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
4

국내 유일 '거꾸로 달리는 열차'의 퇴장, 영동선 스위치백이 남긴 역사와 삶

spark_icon5분 지식
  • 국내 유일의 갈 지(之) 자형 후진 철도 구간인 영동선 스위치백이 신규 솔안터널 개통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 일제강점기 인클라인을 거쳐 반세기 넘게 해발 고도차를 극복했던 이 구간은 석탄 수송과 산골 주민들의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 직선화와 고속화라는 기술적 진보 이면에서, 철길과 함께 삶을 일궈온 오지 마을의 공동체 풍경도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가 미덕이 된 시대에, 열차가 앞이 아닌 뒤로 뒷걸음질 치며 산을 오르던 특별한 철길이 있습니다. 바로 경상북도 영주와 강원도 강릉을 잇는 영동선 산악 구간의 스위치백(Switchback) 철로입니다.

삼척 도계역과 태백 통리역 사이의 험준한 급경사를 극복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이 국내 유일의 후진 철도 구간이 신규 솔안터널 개통을 앞두고 운행 종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반세기 넘게 산간 지대를 지켜온 완행의 궤적이 왜 멈춰 서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변화가 그 길 위에 터를 잡고 살아가던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남기는지 짚어봅니다.

1.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반세기 스위치백의 마침표

영동선 흥전역과 나한정역을 잇는 스위치백 구간은 기차가 약 5분 동안 후진으로 주행하며 고도차를 극복하는 국내 유일의 철도 시설입니다. 산자락을 오르내리던 완행열차는 이곳에 다다르면 진행 방향을 반대로 바꾸어 지그재그 형태로 가파른 경사면을 통과해 왔습니다.

열차 창가 좌석에 앉아 있는 두 여성이 창밖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고, 화면 하단에는 자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차가 방향을 바꿔 뒤로 달리기 시작하자 여행객들의 표정에 신기함과 설렘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국내 최장 수준의 산악 터널인 솔안터널이 완공되면서, 험준한 산악 구간을 우회하던 스위치백 노선은 정규 운행을 멈추고 역사 속으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시속 30km 안팎으로 숨을 고르며 산을 넘던 느린 철길이 지하 깊숙이 뚫린 직선 철로로 대체되는 순간입니다.

2. 왜 이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가: 고도차 극복의 역사와 산업 유산

태백과 삼척을 잇는 통리재 일대는 해발 700m 대와 200m 대의 극심한 해발 고도차를 지닌 험로입니다. 초창기 일제강점기에는 와이어로 화차를 끌어올리는 인클라인(강석철도) 방식을 사용했고, 일반 승객들은 위험한 화물차에 타지 못한 채 지게꾼의 등에 업히거나 새끼줄을 신발에 감고 고갯길을 걸어 넘어야 했습니다.

철도 관제실에서 한 남성이 여러 대의 모니터와 장비를 앞에 두고 근무 중인 모습입니다.

스위치백 구간의 안전을 책임지며 긴박하게 돌아가는 관제실의 일상입니다.

이후 1960년대에 설치된 스위치백은 기차가 스스로 산을 오를 수 있도록 만든 공학적 해법이자, 강원도 산간 지대의 석탄과 지하자원을 국토 전역으로 실어 나르던 산업화의 핵심 대동맥이었습니다. 스위치백의 폐선은 단순한 선로 교체를 넘어, 험준한 지형과 타협하며 산업 시대를 지탱해 온 한국 철도사의 한 시대가 매듭지어짐을 뜻합니다.

3. 철길을 지켜온 안전 관리와 기술적 한계

열차가 후진으로 가파른 산비탈을 내려가거나 올라가는 구조는 기관사와 역무원들에게 늘 고도의 긴장을 요구했습니다. 후진 시 전방 시야 확보가 제한적이고 경사도가 심해, 제동 장치에 미세한 이상만 생겨도 탈선으로 이어질 위험이 상존했기 때문입니다.

흥전역 역무원들은 인근 심포리역과 연계해 신호를 제어하고 주행 속도를 시속 30km 이하로 엄격히 통제하며 안전을 유지해 왔습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대량 수송과 고속화, 그리고 급경사 구간의 항구적인 안전 확보라는 과제가 결국 장대 터널을 통한 선로 직선화라는 선택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4. 선로 곁에 남겨진 사람들: 3가구 오지 마을과 흥전역의 온기

선로의 변화는 기차를 타는 승객들뿐만 아니라 철길 옆에서 평생을 살아온 주민들의 일상에도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흥전역 인근 산골에 남은 세 가구 주민들에게 기차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시간을 알려주고 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벗이었습니다.

철도 제복을 입은 남성이 사무실 공간에서 정면을 바라보며 인터뷰하고 있으며 뒤쪽 벽면에는 무재해 표지판과 게시판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깊은 산골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가족처럼 의지하는 이웃이 되어줍니다.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마땅한 도로가 없어 철로를 길 삼아 걸어 다니던 어르신들에게 흥전역 역무원들은 자식 이상의 든든한 이웃이었습니다. 부침개 한 접시를 들고 역사를 찾아 말벗을 나누던 따뜻한 교류 역시, 열차가 멈추고 역사가 기능을 다함에 따라 아쉬운 작별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5. 앞으로 무엇을 기억하고 지켜보아야 하는가

솔안터널 개통으로 영동선의 운행 시간은 단축되고 수송 효율은 크게 높아질 것입니다. 빨라진 속도는 물류와 이동의 편의를 보장하지만, 차창 밖으로 스쳐 가던 산자락의 정취와 역무원과 주민이 나누던 소박한 유대감은 이제 기억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효율을 위해 과거의 길을 닫더라도, 그 험로를 개척하며 흘린 땀방울과 철길을 지켜낸 사람들의 온기는 소중한 역사적 자산으로 보존되어야 합니다. 기술의 발전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느림의 가치'가 무엇인지 되새겨볼 시점입니다.


FAQ

스위치백 철도 구간이란 무엇인가요?

기차가 가파른 산악 지형을 한 번에 오르내리지 못할 때, 선로를 지그재그(갈 지 자) 형태로 배치하여 전진과 후진을 번갈아 수행하며 고도를 극복하는 특수 철도 운행 방식입니다.

영동선 스위치백 구간은 왜 폐선되나요?

급경사 운행에 따른 운행 시간 지연과 안전 취약성을 개선하기 위해, 산을 관통하는 신규 솔안터널이 개통되면서 기존 노선이 대체되었기 때문입니다.

스위치백 이전에는 통리재 구간을 어떻게 넘었나요?

와이어 밧줄로 화차를 끌어올리는 인클라인 철도를 사용했습니다. 승객은 열차에 탈 수 없어 고갯길을 직접 걸어서 넘어야 했습니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