다. 장시간 육로 이동 없이 도착 첫날부터 해변과 리조트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보홀 여행의 장점이다.
"알로나 비치" "보홀 초콜릿 힐" "안경원숭이" /사진-필리핀관광부 |
1,200여 개 언덕이 만든 장관…유네스코가 인정한 ‘초콜릿 힐’
보홀 여행에서 가장 먼저 만나야 할 풍경은 섬의 상징인 초콜릿 힐(Chocolate Hills)이다.
완만한 원뿔 모양의 언덕 1,200여 개가 끝없이 펼쳐지는 이곳은 보홀을 대표하는 자연 명소다. 언덕의 높이는 약 30~50m로, 비슷한 형태의 봉우리들이 이어져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낸다.
초콜릿 힐이라는 이름은 건기에 풀들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마치 초콜릿을 얹어놓은 듯한 모습을 띠는 데서 유래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에는 푸른 언덕이 펼쳐져 또 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이 지형은 오랜 세월 석회암이 침식되면서 형성됐다. 바다에서 만들어진 산호초 지층이 지질학적 변화를 거쳐 오늘날의 독특한 언덕 풍경으로 남은 것이다.
보홀섬은 이러한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3년 필리핀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초콜릿 힐이 수백만 년 자연이 빚어낸 풍경이라면, 보홀의 숲에서는 작고 신비로운 야생동물도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동물은 타르시어(Tarsier), 일명 안경원숭이다. 손바닥만 한 작은 몸집에 커다란 눈을 지닌 타르시어는 보홀을 상징하는 희귀 영장류다. 보호구역에서는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서식하는 타르시어를 조용히 관찰할 수 있다. 빛과 소음에 민감한 동물인 만큼 플래시 촬영이나 접촉을 피하고, 보호구역의 관람 수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알로나 비치" "보홀 초콜릿 힐" "안경원숭이" /사진-필리핀관광부 |
산호석으로 쌓은 바클라욘 교회…보홀의 오래된 시간을 만나다
보홀에서는 자연뿐 아니라 필리핀의 역사와 문화도 경험할 수 있다.
대표적인 명소가 바클라욘 교회(Baclayon Church)다. 필리핀에서 오래된 석조 성당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곳은 산호석을 사용한 건축물로 유명하다. 바로크 양식의 건축적 특징과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외관은 보홀이 간직한 역사적 깊이를 보여준다.
화려한 해변 휴양지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로, 건축과 문화유산에 관심 있는 여행객이라면 방문해 볼 만하다.
열대우림 속 로복강 크루즈…밤에는 반딧불이의 낭만
보홀의 매력은 푸른 바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섬 안쪽으로 들어가면 울창한 열대우림과 평온한 강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심에 로복강(Loboc River)이 있다. 강 양옆으로 야자수와 열대식물이 빽빽하게 늘어선 로복강은 보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좋은 장소다.
관광객들은 유람선을 타고 천천히 강을 따라 이동하며 숲과 물길이 어우러진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선상에서는 현지 음식과 음악을 즐기는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바쁜 일정에서 잠시 벗어나 강바람을 맞으며 보홀의 느긋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해가 진 뒤에는 반딧불이 투어가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강변의 나무와 맹그로브 숲 주변에서 반딧불이들이 작은 빛을 내는 모습은 보홀의 밤을 특별하게 만든다. 다만 반딧불이 관찰은 날씨와 현지 생태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강한 조명이나 플래시 사용을 삼가는 등 야생동물 보호 수칙을 지키는 여행이 필요하다.
바다거북과 함께 헤엄친다…발리카삭의 신비로운 수중세계
보홀 여행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바닷속에 있다.
발리카삭섬(Balicasag Island) 주변 해양보호구역은 아름다운 산호초와 풍부한 해양 생태계로 유명한 다이빙·스노클링 명소다. 투명한 바닷속에서는 다양한 열대어와 산호를 관찰할 수 있으며, 운이 좋으면 자연 상태의 바다거북이 헤엄치는 모습도 만날 수 있다.
바다거북과 같은 공간에서 유영하는 경험은 보홀 해양관광의 특별한 매력으로 꼽힌다. 다만 야생 바다거북은 출현이 보장되지 않으며, 발견하더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먹이를 주거나 만지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
스노클링을 마친 뒤에는 팡라오섬(Panglao Island)으로 돌아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좋다.
알로나 비치(Alona Beach) 일대에는 다양한 숙박시설과 리조트, 식당 등이 자리해 있다.
해변을 따라 산책하거나 리조트에서 스파를 즐기고,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느긋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바다 위로 서서히 내려앉는 노을을 바라보며 아무 일정 없이 쉬어가는 시간도 보홀에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호사다.
"알로나 비치" "보홀 초콜릿 힐" "안경원숭이" /사진-필리핀관광부 |
가을부터 겨울까지…여유로운 휴양과 자연 체험을 동시에
보홀은 여행 시기에 따른 날씨를 고려해야 한다. 필리핀은 일반적으로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를 건기로 구분하며, 보홀의 10~11월은 비가 잦을 수 있는 시기다. 특히 배를 이용하는 발리카삭 투어나 반딧불이 체험은 날씨와 해상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짧은 일정이라면 초콜릿 힐과 타르시어 보호구역, 로복강을 중심으로 육상 관광을 즐기고, 여유가 있다면 발리카삭 스노클링과 팡라오 리조트 휴식을 더해볼 만하다. 하루는 초록빛 숲과 신비로운 언덕을 탐험하고, 다음 날은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는 여행. 필리핀 보홀은 대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잠시 일상의 속도를 늦추고 싶은 여행객에게 특별한 쉼표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