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유행이 지나 촌스럽다며 버려지던 전통 나전칠기와 자개장이 글로벌 명사들의 특별 주문과 젊은 층의 호응 속에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 바다의 전복패와 숲의 황칠·옻칠을 다루며 손톱이 빠지도록 수천 번의 연마를 거치는 장인들의 집념이 독보적인 빛과 물성을 빚어냈습니다.
- 오래된 가구를 40일 넘게 수리해 되살리는 리폼 문화와 현대적 아트워크의 융합은 시간의 무게를 품은 전통 공예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보여줍니다.

한때 집집마다 안방을 차지하던 혼수 1순위 자개장은 아파트 중심의 주거 환경과 서구식 인테리어가 보편화되면서 점차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크고 무거우며 촌스럽다는 이유로 골목길에 버려지기 일쑤였던 전통 공예품이 최근 글로벌 하이엔드 예술품이자 청년 세대의 새로운 취향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묵묵히 외길을 걸어온 장인들의 손끝에서 나전칠기는 단순한 고가구를 넘어 현대적인 조형과 생활 예술로 다시 태어나는 중입니다.
1. 잊혀지던 전통 자개는 어떻게 세계와 다시 만났을까
나전칠기의 반전은 단순한 복고풍 유행에 그치지 않고, 국경을 넘는 예술적 가치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나전 외길을 33년간 걸어온 김영준 작가의 작품은 글로벌 IT 리더들과 세계적 명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세계적인 IT 거물들도 주목한 나전칠기의 아름다움은 오늘날 전통과 현대 기술을 잇는 새로운 예술적 가치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프랑스 전시에서 그의 작품을 접한 뒤 엑스박스(Xbox) 게임기에 자개를 입혀줄 것을 특별 의뢰했고, 스티브 잡스 역시 휴대폰 케이스 작업을 요청했습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명동성당 미사에서 사용된 의자 역시 옻칠을 33번 올려 완성한 나전칠기 작품이었습니다. 장롱 문짝에 갇혀 있던 자개의 오묘한 빛깔이 현대 IT 기기와 의전 가구라는 새로운 캔버스를 만나며 세계적 예술품으로 재해석된 셈입니다.
2. 자연의 재료와 인고의 시간이 빚어내는 물성의 깊이
이토록 강렬한 빛을 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나전 공예의 핵심은 바다가 키운 전복 껍데기(패)와 숲이 내어준 천연 도료의 조화에 있습니다. 장인들은 영롱하고 단단한 빛을 얻기 위해 청정 해역인 보길도 등지에서 자란 굵은 전복을 엄선합니다. 껍데기 100kg을 가공해도 쓸 수 있는 알자개는 채 10kg도 나오지 않는 희소성을 지닙니다.

나전칠기의 핵심 재료인 전복 껍데기를 얻기 위해 정성을 다해 다시마를 먹이며 키워내는 양식장의 고된 일상입니다.
여기에 옻칠과 더불어 '천년의 신비'라 불리는 황칠이 더해집니다. 수령 수십 년의 황칠나무 한 그루에서 1년에 얻을 수 있는 진액은 고작 5~10g 남짓에 불과합니다.

수십 년의 인고를 거쳐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귀한 재료가 전통 공예의 명맥을 잇습니다.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며 뿜어내는 이 진액은 굳어지며 눈부신 황금빛을 띠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검게 변하는 옻칠과 달리 황칠은 자개의 영롱한 빛을 투명하게 머금어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영속성을 부여합니다.
3. 손톱이 빠지고 온몸을 던져야 완성되는 정직한 노동
기계로 흉내 낼 수 없는 극도의 정밀함과 고된 노동이야말로 전통 공예를 지탱하는 진정한 동력입니다. 경기도 광주에서 56년째 자개를 만져온 이영옥 장인을 비롯한 장인들은 종잇장보다 얇은 알자개 100장을 겹쳐 실톱으로 오려내는 작업을 몇 시간씩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이어갑니다.

수많은 손길과 고된 과정을 거쳐 작품을 탄생시키는 장인의 공간입니다.
오래된 자개장을 복원하는 수리 현장 역시 치열합니다. 30~40년의 세월을 버틴 고가구는 표면의 묵은 칠을 벗겨내는 사포질부터 시작해 자개를 다시 맞춰 넣고, 옻칠과 건조를 수차례 반복합니다. 독한 옻칠 탓에 작업자들은 손톱이 서너 번씩 빠지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미세한 먼지조차 용납하지 않기 위해 옷을 벗고 머리를 감아가며 붓을 듭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밀가루를 묻혀 맨손으로 문지르는 '손광' 작업을 거치는데, 파리가 미끄러질 만큼 완벽한 광택을 내기 위해 온몸의 힘을 쏟아붓습니다.
4. 버리던 세대에서 복원하고 소장하는 시대로
이러한 장인들의 헌신은 현대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만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부모 세대의 유품이나 손때 묻은 옛 가구를 버리는 대신, 40여 일의 수리 기간을 감수하며 현대적 감각으로 리폼해 인테리어 포인트로 활용하는 가정이 늘고 있습니다.
동시에 2030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자개 공예 원데이 클래스가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얇은 자개 조각을 직접 다듬고 붙여보며 수공예의 어려움을 체감한 젊은 층은 자개가 지닌 정성과 노동의 값어치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과거 '올드한 가구'로 치부되던 자개가 힙하고 고급스러운 취향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5. 시간의 무게를 품은 전통,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하여
패스트 패션과 일회용 가구가 넘쳐나는 시대에,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소비 방식에 피로를 느낀 대중은 오래 묵을수록 깊이를 더하는 전통 공예의 가치에 다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자개와 칠공예는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뎌낸 나무와 조개가 인간의 끈기를 만나 영원을 얻는 예술입니다.
결국 버려지던 자개장이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던 힘은 트렌드를 좇기보다 수십 년간 묵묵히 본질을 지켜낸 장인들의 시간에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소중한 기술과 철학이 대를 이어 계승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전수 환경을 마련하고, 일상 속에서 쓰임새를 꾸준히 확장해 나가는 일일 것입니다.
FAQ
자개장에 쓰이는 자개는 어떤 재료로 만들어지나요?
주로 남해안이나 청정 해역에서 자란 전복 껍데기(패)를 얇게 가공해 만듭니다. 껍데기 100kg을 가공해도 실제 쓸 수 있는 알자개는 10kg 미만일 정도로 귀하며, 작품에 따라 진주패나 고동패, 수입 조개패 등이 함께 쓰이기도 합니다.
황칠과 옻칠은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옻칠은 바르면 검고 단단한 광택을 내며 방충과 방습 효과가 탁월합니다. 반면 황칠나무에서 채취하는 황칠은 특유의 영롱한 황금빛을 띠며, 자개 위에 칠했을 때 자개의 오묘한 빛깔을 가리지 않고 투명하게 살려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오래된 자개장을 수리하는 데 왜 40일 이상 걸리나요?
기존의 오래된 칠을 손사포질로 일일이 벗겨내고, 파손된 자개를 메운 뒤 옻칠과 건조를 수차례 반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먼지를 제거하고 밀가루 등을 이용해 맨손으로 광을 내는 복합적인 수작업 공정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