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남 어란진항은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성질이 급해 산지에서만 회로 맛볼 수 있는 귀한 삼치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 25년 경력의 이홍연 선장은 대나무를 활용한 전통 끌낚시와 외줄낚시로 바다와 치열한 속도전을 벌이며 싱싱한 삼치를 낚아 올립니다.
- 욕심부리지 않고 자연이 허락한 만큼만 거두어들이는 어부의 땀방울 덕분에, 해남의 가을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따뜻하게 채워집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이맘때가 되면 전남 해남의 어란진항은 그야말로 활기로 가득 찹니다. 성질이 급해 물 밖으로 나오면 금방 상해버리는 삼치를 가장 싱싱한 회로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바로 지금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바닷가와 인접한 해남에서만 누릴 수 있는 이 특별한 별미는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어부들의 고단한 구슬땀이 빚어낸 값진 결실입니다.
항구에 불어온 가을바람, 삼치 계절의 막이 오르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해남 사람들의 마음은 설레기 시작합니다. 고구마만큼이나 이 동네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가을의 주인공, 바로 삼치 덕분인데요. 삼치의 계절이 시작되면 어란진항의 하루는 남들보다 훨씬 이른 새벽에 시작됩니다.
삼치의 계절이 시작되면 어란진항의 하루는 남들보다 훨씬 이른 새벽부터 활기차게 돌아갑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녘, 바다로 나갈 채비에 분주한 이가 있습니다. 바로 25년 차 베테랑 이홍연 선장입니다. 삼치는 동이 트면서 먹이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날이 밝기 전에 서둘러 바다로 나가야만 제대로 손맛을 볼 수 있대요. 만선의 꿈을 품고 어스름을 뚫고 나가는 배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르면, 그야말로 경이로운 자연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삼치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새벽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부들은 남들보다 일찍 바다로 향합니다.
왜 해남 삼치회여야만 할까? 선도와 부드러움의 비밀
많은 이들이 삼치를 구이로만 기억하지만, 진짜 삼치의 참맛은 회에 있답니다. 특히 10월부터 1월까지 잡히는 삼치는 몸에 기름기가 돌아 고소함이 절정에 달하는데요. 하지만 삼치는 성질이 급해 수조 안에서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금방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산지인 해남을 벗어나면 횟감으로 쓸 수 있는 선도를 유지하기가 무척 어렵죠.
해남 삼치회는 잇몸으로만 씹어도 될 정도로 살이 연하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입니다. 도톰하게 썰어낸 삼치회를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해남에선 특별하게 먹는 법이 따로 있다네요. 바로 하얀 쌀밥과 짭조름한 양념장을 곁들여 생김에 싸 먹는 방식입니다. 김의 달짝지근한 맛과 삼치의 고소한 기름기가 밥알과 어우러지면서 입안 가득 행복한 풍미가 가득 차오릅니다. 여기에 불맛을 입혀 바싹 구워낸 짭조름한 삼치 머리구이까지 곁들이면 그야말로 완벽한 가을 밥상이 완성됩니다.
대나무와 가짜 미끼, 전통 어법이 길어 올린 구슬땀
이토록 귀한 삼치를 잡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홍연 선장은 양쪽에 기다란 대나무를 펼쳐 설치하는 전통 어법을 고수합니다. 빠른 먹잇감을 쫓는 삼치의 습성을 이용해, 대나무 낚싯대에 여러 개의 낚싯줄을 달고 배를 계속 움직이며 유인하는 '끌낚시' 방식입니다.
멸치를 닮은 가짜 미끼를 활용해 삼치를 낚아 올리는 어부의 노련한 손길이 바다 위에서 분주하게 이어집니다.
하지만 바다는 쉽게 풍요를 허락하지 않는 법이죠. 조류와 바람의 영향으로 한동안 입질이 없어 선장의 마음이 초조해질 때쯤, 선장은 과감히 장소를 옮기고 미끼를 바꿉니다. 이번에는 멸치 모양을 닮은 가짜 미끼를 이용한 외줄낚시입니다. 미끼를 바꾸자마자 애타게 기다리던 삼치가 그야말로 줄줄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삼치잡이는 고도의 집중력과 속도가 생명입니다. 이빨이 날카로운 삼치는 조금만 타이밍을 놓치면 날카로운 이빨로 줄을 끊고 달아나기 일쑤거든요. 올라오는 삼치를 잽싸게 낚아채는 선장의 손놀림에는 오랜 세월 바다와 맞서며 다져진 노련함이 묻어납니다. 묵직한 손맛과 함께 수조가 푸른 삼치로 가득 찰 때, 어부의 얼굴에는 비로소 환한 미소가 번집니다.
새벽 바다를 가르고 올라온 묵직한 삼치가 어부의 오랜 기다림에 보답합니다.
배가 닿자마자 시작되는 눈치싸움, 순식간에 동나는 만선
조업을 마친 배가 어란진항으로 돌아오면, 항구는 또 한 번 들썩입니다. 배가 정박하기도 전에 싱싱한 삼치를 먼저 차지하려는 단골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갓 잡아 올려 눈이 맑고 몸빛이 번쩍이는 삼치를 직접 눈으로 보고 살 수 있으니, 손님들의 눈치싸움도 치열할 수밖에요.
이곳의 삼치는 저울에 무게를 달아 킬로그램(kg)당 가격으로 거래됩니다. 큼직한 삼치 몇 마리를 올리니 금세 14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 책정됩니다. 이날 이홍연 선장이 잡은 삼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완판되며 무려 120만 원 상당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힘들게 바닷바람을 맞으며 일한 수고가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 좋은 순간입니다. 내가 땀 흘려 잡은 고기를 이웃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 어부들에게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있을까요?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삶, 해남 바다가 건네는 위로
바다 위에서는 결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어부들의 오랜 철학입니다. 바다가 주는 대로,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거두어들이는 여유와 지혜가 있기에 어부들은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거친 파도로 나아갑니다.
해남 어란진항의 가을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정직한 땀방울을 흘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차려내는 따뜻하고 풍요로운 밥상이 있기에 해남의 가을은 깊어갈수록 더욱 아름답게 빛납니다. 오늘 저녁,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제철 음식으로 지친 일상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FAQ
삼치는 왜 해남과 같은 산지에서만 회로 먹을 수 있나요?
삼치는 성질이 매우 급해 물 밖으로 나오면 선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쉽게 상합니다. 따라서 활어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워, 바닷가와 인접한 해남 등의 산지가 아니면 싱싱한 회로 즐기기 어렵습니다.
해남 사람들이 삼치회를 먹을 때 하얀 쌀밥과 김을 곁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삼치회 자체의 부드럽고 고소한 기름진 맛에 하얀 쌀밥의 단맛, 그리고 생김 특유의 달짝지근하고 짭조름한 풍미가 더해져 삼치의 맛을 극대화해 주기 때문입니다.
삼치 조업에 대나무를 사용하는 전통 어법은 어떤 원리인가요?
대나무 낚싯대에 여러 개의 낚싯줄을 달아 배가 달릴 때 줄이 엉키지 않고 넓게 퍼지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빠른 먹잇감을 쫓아다니는 삼치의 습성을 겨냥한 전통적인 끌낚시 기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