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터를 잡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개미마을'은 여전히 연탄을 때며 쓸쓸히 빈집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 가파른 경사와 개발 제한 규제로 인해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는 소외된 곳이지만, 주민들은 텃밭을 일구며 정을 나눕니다.
- 삭막한 현대 도시 속에서 대문도 없이 이웃과 밥상을 나누는 개미마을의 인심은 진정한 공동체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 이 포스트는 2017년 10월 6일에 방송된 <한국기행 - 가을 버스 안에서 5부 종점에서 내립니다>의 일부를 발췌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서울의 가장 높은 곳, 홍제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종점에 다다르면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한 '개미마을'이 마주합니다. 이곳은 화려한 빌딩 숲 뒤편에서 전기와 수도는 들어와도 도시가스는 들어오지 않는 서울의 마지막 시골이자, 빈집이 늘어가는 쓸쓸한 달동네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가파른 골목길 끝에는 대문 없이 이웃과 텃밭을 나누는 따뜻한 온기가 그야말로 기적처럼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서울의 가장 높은 종점, 늘어가는 빈집과 멈춰버린 시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인왕산 자락 꼭대기. 그곳에 자리한 개미마을은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천막을 치고 살기 시작하며 형성된 유서 깊은 곳입니다. 옛날에는 천막 집이 많아 '인디언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지요. 마을버스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 종점 마을은, 가파른 경사만큼이나 세상의 빠른 변화와는 조금 동떨어진 채 남겨져 있습니다.
서울의 가파른 언덕 끝, 개미마을로 향하는 유일한 마을버스 안에서 기사님이 정겨운 대화를 건넵니다.
최근 이곳은 쓸쓸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한때 마을을 가득 채웠던 웃음소리는 잦아들고, 곳곳에 온기 잃은 빈집들이 늘어만 가고 있죠. 과거 화려하게 그려졌던 벽화들은 낡아가고, 대단지 아파트 개발의 꿈마저 좌절되면서 많은 이들이 정든 터전을 떠나갔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존재하지만, 그 누구보다 쓸쓸한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개미마을의 오늘입니다.
사라져가는 '이웃사촌'의 가치를 품은 마지막 보루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 낡고 외진 달동네를 주목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현대 도시인들이 잃어버린 공동체의 따뜻한 정(정)이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웃끼리 얼굴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삭막한 아파트 공화국에서, 개미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서로를 '가족보다 더 가까운 이웃사촌'이라 부릅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 골목길마다 가을의 정취가 깊게 내려앉아 있습니다.
이곳의 가을은 유독 풍성합니다. 집집마다 가꾼 작은 텃밭에서 배추며 고추, 호박을 수확하면 시장에 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웃들과 아낌없이 나누어 먹기 때문입니다. 내 텃밭이 아니어도 "필요한 만큼 언제든 뽑아 먹으라"며 대환영하는 넉넉한 인심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이 마을만의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인프라 소외와 개발 규제가 만들어낸 '서울의 시골'
이 마을이 21세기 서울에서 여전히 '마지막 시골'로 남아있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가장 큰 원인은 험난한 고지대 지형과 가혹한 개발 규제에 있습니다. 지대가 너무 높은 탓에 도시가스 관로를 묻기 어려워, 주민들은 지금도 추운 겨울이 오면 연탄과 석유로 난방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서울의 가파른 언덕 위, 여전히 연탄을 사용하는 마을로 향하는 버스 안의 풍경입니다.
게다가 이곳은 함부로 집을 헐고 새로 지을 수 없는 규제 지역으로 묶여 있습니다. 낡은 집을 헐어 새 아파트를 짓거나 멋진 현대식 건물을 올리는 개발이 불가능하다 보니, 주민들은 비가 새고 바람이 부는 집을 그저 조금씩 고쳐가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물리적 한계와 제도적 소외가 역설적으로 이 마을의 옛 풍경을 보존하게 만든 원동력이 된 셈입니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정을 나누는 주민들의 일상
이 험하고 고단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삶을 일궈가는 주민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매일같이 곡예 운전하듯 오르내리는 마을버스 기사님, 30년 넘게 살며 동네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내는 주민 이금숙 씨, 그리고 수십 년 전 시집와 평생을 개미마을에서 보낸 어르신들까지.
텃밭에서 직접 가꾼 채소로 차린 정겨운 가을 밥상은 이웃과 나누는 따뜻한 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살기 불편한 것투성이지만 정을 나누며 사는 이만한 곳이 없다"고 말합니다. 시어머니가 살아계실 적 담갔던 무려 10년 묵은 된장으로 푹 끓여낸 배추국 한 그릇에 이웃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밥상을 나누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눈물나게 든든하게 채워줍니다.
보존과 개발의 갈림길, 개미마을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요?
앞으로 개미마을은 어떤 내일을 맞이하게 될까요? 빈집이 늘어나고 주민들이 고령화되면서 마을의 자생력은 조금씩 약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낡은 달동네를 허물고 고층 아파트를 짓는 개발 논리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진정한 '삶의 철학'과 '이웃의 가치'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욕심 없이 이웃과 정을 나누는 개미마을의 가을 밥상. 바쁘게만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이 따뜻한 울림이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오늘 저녁, 당신의 이웃은 안녕한가요?
FAQ
개미마을은 왜 '인디언촌'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나요?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인왕산 자락 꼭대기 가파른 지대에 천막을 치고 임시 거처를 마련해 살기 시작하면서, 그 모습이 마치 인디언들의 부락 같다고 하여 붙여진 옛 이름입니다.
서울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왕산 등산로 입구의 매우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어 지형이 가파르고 험난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적, 비용적 한계로 인해 도시가스 관로 매설이 어려워 현재도 연탄과 석유로 난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개미마을의 집들은 왜 재개발되거나 새로 지어지지 않나요?
해당 지역은 법적으로 기존 건물을 헐고 새 집을 짓는 신축 행위가 제한되어 있는 규제 구역입니다. 따라서 주민들은 집을 허물지 못하고 비가 새거나 낡은 부분만 조금씩 고쳐가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