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_banner
  • 한국 아파트는 효율과 안전을 극대화한 수직적 '나무 구조'를 취하지만, 예외와 변주를 허용하지 않는 한계가 있습니다.
  • 정형화된 주거 공간은 입주민의 사고와 행동 양식을 통제 지향적 틀 안에 가두는 문제점을 낳습니다.
  • 아파트라는 형태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주거 문화 전반에 '리좀적' 유연성과 자율성을 불어넣는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주거 형태인 아파트는 뛰어난 편의와 안전을 제공하지만,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예외와 변주를 허용하지 않는 수직적 나무 구조에 가깝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와 정신분석학자 펠릭스 가타리가 제시한 리좀(Rhizome) 개념에 비추어 볼 때, 규격화된 아파트 공간은 입주민의 사고와 행동 방식마저 정해진 틀 안에 가두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대한민국 아파트의 진짜 문제점은 단지 부동산 가격이나 물리적 건물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 기반인 공간이 삶의 유연성과 창의성을 가로막는 방식에 있다고 봅니다.

수직적 나무 구조로서의 아파트

들뢰즈와 가타리는 세계를 인식하고 구성하는 방식을 '나무 구조'와 '리좀 구조'로 대비해 설명합니다. 나무 구조는 뿌리, 줄기, 가지, 잎으로 이어지는 명확한 수직적 서열과 순차적 체계를 지닙니다. 반면 뿌리줄기를 뜻하는 리좀은 위아래나 입구와 출구의 구별이 없으며, 모든 지점이 자유롭게 연결되고 끊어지는 개방적 체계를 의미합니다.


뿌리, 줄기, 가지로 구성된 나무의 구조를 상세히 나타낸 생물학적 도표 그래픽.

위아래로 연결된 나무 체계는 질서와 서열을 중시하는 수직적 인식의 틀을 보여줍니다.


베를린 외곽의 들토끼 굴을 관찰해 보면, 토끼들은 입구와 출구를 고정하지 않은 채 땅속에서 복합적으로 연결된 미로를 만들어 살아갑니다. 이것이 대표적인 리좀적 공간 형태입니다. 반면 한국의 아파트는 전형적인 나무 구조를 띱니다. 1층 현관에서 엘리베이터라는 줄기를 타고 올라가 각 층의 정해진 집으로 들어가는 단선적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수직으로 연결된 배관과 전선 탓에 모든 집은 위아래가 동일한 구조를 유지해야 하며, 10층과 2층 사이에 느닷없이 비밀 통로가 생기는 식의 예외는 결코 허용되지 않습니다.

공간의 정형화가 사고 방식을 제약하는 원리

나무 구조에 기초한 아파트 환경은 적은 비용으로 안전과 관리의 효율을 높이는 장점이 있습니다. 관리사무소와 경비 인력이 상주하고 환한 조명과 CCTV가 사각지대를 없애므로 범죄나 일탈의 위험이 적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정형성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행동과 사고 범위를 수직적 틀 안에 가두는 치명적인 한계를 만들어냅니다.

관리 시스템이 모든 일을 정해진 대로 처리한다는 뜻은, 뒤집어 말해 입주민이 시스템의 규칙에서 벗어난 행동을 시도하기 어렵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단지 안에서는 규격화된 주차장, 쓰레기 수거장, 놀이터 외에 예측 불가능하거나 의외성을 지닌 공간이 들어설 틈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집 내부를 리모델링하더라도 수직적 구조라는 근본적 틀은 바꿀 수 없기에, 입주민이 공간에 발휘할 수 있는 창의적 시도는 극도로 제한됩니다.

통제 문화와 주거 공간의 상호작용

인간은 언제나 공간을 기반으로 존재하며, 그 공간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정형화된 수직적 나무 구조의 공간에서 오래 생활할수록, 복잡하고 유연한 리좀적 사고를 유지하기는 점차 어려워집니다.


길거리나 실내 곳곳에 부착된 쓰레기 투기 금지, CCTV 촬영, 에티켓 준수 등을 알리는 다양한 안내문과 경고 문구들을 모아놓은 이미지.

일상 곳곳에 세밀하게 배치된 지시와 규제 문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인간의 행동을 얼마나 강하게 통제하는지 보여줍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깊이 자리 잡은 강한 검열 의식과 준법정신, 그리고 어디서나 흔히 보이는 수많은 지시성 안내 문구는 이러한 주거 환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졸음운전 하지 마세요', '쓰레기는 이렇게 버리세요' 같은 세세한 통제 문구가 일상에 범람하는 현실은, 우리가 수직적 통제와 규격화된 시스템을 지극히 당연하고 편안하게 수용하게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물론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통제 지향적으로 변했는지, 통제를 선호해서 아파트를 선택했는지는 선후 관계가 복합적이지만, 양자가 서로를 끊임없이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나무 구조의 필요성과 현실적 한계

그렇다고 해서 아파트나 나무 구조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음양이 교차하듯 사물의 극단은 서로 통하기 마련이며, 나무 구조 역시 지식과 사회 체계를 안착시키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처럼 대도시에 인구가 밀집된 환경에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를 당장 포기하자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습니다. 문제는 나무 구조 그 자체가 아니라, 일률적인 아파트 형태 외에 마땅한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입니다. 나무 구조를 무턱대고 없애려 들면 또 다른 혼란이 찾아올 수 있기에, 진정한 변화는 아파트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의 내부 구조와 주거 문화를 유연하게 다듬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리좀적 유연성을 향한 주거 문화의 모색

우리의 삶은 본래 전쟁이나 질병, 뜻밖의 행운처럼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로 가득합니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이 같은 불확실성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다룰 수 있는 용기와 이해력이 요구됩니다. 기존의 정형화된 아파트는 이러한 유연성을 키우기에 최선의 환경은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주어진 환경을 넘어 공간을 변화시킬 역량이 분명 존재합니다.

최근 다양해진 취향과 공간 구성을 반영하려는 주거 시도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건설사 역시 소비자가 효율과 안전만을 요구한다면 천편일률적인 건물만을 짓겠지만, 입주민들이 리좀적 유연성과 개성을 담아낸 주거 환경을 강력히 요구한다면 그에 맞추어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의식과 문화의 변화가 물리적 공간의 변화를 견인하는 셈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머무는 주거 공간이 자신의 사고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느끼시나요? 아파트라는 정형화된 틀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리좀적 유연성을 찾아갈 수 있을지, 여러분의 의견을 댓글로 자유롭게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FAQ

들뢰즈가 말하는 '리좀(Rhizome)'이란 무엇인가요?

리좀은 시작과 끝, 위아래나 입구와 출구의 구별 없이 모든 지점이 자유롭게 연결되고 끊어지는 뿌리줄기 형태의 체계를 뜻합니다. 명확한 순서와 서열을 지닌 '나무 구조'와 대립하는 개념입니다.

아파트를 '나무 구조'라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파트는 1층 현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각 층으로 수직 이동하며, 모든 세대가 위아래로 동일한 배관과 평면을 공유하는 등 예외나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 수직적·단선적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생활을 하면 정말 창의성이 떨어지나요?

아파트에 거주한다고 해서 무조건 창의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정형화되고 완벽히 통제된 공간 환경이 입주민으로 하여금 규격화된 틀과 수직적 통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면이 있습니다.

아파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요?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를 당장 벗어나기는 어려운 만큼, 아파트 설계와 주거 문화에 다양성과 유연성을 담아내야 합니다. 입주민이 리좀적 요소와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주거 환경을 요구할 때 비로소 물리적 변화도 시작될 수 있습니다.


원본 영상 보기

# 가타리
# 공간철학
# 나무구조
# 들뢰즈
# 리좀
# 아파트
# 인문학
# 주거문화
# 철학
# 충코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