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 한국관광공사-이범수 |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의 금오름은 정상에 깊이 약 52m의 둥근 분화구를 품은 오름이다. 해발 427.5m, 주변 땅에서 잰 높이는 178m로, 오름 아래에서 천천히 걸어도 15분 남짓이면 분화구 가장자리에 닿는다. 정상에 서면 커다란 그릇 같은 화구가 발아래로 내려앉아 있고, 그 둘레를 따라 약 1.2km 능선길이 한 바퀴 이어진다.
가을에는 이 능선이 억새로 덮인다. 제주관광공사는 2022년 10월 금오름을 가을 억새 군락지로 소개하며 억새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고 안내했다. 해가 기울면 낮은 햇살이 억새 이삭을 비추면서 은빛이던 능선이 차츰 노을빛으로 바뀐다. 올해 억새 상태를 따로 알린 자료는 없지만, 예년 안내에 비춰 보면 10월 하순부터 11월 초가 억새를 보기 좋은 때다.
분화구 둘레를 걸으며 보는 억새와 들판
제주오름 / 한국관광공사-이범수 |
능선길은 화구를 가운데 두고 원을 그린다. 한쪽으로는 억새 사이로 분화구 안쪽 비탈과 바닥이 내려다보이고, 반대쪽으로는 한림읍 들판이 펼쳐진다. 밭과 목초지가 낮게 이어지는 목가적인 풍경이어서 걷는 방향에 따라 화구와 들판이 번갈아 눈에 들어온다. 능선 위에서는 들판 끝까지 시야를 가리는 것이 적어 하늘도 넓게 트인다. 제주 서부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자리라 해 질 녘 풍경이 특히 좋은 곳으로 꼽힌다.
제주오름 / 한국관광공사-이범수 |
억새 이삭은 해를 마주 보는 쪽에서 볼 때 빛이 이삭 사이로 비쳐 더 밝게 보인다. 늦은 오후에 능선을 돌면 해가 있는 서쪽을 바라보는 구간에서 억새가 하얗게 빛나고, 해를 등진 구간에서는 같은 억새가 차분한 갈색으로 보인다. 한 바퀴를 도는 동안 같은 능선의 색이 몇 번씩 달라지는 셈이다. 사진을 찍을 때는 해를 마주 보는 쪽에서 억새를 앞에 두고 화구나 들판을 뒤에 넣으면, 빛나는 이삭과 오름의 둥근 생김새를 한 장에 담을 수 있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이삭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화구를 둘러싼 능선 전체가 물결치듯 움직인다.
금오름 / 한국관광공사-김지호 |
분화구 바닥에는 물이 고이는 화구호가 있다. 물이 찬 모습을 금악담이라 부르는데, 예전에는 물이 넉넉했지만 지금은 시기에 따라 수량이 크게 달라져 바닥이 드러날 때도 있다. 물이 차 있으면 억새 능선과 하늘이 수면에 비치고, 말라 있으면 둥근 화구의 생김새가 그대로 드러난다. 정상 분화구는 예부터 '왕메'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화구호 주변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맹꽁이와 도롱뇽 같은 양서류가 사는 곳이다. 2024년에는 분화구 안에 돌탑이 쌓여 서식지를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분화구 안으로 내려가거나 돌을 옮기지 말고 능선길에서 풍경을 보는 편이 좋다.
걷는 데 걸리는 시간과 찾아가는 길
금오름 / 한국관광공사-이범수 |
금오름은 한림읍 금악리 오름 아래까지 차로 갈 수 있다. 정상까지는 오르막이 심하지 않고 거리도 짧아 오름을 처음 오르는 사람도 무리가 없다. 분화구 둘레 한 바퀴와 사진 찍는 시간을 더하면 오르고 내려오는 데 1시간 30분 정도 잡으면 된다.
정상에 닿으면 어느 방향으로 돌아도 처음 자리로 돌아온다. 해가 지는 서쪽 하늘을 마지막에 보고 싶다면 그 방향을 뒤로 남겨 두고 반대쪽부터 걷는 것이 좋다. 다만 노을을 끝까지 보고 나면 금세 어두워지므로, 해가 지기 전에 능선을 다 돌고 내려올 수 있게 시간을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