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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과학과 과학적 결정론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주체성을 물리적 작용의 부수적 결과로 보고 환상으로 치부합니다.
  • 그러나 과학의 언어는 3인칭 객관의 영역에 그치며, 하이데거의 실존주의가 말하듯 1인칭 관점에서 마주하는 의식과 선택은 분명한 실존입니다.
  • 고정된 틀을 따르기보다 치열한 고민으로 스스로 개념의 의미를 창조해 나갈 때 현대 사회의 허무와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지가 과연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요? 현대 과학과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모든 정신 활동은 몸과 뇌의 물리적 작용에 따른 부수적 결과에 불과하다는 기계적 결정론이 큰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인간을 유전자의 생존 기계로 바라보거나 칼 세이건이 우주 속 한 점에 불과한 인간을 말했듯이, 과학적 세계관 속에서 '나'라는 주체와 '자유'라는 개념의 입지가 매우 좁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자유의지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쉽게 동의할 수 없습니다. 과학이 말하는 결정론은 세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3인칭 관점의 설명일 뿐,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1인칭 실존의 영역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회와 과학이 제시하는 고정된 틀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와 계보학적 사고를 통해 스스로 삶의 의미와 자유를 재정의해야 합니다.

3인칭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1인칭 의식의 절대성

과학적 사고를 철저히 밀고 나가면 세상의 모든 현상은 물리적 인과관계로 귀결됩니다. 뇌의 신경전달물질과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의 행동이 결정된다면, 우리가 느끼는 자유로운 선택이란 착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맞물려 돌아가는 시계의 톱니바퀴들을 배경으로 '기계적 결정론'과 '몸의 활동에 의해'라는 문구가 자막으로 놓여 있습니다.

인과관계의 틀 안에서 정신 활동조차 물리적 부수 현상으로 간주하는 기계적 결정론의 관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접근은 근본적인 한계를 지닙니다. 과학의 언어는 언제나 3인칭 객관의 언어이지만, 인간 의식의 본질은 1인칭 주관의 경험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지금 느끼는 배고픔이나 고통은 뇌과학과 생리학 지식으로 아무리 정교하게 설명한다 한들, 내가 실제로 느끼는 그 감각 자체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3인칭 설명은 한 생명체의 반응을 분석할 뿐, '나의 배고픔'이라는 1인칭의 절대적 경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못합니다.


한 여성이 돋보기를 눈앞에 대고 자신의 눈을 확대해 들여다보고 있는 클로즈업 화면

나 자신을 타인의 시선이나 객관적인 지표로만 평가하려는 사회적 압박이 오히려 스스로의 실존을 가두고 있습니다.


현대인이 겪는 깊은 허무감과 무력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대학이나 기업 평가를 위한 자기소개서, 타인의 반응을 유도하는 SNS 알고리즘, 나를 유형화하는 MBTI 등 현대 사회의 여러 장치는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3인칭 관점에서 객관화해 바라보도록 강제합니다. 본래 의미라는 것은 1인칭의 주체적 입장에서 느껴야 함에도, 모든 상황을 남의 눈으로 파악하도록 강요받다 보니 삶에서 스스로 느끼는 가치가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이데거의 실존주의가 보여주는 절대적 자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3인칭 관점의 틀을 깨고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철학사에서 이 문제에 가장 깊이 주목한 분야가 바로 실존주의입니다. 실존주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마르틴 하이데거는 흔히 쓰이는 소박한 자유와 구별되는 절대적 자유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절대적 자유란 나의 존재가 언젠가 무(無)로 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할 때 비로소 발견되는 선택의 자유입니다. 내가 언젠가 존재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1인칭 관점에서 진지하게 마주하면, 남들의 평가나 사회적 기준이 아닌 내 삶의 최종적인 책임과 선택이 오로지 나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뇌과학자가 내 행동을 신경물질로 설명하든, 숟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책을 펼치거나 덮는 1인칭 관점의 순간에 선택을 내리는 주체는 분명 나 자신입니다. 기계적으로 이미 정해져 있다는 주장은 3인칭의 언어일 뿐이며, 1인칭으로 관점을 전환하는 순간 운명이라는 압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고정된 의미를 벗어나 개념을 스스로 창조하는 힘

니체의 계보학적 사고에 따르면,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사용하는 자유나 자아 같은 개념은 처음부터 절대적인 상태로 고정되어 있던 것이 아닙니다. 동서양의 여러 사상이 역사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되어 온 가변적 개념입니다.


짙은 어두운 배경에 밝고 푸른 빛의 곡선형 광섬유 모양이 궤적을 그리며 흐르는 그래픽 이미지.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실존의 역동적인 모습입니다.


개념의 의미가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왔다는 사실은 곧 그 의미가 절대적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기계적 결정론이 "자유는 없다"고 단정할 때, 그들이 말하는 자유 역시 특정한 한 가지 정의에 국한된 개념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기존 개념에 매몰될 필요가 없으며, 새로운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현상을 저는 단순히 불행이나 허무로만 보지 않습니다. 어쩌면 남들이 제시해 놓은 기성품 같은 기준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나'와 '원함', '좋아함'이라는 개념의 의미를 스스로 창조하려는 주체적 의지의 표출일지도 모릅니다. 기존 체계의 안락함을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르며, 지금의 고민은 일종의 창조적 통증인 셈입니다.

기계적 인과성의 한계와 실존적 고민의 위험성

물론 우리가 물리적 법칙과 생물학적 조건이라는 기계적 인과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몸과 뇌가 물리적 세계에 속해 있다는 점을 부정한 채 과도한 정신승리나 극단적인 자아도취에 빠지는 것은 또 다른 우를 범하는 일입니다.

또한 기존의 사회적 틀과 3인칭 기준을 거부하고 스스로 의미를 정의하려는 시도는 확실한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오는 불안감과 실존적 고통을 유발합니다. 남들이 정해 준 길을 따라가는 편이 마음은 더 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세상에서 단 하나의 단순한 정답만을 찾으려 할 때, 우리는 결정론이라는 무력감에 다시 빠져들고 맙니다.

치열한 생각을 통해 삶의 주체로 서는 방법

자유의지가 환상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우리가 어떤 관점과 사고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기계적 결정론이라는 3인칭 틀 안에 그쳐 있다면 자유와 주체성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1인칭 관점을 회복하고 개념의 의미를 스스로 구성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질문에 대한 답은 완전히 새로워집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개념 구조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여러 방향으로 치열하게 고민하며 나만의 언어로 삶을 구성해 나가는 태도야말로 현대 사회의 허무와 무력감을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여러분은 자유의지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가는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3인칭의 객관적 시선에 갇히지 않고 나만의 1인칭 삶을 만들어 가는 여정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함께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FAQ

뇌과학이 자유의지가 착각이라고 증명했다는데 정말인가요?

뇌과학과 기계적 결정론은 물리적 뇌 활동과 인과관계를 3인칭 관점에서 관찰한 설명입니다. 이는 객관적 현상을 분석하는 데 유용하지만, 1인칭 주체가 직접 경험하는 의식과 선택의 실존적 영역까지 모두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절대적 자유'란 무엇인가요?

하이데거의 절대적 자유는 자신이 언젠가 존재하지 않게 될 수 있다는 '무(無)'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마주할 때 찾아옵니다. 자신의 삶과 선택에 대한 최종 책임이 오로지 나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는 1인칭 실존적 자유를 의미합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른다는 느낌은 기성 사회가 정해 둔 3인칭 기준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창조적 고통일 수 있습니다. 남들이 제시한 틀에 나를 맞추기보다, '원함'과 '좋아함'의 의미를 나만의 관점으로 치열하게 다시 정의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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