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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운상가는 청년 메이커와의 협업과 추억을 고치는 '수리수리 협동조합'을 통해 새로운 도시재생 모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 그러나 청계 3~4가 일대 제조 상가가 세입자 대책 없는 재개발 추진으로 철거 위기에 몰려 13,000여 명의 기술 생태계가 해체될 위험입니다.
  • 진정한 도시재생은 눈에 보이는 건물 신축을 넘어, 수십 년간 축적된 장인들의 인적 자산과 노하우를 살리는 데서 완성됩니다.

1960년대 말 대한민국 최초의 주상복합으로 탄생했던 세운상가가 거대한 변화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최소 30년 이상의 숙련된 기술을 가진 장인들과 청년 메이커들이 결합하며 도시재생의 상징으로 떠올랐지만, 한편에서는 인근 상가의 전면 철거 재개발로 오랜 기술 생태계가 통째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기술과 사람이 공존하는 거점으로 부활할 것인지, 아니면 부동산 개발 논리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인지 세운상가의 현주소를 짚어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도시재생의 성공과 재개발 철거라는 두 얼굴

세운상가는 2014년부터 시작된 이노베이션 사업을 통해 청년 메이커들의 연구 공간인 '세운 큐브'를 품으며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보행데크가 연결되고 젊은 창업가와 아티스트들이 입주하면서 옛 상가에는 다시금 활력이 돌기 시작했죠. 그뿐만 아니라 오디오, 기계 가공, 전자 회로 분야의 베테랑 장인들이 모여 소중한 추억이 담긴 고장 난 물건을 고쳐주는 '수리수리 협동조합'을 결성하며 따뜻한 온기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작업실에 앉은 연세 지긋한 장인이 1960년대식 흑백 텔레비전의 채널 다이얼을 돌리며 수리하고 있다.

단종된 지 오래된 낡은 가전제품도 장인의 손길을 거치면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하지만 반대편 청계 3~4가 일대 상가의 사정은 완전히 다릅니다. 오랜 세월 정밀 기계 제작과 부품 유통을 책임져 온 이곳 상인들은 대체 영업장 마련이나 충분한 협의 없이 진행되는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당장 구역을 비워줘야 하는 철거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도시재생의 모범 사례로 찬사를 받는 동안, 바로 옆에서는 삶의 터전을 잃을 비명이 터져 나오는 극단적인 대비가 펼쳐지는 셈입니다.

왜 중요한가: 대체 불가능한 '13,000명 기술 생태계'의 존폐

청계천과 세운상가 일대는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군수 물자가 유입되던 1960년대부터 형성되어 현재 13,000여 명의 기술 장인들이 촘촘한 유기적 분업망을 형성하고 있는 대한민국 제조업의 살아있는 뿌리입니다.


밝게 웃고 있는 남성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있는 옛 사진이 화면 중앙에 배치되어 있고, 사진 옆에는 '故백남준 작가와 이정성 장인'이라는 자막이 적혀 있다.

세운상가에서 잔뼈가 굵은 이정성 장인은 백남준 작가의 비디오아트를 가능하게 했던 숨은 공로자입니다.


이곳의 장인들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작가의 작품 '다다익선'을 수리하고 실현해 낸 이정성 장인이나, 진공관부터 디지털 오디오까지 맥을 짚듯 소리를 고쳐내는 이승근 장인처럼 독보적인 노하우와 숙련도를 보유한 인적 자산입니다.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도면만 들고 가면 가공부터 조립, 부품 조달까지 한 구역 안에서 해결되는 특수 생태계는 한 번 해체되면 다시는 복원할 수 없는 귀중한 가치를 지닙니다.

무엇이 이를 이끄는가: 청년과의 시너지 vs 부동산 자본의 개발 논리

상가 내부를 바꾸는 동력은 신구 세대의 완벽한 케미스트리입니다. 컴퓨터 음악이나 미디어 아트를 전공한 청년 메이커들은 도면상이나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장 기술의 한계를 느낄 때 장인들을 찾습니다. 니퍼 하나로 피복을 완벽히 벗겨내고 간단한 아이디어만으로 모듈을 수정해 주는 장인들의 내공은 청년들의 아이디어와 만나 새로운 제품 개발이라는 시너지를 냅니다.


세운상가 내 청년 메이커의 작업 공간 책상 위로 노트북과 각종 전선, 필기구, 물건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는 모습이다.

청년 창업가들이 모여든 세운상가의 작업실은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으로 늘 분주합니다.


반면, 주변 지역을 흔드는 동력은 상업적 부동산 개발 논리입니다. 오래된 공장과 점포를 허물고 대형 오피스텔과 소형 주택 단지를 건설하려는 자본의 요구가 거세지면서, 세입자와 기술자들의 거주권 및 영업권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공청회나 구체적인 이주 대책 없이 진행되는 사업 구조가 장인들과 토지주 간의 극심한 갈등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누가 영향받으며 무엇이 달라지나: 기술 전수의 기회와 영세 상인의 생계 위기

도시재생 공간에 입주한 청년 창업가들은 30년 넘는 경력의 마이스터들로부터 단순한 기술 이상의 '노동과 작업의 철학'을 배웁니다. 책이나 학원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경험적 지식을 직접 전수받으며 시제품 제작의 시행착오를 대폭 줄이고 있습니다.


줄무늬 셔츠를 입은 중년 남성이 세운상가 재개발 구역 지도가 붙은 벽 앞에 서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상가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보상 요구와 사업 진행 사이의 시각 차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개발 구역에 포함된 45년 경력의 기계 가공 장인 김진화 씨를 비롯한 수많은 상인들에게는 가족의 생계와 평생 축적한 일터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실존적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자족적인 분업 체계가 깨지면 협력업체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어 청계천 특유의 제조업 연결망 전체가 마비되는 심각한 후폭풍을 맞이하게 됩니다.

앞으로 무엇을 살필 것인가: 건물 정비를 넘어 '사람과 노하우의 재생'으로

참된 도시재생은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고 외관을 화려하게 바꾸는 데 있지 않습니다. 청계천 마이스터들이 쌓아 올린 기술적 유산과 그들이 이뤄낸 세대 간의 협업 모색은 도시가 보존해야 할 가장 소중한 소프트웨어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지자체와 개발 주체가 이들의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는 대체 산업 단지나 유통 거점을 제대로 제공할 것인지, 그리고 장인들의 숙련 기술이 소멸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 안전망을 마련할 것인지 여부입니다. 차가운 도심 속에서도 묵묵히 땀 흘려온 장인들의 손길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도시의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FAQ

세운상가 '수리수리 협동조합'은 어떤 일을 하나요?

수리수리 협동조합은 세운상가에서 최소 30년 이상 종사한 오디오, 흑백 TV, 전자 회로 등 분야별 장인 6명이 모여 만든 조합입니다. 단종되거나 오래되어 서비스센터에서도 고치지 못하는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의뢰받아 직접 수리해 주는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세운상가와 청계천 일대 재개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큰 문제는 수십 년간 형성되어 온 13,000여 명 장인들의 '유기적 분업 생태계'가 해체된다는 점입니다. 대체 영업장이나 유통 거점에 대한 충분한 대책 없이 철거가 진행되면 가공, 조립, 부품 공급이 한곳에서 이뤄지던 제조 인프라가 완전히 파괴될 위험이 있습니다.

세운상가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청년 메이커들은 어떤 혜택을 얻고 있나요?

청년 메이커들은 '세운 큐브' 같은 창업 공간에 입주해 장인들과 교류하며, 인터넷이나 책에서 얻을 수 없는 실전 노하우와 숙련된 가공 기술을 전수받아 시제품 개발 및 예술 작품 제작에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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