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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 뮤직'은 1980년대 초 영미 음악 자본이 비서구권 음악을 '타자화'하여 소비하기 위해 만든 지극히 모순적이고 서구 중심적인 용어입니다.
  • 하지만 엄격한 규칙에 갇혀 고사한 클래식과 달리, 유연한 재즈는 보사노바 등 외부 수혜를 받아 생존했고, 이는 문화적 크로스오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 비록 출발은 영미 자본의 상술이었을지라도, 오늘날 우리는 이 개념을 일국주의적 한계를 벗어나 글로벌 주체로서 수평적 연대를 이루는 탈식민주의적 도구로 전복시켜야 합니다.

‘월드 뮤직(World Music)’은 1980년대 초 영미 중심의 음악 자본이 자신들의 음악이 아닌 비서구권의 낯선 음악들을 한데 묶어 팔아먹기 위해 고안한 지극히 서구 중심적인 용어입니다. 그러나 이 모순적이고 오만한 분류법은 역설적이게도 제3세계 음악이 스스로의 주체성을 자각하고, 억압받던 주변부 문화들이 수평적으로 연대하는 탈식민주의적 전복의 도구로 재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왜 '월드 뮤직'이라는 불편한 단어에 주목해야 하는가

월드 뮤직이라는 단어는 사실 영미 중심주의의 관점에서 자신들의 것이 아닌 음악을 철저히 '타자화'하기 위해 만든 얄팍한 상술의 산물입니다. 아주 길게 잡아봐야 1980년대 초반에 등장한 이 용어는, 그전까지 개무시하던 비서구권 음악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되자 "우리 것은 다 팔아먹었으니 이제 새로 팔아먹을 게 없을까?" 하는 자본의 욕망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이 불편한 개념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서구 제국주의적 시선을 폭로하는 동시에 이를 뒤집어엎는 문화적 전복의 가능성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라는 억압적 지형 속에서 생존을 도모해 온 제3세계의 음악들은 이 '월드 뮤직'이라는 모순적인 통로를 통해 비로소 세계 무대로 비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월드 뮤직의 명확한 정의와 재즈의 생존 방식

역사적으로 월드 뮤직이라는 딱지가 붙기 전부터 이종 문화 간의 결합은 본능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1960년대 브라질의 삼바와 미국의 쿨 재즈가 결합하여 탄생한 보사노바(Bossa Nova)의 대히트입니다. 1964년 스탠 게츠와 조앙 질베르토 등이 참여한 앨범 수록곡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The Girl from Ipanema)'는 비틀즈가 전 세계를 휩쓸던 바로 그 해에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재즈의 불씨를 살렸습니다.


강연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서 있는 중년 남성 강연자

월드 뮤직이라는 용어가 탄생하기 전부터 이미 대중음악 시장에는 다양한 장르의 결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재즈는 대중적 호소력을 상실하고 심오한 난해함 속으로 침잠하며 가난의 길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일본의 전공투 세대나 하루키 세대 같은 지식인들이 가오 잡으려고 재즈 음반을 사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고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재즈가 본능적으로 외부의 신선한 피를 수혜받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재즈 자체에 아무런 틀과 규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규칙이 너무 엄격하여 조금만 벗어나도 이단이라 치부하던 클래식은 스스로 교조주의의 늪에 갇혀 동시대와 호흡하지 못한 채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빠지는 오해: '비서구의 현대화된 민속음악'이라는 모순

우리는 보통 월드 뮤직을 '서구가 아닌 지역의 현대화된 민속음악'으로 뭉뚱그려 정의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규정은 한 발짝만 들어가면 지독한 모순과 혼란에 부딪힙니다. 왜냐하면 영미권을 제외한 유럽의 대중음악인 프랑스의 샹송, 이탈리아의 깐소네, 포르투갈의 파두 같은 음악들조차 이제는 슬그머니 월드 뮤직의 범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 안에서도 영미권을 제외하면 전부 '타자'로 전락하고 있는 셈입니다.

게다가 굳이 신디사이저나 바이올린을 얹는 현대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오리지널 민속음악도 그대로 유통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500년에서 700년이 넘는 깊은 역사를 지닌 인도네시아의 가믈란(Gamelan)이나 우리의 수제천 같은 위대한 고전 음악들까지도, 그들의 눈에 생소하다는 이유만으로 '월드 뮤직'이라는 얄팍한 서랍에 처박히고 있습니다. 모든 다양성이 가진 독자적인 역사적 주체성을 무시하고 서구의 관점에서만 타자화하는 이 개념은 태생부터 거대한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영국의 음악 토양과 워마드(WOMAD)의 탄생

이 모순적인 개념이 대중적인 시장의 힘을 얻고 축제로 승화된 곳은 다름 아닌 영국이었습니다. 1982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경영해 본 경험이 있던 영국인들은 "우리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자각 속에서 세계 최초의 월드 뮤직 축제인 워마드(WOMAD: World of Music, Arts and Dance)를 출범시켰습니다. 이 축제를 주도한 인물은 전설적인 그룹 제네시스(Genesis)의 보컬리스트였던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이었습니다.


어두운 실내에서 마이크를 들고 강연하는 중년 남성의 옆모습

1982년 시작된 워마드는 세계 음악 지형도에서 월드뮤직의 위상을 확립한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첫해의 워마드는 철저히 박살 났고 피터 가브리엘은 파산 위기까지 몰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솔로 앨범 성공으로 번 돈을 쏟아부어 '리얼 월드 레이블(Real World Records)'을 설립했습니다. 제1세계가 외면하던 제3세계의 진보적이고 가치 있는 음악들을 프로듀싱하고 음반을 내주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자처한 것입니다.

이것이 영국에서 가능했던 이유는 미국의 보수적인 음악 시장과 달리 영국의 음악 토양이 매우 탄력적이고 트렌드에 민감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장거리 트럭 운전사들이 졸음을 쫓기 위해 듣는 팝 락 위주로 빌보드 차트가 보수적으로 결정되는 반면, 영국은 대도시 중심의 젊은 층이 차트를 주도하여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졸라게 빠릅니다. 자메이카의 레게(Reggae) 영웅 밥 말리가 미국보다 영국에서 먼저 열광적인 지지를 얻으며 세계화될 수 있었던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독사처럼 독을 품을 것인가, 소처럼 우유를 만들어낼 것인가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개념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룰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똑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록 월드 뮤직이라는 개념이 백인들의 오만과 음악 자본의 계수작에서 시작된 재수 없는 단어일지라도, 우리는 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복시켜야 합니다.

과거 제3세계 국가들은 제국주의의 압제 속에서 자기 나라의 독립과 생존에만 급급해 이웃 나라의 문화적 아픔이나 가치에 눈돌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불완전한 월드 뮤직이라는 다리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좁디좁은 일국주의(一國主義)적 한계를 벗어나 글로벌 관점에서 서로를 주체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변부의 문화들이 주체적으로 만나 수평적으로 연대하고 창조적인 결합을 이루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재수 없는 개념 속에서 우리가 길어 올려야 할 진정한 탈식민주의적 가능성입니다.


FAQ

월드 뮤직이라는 용어는 언제, 왜 처음 만들어졌나요?

1980년대 초반 영미 중심의 음악 자본이 비서구권의 생소한 음악들을 상업적으로 분류하고 판매하기 위해 고안한 용어입니다. 서구 중심주의적 시선에서 자신들의 음악이 아닌 '타자'의 음악을 묶어낸 상술의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사노바가 재즈의 역사에서 왜 중요한가요?

1960년대 당시 대중성을 잃고 쇠퇴해가던 재즈가 브라질의 삼바와 결합하여 '보사노바'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1964년 발매된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는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재즈가 외부의 문화적 수혜를 통해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워마드(WOMAD)는 어떤 축제인가요?

1982년 영국의 뮤지션 피터 가브리엘과 그의 동료들이 시작한 세계적인 월드 뮤직, 예술, 무용 축제입니다. 비록 첫해에는 재정적으로 참패했으나, 이후 제3세계 음악을 서구 세계에 소개하고 수평적 문화 교류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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