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태풍 힌남노 침수 직전, 포항제철소는 쇳물이 내부에서 굳는 치명상을 막고자 49년 만에 용광로 3기를 선제적으로 멈춰 세웠습니다.
- 620만 톤의 흙탕물이 들이친 후, 수급에 1년 이상 걸리는 초대형 모터를 새것으로 바꾸는 대신 전 설비를 직접 분해·세척하는 역발상으로 135일 만에 전 공장을 복구했습니다.
- 복구 직후 1.9km 차수벽과 4,150개의 강철 말뚝 방어막을 구축해 이듬해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관통할 때도 피해 없이 정상 가동을 이어갔습니다.

2022년 태풍 힌남노가 북상하던 밤, 포항제철소에서는 49년 만에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1973년 첫 쇳물을 뽑아낸 이래 단 한 번도 꺼진 적 없던 용광로 세 기가 일제히 가동을 멈춘 것입니다. 태풍의 직접적인 타격으로 전력이 끊겨 강제로 멈춰 서기 전, 제철소 스스로 심장을 잠시 재우는 선제적 셧다운을 단행했습니다.
1. 2022년 태풍 힌남노, 포항제철소가 스스로 심장을 멈춘 현장
용광로는 본래 가동을 멈추면 안 되는 설비입니다. 내부에서 순환하던 쇳물이 식어버리면 시설 전체가 거대한 쇠 무덤으로 변해 용광로 자체를 통째로 폐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태풍 상륙 직전, 포항제철소는 내부 쇳물을 미리 빼내고 열을 낮춘 뒤 안전하게 재워두는 절차를 밟았습니다. 외부 충격으로 강제 정지되어 공장 전체가 치명상을 입기 전에 제어 가능한 상태로 미리 멈춰 세운 것입니다. 재울 수는 있어도 용광로를 죽게 둘 수는 없다는 현장의 판단이었습니다.
49년 만에 처음으로 쇳물을 빼고 잠들었던 포항제철소 용광로들의 긴박했던 상황입니다.
다음 날 새벽,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습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500mm에 달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고, 제철소 옆 냉천이 범람하면서 흙탕물 620만 톤이 담장을 넘어 밀려들었습니다. 여의도 면적 3배에 이르는 거대한 제철소 전역이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습니다.
2. 멈추면 '거대한 쇠 무덤'이 되는 용광로, 왜 선제 휴풍이 핵심이었나
용광로는 선제 조치 덕에 고사를 면했지만, 공장 지하에 설치된 핵심 모터와 전기실은 모두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외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공장을 새로 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절망적인 진단까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새 설비로 모조리 교체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철판을 누르고 펼치는 압연기를 돌리는 170톤짜리 초대형 모터는 주문 후 현장 인도까지 최소 1년 이상 걸립니다. 전문가들이 1년 내 복구는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용광로는 무사히 지켜냈지만, 침수 피해를 입은 거대한 압연기용 모터는 복구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년 넘게 공장이 멈춰 선다면 국내 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포항제철소는 해법의 발상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새 기계가 오기를 손 놓고 기다리는 대신, 물을 뒤집어쓴 기계를 전부 분해해 씻고 말려 다시 쓰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3. 새 설비 대기 대신 '세척·재조립'을 선택한 공학적 역발상
현장 직원들은 진흙투성이가 된 초대형 모터와 정밀 제어 설비를 직접 분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진흙 때를 일일이 닦아내고 말린 뒤 다시 정밀하게 조립하는, 언뜻 무모해 보이는 작업에 뛰어든 것입니다.
이 절체절명의 복구 현장에는 제철소 임직원뿐만 아니라 소방대원과 해병대 장병들까지 기꺼이 팔을 걷어붙이고 힘을 보탰습니다. 침수 현장에 투입된 연인원만 무려 140만 명에 달했습니다.
상상하기 힘든 집념의 결과로, 태풍이 지나간 지 단 일주일 만에 잠들어 있던 용광로 3기가 가장 먼저 다시 붉은 불꽃을 일으켰습니다. 가장 우려했던 쇳물의 고사를 막아내자 후속 공정 복구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4. 135일 만의 17개 공장 재가동과 140만 명의 현장 복구력
전문가들이 최소 1년 이상 걸릴 것이라 장담했던 복구 작업은 단 135일 만인 2023년 1월, 17개 압연 공장이 전부 다시 가동되면서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물리적 한계에 굴하지 않고 구조의 본질을 파악해 원인을 정면으로 해체해 낸 역발상이 만든 결실이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되살아난 제철소는 이제 탄탄한 방어벽을 갖추고 다시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장을 정상화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똑같은 자연재해가 다시 밀어닥쳤을 때 설비를 어떻게 보호하느냐였습니다. 제철소는 복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외부 방어막 재설계에 착수했습니다.
5. 1.9km 차수벽과 강철 말뚝으로 입증한 재난 대비의 차이
포항제철소는 하천 범람의 근원이었던 냉천 변을 따라 1.9km에 달하는 거대한 물막이 차수벽을 높이 세웠습니다. 여기에 더해 하천 제방 지반을 탄탄하게 받치고자 강철 말뚝(쇠말뚝) 무려 4,150개를 지반 깊숙이 박아 넣었습니다.
단순히 물을 퍼내는 일시적 조치에 그치지 않고, 수압과 유속이라는 자연의 물리적 힘을 원천 차단하는 구조적 방어막을 구축한 것입니다.
이 방수 대책의 효과는 곧바로 검증되었습니다. 이듬해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직격해 관통했을 때, 포항제철소는 단 한 건의 침수 피해도 없이 완벽하게 정상 가동을 유지했습니다. 태풍에 잠겼다 스스로 일어선 공장, 포항의 135일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FAQ
용광로는 왜 한 번 꺼지면 다시 켜기 어렵고 위험한가요?
용광로 내부의 쇳물이 식어 굳어버리면 내부 전체가 거대한 철 덩어리로 변해 설비 자체를 통째로 폐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태풍 타격으로 전력이 끊겨 강제로 정지되기 전, 미리 쇳물을 빼내고 열을 식히는 선제적 조치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침수된 170톤짜리 압연기 모터를 새로 주문하지 않고 직접 씻어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170톤급 초대형 모터는 신규 주문 후 제작 및 인도까지 최소 1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1년 넘는 가동 중단 사태를 막고자 설비를 모두 직접 분해해 진흙을 닦아내고 말려 재조립하는 역발상 복구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침수 피해 복구 후 재발 방지를 위해 구축한 방재 구조물은 무엇인가요?
범람 원인이었던 냉천 변을 따라 1.9km 길이에 달하는 물막이 차수벽을 세우고, 하천 제방 지반을 보강하고자 강철 말뚝 4,150개를 지반에 박아 구조적인 수해 방어막을 완비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