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최고 부촌을 떠난 공간 디자이너 강신재 씨는 신당동의 고단한 130개 계단 끝, 언젠가 철거될 빨간 벽돌집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 그는 무리한 비용을 들이지 않는 수성 페인트와 배관 가리기용 수석, 통창 뷰를 활용해 자신만의 든든한 취향의 온실을 유감없이 완성했습니다.
- 소유를 위해 오늘의 행복을 무작정 유보하지 않고, 빌린 공간 속에서 나다움을 가득 채워 살아가는 완전히 새로운 주거 대안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보통 온전한 '내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진짜 행복과 취향을 누리는 삶을 뒤로 미루곤 합니다.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할까요?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인 유엔빌리지를 떠나, 매일 130개의 고단한 계단을 올라야만 닿을 수 있는 신당동 철거촌의 낡은 월세 벽돌집으로 기꺼이 이사한 한 남자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상업 공간과 국제 비엔날레 전시를 이끈 1세대 공간 디자이너 강신재 예술감독이 그 주인공인데요. 그는 언젠가 사라질 이 빌린 집에서 비로소 인생 가장 눈물나게 따뜻한 행복을 만났다고 말합니다.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나 오늘 이 순간을 나답고 풍요롭게 채워가는 그의 특별한 주거 철학과 감각적인 공간 활용법을 만나봅니다.
소유의 집착을 버리고 스스로 가꾼 공간에서 찾은 일상의 풍요로움을 마주하게 됩니다.
사라질 집을 빌려 나를 그리다: 신당동 130개 계단 끝의 빨간 벽돌집
서울 중구 신당동,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130개의 어마어마한 계단 끝자락에 다다르면 초록색 담쟁이넝쿨로 둘러싸인 빨간 벽돌집 한 채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80년대식 주택이지만, 이곳의 실상은 약 7~8년 뒤면 완전히 헐리게 될 재개발 확정 지역의 철거 예정 가옥이랍니다.
재개발이 예정되어 곧 사라질 운명이지만, 그만큼 매 순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가꾸는 공간입니다.
이 집의 주인장은 놀랍게도 국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공간 디자이너 강신재 씨입니다. 지인이 재테크용으로 매입한 뒤 무려 4년 동안이나 차가운 곰팡이만 가득한 채 방치되어 있던 폐허 같던 곳이었죠. 하지만 신재 씨의 눈에는 이곳이 그야말로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만의 하얀 캔버스로 보였다고 합니다. 철거될 때까지만 아주 저렴한 월세로 살며 자유롭게 고쳐 써도 좋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그의 독창적인 청춘의 실험이 마침내 시작되었습니다.
소유가 주는 안락함보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선택한 이유
많은 이들이 무리하게 빚을 내어 완벽한 내 집을 사려고 애쓰거나, 전셋집이라는 이유로 인테리어는커녕 못 하나 박는 것도 조심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신재 씨는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막연한 위기감 때문에 지금 당장의 행복을 영원히 유보하는 삶을 결코 원치 않았습니다.
벽체를 철거하자 비로소 드러난 자연 암반은 이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에너지를 전합니다.
그는 이 집을 허물기 전까지 오롯이 나만의 취향이 담긴 공간 속에서 매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지하실 벽체를 과감히 허물어낸 자리에서 태곳적 숨결을 지닌 거대한 암반(바위)을 백방으로 드러나게 만들고, 그 거친 자연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생명 에너지를 일상의 보물로 삼은 것이 좋은 예입니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불편함마저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태도가 진정한 마음의 여유를 부른 셈입니다.
허물어질 공간에 숨 불어넣기, 돈 들이지 않고 취향을 채우는 법
시한부 인생을 사는 빌린 집인 만큼, 신재 씨의 인테리어 철칙은 분명했습니다. 나중에 가져갈 수 없는 기본 뼈대(베이스)에는 단 1원의 돈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그는 값비싼 목공 공사 대신 일반 무광 수성 페인트를 직접 롤러로 칠해 깔끔하고 회화적인 벽면을 구축했습니다. 천장을 뜯으며 드러난 투박한 구멍과 거친 벽돌 자국은 오히려 켜로 쌓인 시간의 흔적이자 자연스러운 개성으로 시크하게 남겨두었지요.
폐허 같던 공간이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매력적인 삶의 터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그의 빛나는 아이디어는 집안 곳곳에서 유감없이 영리하게 빛납니다.
- 노출 배관 숨기기: 새로 공사한 욕실의 보기 싫은 노출 수도 배관은 평소 그가 아끼며 모아온 자연 수석(돌)들을 겹겹이 쌓아 올려 마치 멋진 조각 작품 같은 미장센으로 완전히 탈바꿈시켰습니다.
- 소품과 패브릭 활용: 안방 침대 머리맡은 예전 전시회 작업 후 주워온 주황색 천들을 툭 걸쳐놓아, 마치 따스한 수채화가 물든 듯 정갈한 무드를 뚝딱 불어넣었습니다. 여차하면 언제든 떼어가기 편리한 세입자 최고의 팁이죠.
- 이동식 가구 투자: 바닥이나 천장 마감은 가장 저렴한 비닐 타일과 페인트로 끝냈지만, 가구만큼은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드렉셀 헤리티지의 소장 가치 높은 빈티지 테이블처럼 대대로 가져갈 명품에 대담하게 투자했습니다. 소유하지 않아도 평생 함께 이동할 수 있는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했던 산동네의 기억에서 찾은 나만을 위한 온전한 방
사실 그가 이토록 자신만의 취향이 가득 찬 온전한 방에 집착하게 된 데에는 눈물나게 가슴 아픈 가족사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1950~60년대 촉망받던 영화감독이셨던 그의 아버지는 외국 영화의 수입과 함께 가세가 쫄딱 기울어, 만년을 지독한 가난 속에 보내셨다고 합니다. 정릉 산동네의 정갈하지 못한 한 칸짜리 좁디좁은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부대끼며 고단하게 자랐던 청년 신재 씨의 평생 소원은 바로 '나만의 방' 하나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치열한 구슬땀 끝에 남들의 호화로운 상업 공간을 수없이 멋지게 지어주며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정작 본인의 온전한 안식처는 늘 부재했습니다. 심지어 2년 전 겪은 이혼의 고독 후에 마침내 도달한 이 신당동의 130개 계단 집에서, 그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가슴속 본질적 취향을 원 없이 마음껏 구현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 공사를 마친 차가운 욕실에서 정성스레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던 날,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벅찬 행복감에 신재 씨는 본인도 모르게 눈물이 가슴 깊이 직 흘러내렸다고 아스라이 고백합니다.
당신은 지금 '기억'에 거주하고 있나요?
이 집에서 강신재 씨가 가장 뜨겁게 사랑하는 보물은 단연 남산에서 북한산, 인수봉까지 서울의 명산들이 한눈에 병풍처럼 시원하게 와닿는 거대한 거실 통창 풍경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아름다운 석양의 놀빛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양문형 샷시 창을 과감하게 헐고 프레임 없는 단 하나의 통창을 완성해 내는 데에만 고심하여 신경을 썼답니다. 겨울에는 실내 온도가 15도 아래로 뚝 떨어져서 내의에 겹겹이 두꺼운 겨울 양말을 신어야 하는 지독한 겨울 추위를 맛보고 있지만, 그는 매서운 추위마저도 삶을 건강하고 생생하게 일깨워주는 위대한 훈련이라며 한결 가볍게 웃어 보였습니다.
자연이 그려낸 초록빛 담쟁이와 함께 나만의 취향이 온전히 깃든 공간은 매일 새로운 위로를 건넵니다.
"우리가 공간이라 부르는 곳에 살고 있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사실 저마다의 소중한 기억 속에 거주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순간 느꼈던 공기와 습도, 소리, 온도, 정갈한 냄새가 차곡차곡 쌓여 우리의 진짜 인생 철학이자 취향이 되지 않을까요?"
집은 그저 돈을 보관하고 증식시키는 똑똑한 부동산 부동산 재테크의 도구가 아니라, 영혼을 담는 하얀 캔버스라는 점을 그의 가쁜 구슬땀이 일깨워줍니다. 소유를 향한 숨 가쁜 속도전을 조금만 줄인다면, 어쩌면 당신이 머무는 오늘의 낡은 전월세 주택도 그 어떤 고급 호텔 부럽지 않은 가득한 위로의 숲으로 다시 태어날지 모릅니다. 당신에게도 지금 이 순간, 온전히 나다워질 수 있는 당신만의 든든한 방 한 칸이 마음 한편에 준비되어 있나요?
FAQ
재개발로 곧 철거될 빌린 집에 큰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해도 손해가 아닐까요?
강신재 공간 디자이너의 철칙은 '가져갈 수 없는 베이스(바닥, 천장 등)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목공사 대신 저렴한 무광 수성 페인트를 직접 칠하고, 가구는 이사 갈 때 평소 소장 가치가 높고 가격이 오르는 검증된 이동식 빈티지 제품에 집중적으로 투자했습니다. 안방도 수성 페인트 대신 남은 천이나 패브릭을 활용해 언제든 쉽게 떼어가도록 지혜롭게 꾸몄습니다.
오래된 구옥이나 철거 예정 가옥의 단열과 누수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요?
별도의 값비싼 단열 시공이나 복잡한 샷시 보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한겨울 실내 온도가 15도 안팎으로 다소 춥습니다. 신재 씨는 내복과 방한 양말을 겹겹이 겹쳐 입으며 몸을 자발적으로 추위에 길들이는 여유로운 삶을 택했습니다. 천장에 남은 누수의 흔적 또한 완벽주의를 버리고 인간적인 빈틈으로 받아들이는 감성적 여유와 인내심으로 함께 동거하고 있습니다.
욕실 노출 배관을 돌로 가린 인테리어는 어떤 원리인가요?
노후된 구옥이라 벽면에 수도 배관을 매립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배관이 밖으로 돌출되는 공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는 미관상 보기 좋지 않은 노출 동파이프 배관 앞과 아래에 평소 수집해둔 다양한 모양의 천연 수석들을 조화롭게 차곡차곡 쌓아 배치했습니다. 덕분에 배관은 자연스럽게 가려지면서도 마치 현대 미술 갤러리 속 웅장한 아방가르드 석제 조각상 같은 세련된 욕실 인테리어가 완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