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코리아=조성란 기자] 비엔나의 오래된 건축물이 더 이상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황실 마구간은 시민과 여행자가 쉬어가는 문화광장으로 바뀌고, 19세기 궁전과 300년 넘은 우체국 건물은 호텔이 됐다. 역사를 ‘보는 여행’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안에서 먹고, 머물고, 쉬는 여행으로 비엔나의 공간 경험이 확장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관광청은 올 여름 비엔나의 역사적 건축물과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을 결합한 ‘체류형 아트 트립’을 제안했다. 미술관을 관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의 시간과 예술, 건축을 숙박과 휴식, 미식으로 이어가는 방식이다.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는 동시에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사용하는 공간이 늘면서 비엔나는 예술 애호가뿐 아니라 건축과 디자인, 로컬 라이프를 즐기는 여행자에게도 새로운 도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황실 마구간이 ‘도시의 거실’로…MQ 개관 25주년
비엔나의 공간 재생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무제움스크바르티어(MuseumsQuartier Wien, MQ)다.
무제움스크바르티어(MQ) 전경 © Österreich Werbung |
과거 황실의 마구간이었던 이곳은 2001년 복합문화지구로 문을 열었고 올해 개관 25주년을 맞았다. 약 9만㎡ 규모 안에 레오폴트 미술관과 무목(mumok), 쿤스트할레 비엔나를 비롯해 50개가 넘는 문화기관이 모여 있다.
하지만 MQ의 매력은 미술관 숫자에만 있지 않다. 전시를 본 뒤 카페와 레스토랑에 들르고, 야외 광장에 앉아 햇살을 즐기거나 공연을 바라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래서 이곳은 여행자와 비엔나 시민이 함께 사용하는 ‘도시의 거실’로 불린다.
MQ 안뜰의 상징적인 야외 가구 ‘엔치스(Enzis)’도 여름 풍경을 만든다. 매년 새로운 색으로 바뀌는 엔치스는 올해 오스트리아 디저트에서 영감을 얻은 핑크와 레몬 소다를 연상시키는 옐로우로 단장했다.전시 관람 사이 엔치스에 기대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 역시 MQ를 즐기는 방식이다.
25주년을 맞아 올해는 ‘MQ세대(Generation MQ)’를 테마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MQ 프라이라움에서는 내년(2027년) 1월 25일까지 ‘비전과 저항 – 비엔나 박물관 지구는 어떻게 비엔나를 변화시켰는가’를 통해 지난 25년간 MQ가 비엔나의 도시문화와 공공공간에 미친 변화를 되짚는다.
레오폴트 미술관은 오스트리아 국립은행 컬렉션을 소개하는 ‘프리미어!(Premiere!)’를 10월 11일까지 선보이고, 쿤스트할레 비엔나는 동시대 예술가 56명의 작품 130여 점을 모은 ‘비엔나에서의 삶과 작품. 비엔나 현대미술’을 10월 26일까지 진행한다.
19세기 궁전에서 하룻밤…‘헤리티지 스테이’ 팔레 쇼텍
역사 공간을 직접 경험하고 싶다면 숙박이 여행의 일부가 된다.
호텔 팔레 쇼텍의 정원 테라스 © EST R Hotel Palais Chotek |
비엔나 9구 링슈트라세 인근의 팔레 쇼텍(Palais Chotek)은 19세기 네오 르네상스 양식 궁전을 복원해 호텔로 바꾼 곳이다. 황실 시대의 공간감을 간직하면서 현대적인 숙박 기능을 더한 대표적인 헤리티지 스테이다.
높은 천장과 섬세한 스투코 장식, 고풍스러운 계단과 벨 에타주가 옛 궁전의 분위기를 살린다. 여기에 차분한 현대적 디자인을 더해 총 164개의 객실과 스위트를 구성했다.
특히 안뜰을 바라보는 객실에서는 비엔나 도심에 있으면서도 한층 고요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호텔 이름의 배경이 된 쇼텍 가문의 소피 쇼텍(Sophie Chotek)은 생전 신분과 배경을 넘나들며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인물로 알려졌다. 그 환대의 이미지는 오늘날 호텔 올데이 바로 이어져 여행객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300년 된 우체국에 체크인…비엔나를 ‘살아보는’ 호텔
조금 더 로컬한 체류를 원한다면 오래된 우체국 건물이 새로운 선택지가 된다.
300년 된 우체국 건물을 리모델링한 와일드 아파트호텔 비엔나 플라이슈마르크트의 바 전경 © Wilde Vienna |
비엔나 1구 슈베덴 광장과 슈테판 대성당 사이에 자리한 와일드 아파트호텔 비엔나 플라이슈마르크트(Wilde Aparthotels Vienna Fleischmarkt)는 300년 넘은 옛 우체국 건물을 현대적인 레지던스형 호텔로 바꾼 곳이다.
높은 아치형 천장과 두꺼운 벽, 넓은 창 등 오래된 건물의 구조를 살리면서 현대적 인테리어를 더했다.
객실에는 간이 주방이 마련돼 있어 며칠을 넘어 몇 주간 머물며 비엔나의 일상을 경험하기에도 적합하다. 관광지를 빠르게 소비하는 대신 현지인처럼 장을 보고 식사하며 도시의 리듬에 맞춰 생활하는 체류형 여행과 잘 어울린다.
19세기 벽돌에 아르데코 감성…더 컴패니언 비엔나
비엔나의 역사적 건축을 좀 더 트렌디하게 즐기고 싶다면 더 컴패니언 비엔나(The Companion Vienna)가 있다.
9세기 후반 건축물을 위트있게 해석한 더 컴패니언 비엔나 외관 © The Companion Vienna |
비엔나 서역 인근 19세기 후반 건축물을 새롭게 해석한 디자인 호텔로, 기존 구조의 흔적을 살리면서 대리석과 금속, 목재 등 자연 소재와 아르데코 요소를 결합했다.
공간 전체에 이어지는 벽면 레일 디자인도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객실은 총 138개다. 일부 객실에서는 마리아힐퍼 거리의 활기찬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으며, 호텔 내 레스토랑 보카(Boca)와 칼립소 바(Calypso Bar)는 숙박과 미식, 휴식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정형화된 호텔 서비스보다 공간 자체의 디자인과 분위기를 여행 경험으로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잘 맞는 곳이다.
오래된 공간을 ‘다시 쓰는’ 도시, 비엔나
비엔나가 흥미로운 이유는 오래된 건물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는 데 있다.
황실의 마구간은 미술관과 광장, 레스토랑이 어우러진 도시 문화공간이 되고, 19세기 궁전은 호텔이 되며, 300년 된 우체국은 장기 체류가 가능한 아파트호텔로 변신했다.
과거의 건축적 기억은 남기되 그 안에 오늘의 라이프스타일을 채워 넣으면서 여행자가 도시의 시간을 보다 입체적으로 경험하도록 만드는 셈이다.
2026년 여름 비엔나 여행은 명소를 몇 곳 더 보는 것보다 어디에서 머물고, 어떤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느냐가 여행의 만족도를 좌우한다. 역사를 바라보는 도시에서 역사 속에 머무는 도시로, 비엔나의 여행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