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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 악용을 우려해 혁신적인 '거미 신발'을 출시 직전 전량 폐기한 권동칠 대표의 결단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 스타 마케팅 대신 수백억 원의 R&D 투자를 고집하며 세계 최초 290g 초경량 등산화와 1초 만에 신는 신발 등 수많은 혁신을 일구어냈습니다.
  • 전쟁 여파로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부산 시민들과 예비역들의 자발적인 '오픈런'으로 기사회생하며, 상생과 보답의 따뜻한 기업 문화를 증명했습니다.

돈을 쫓기보다 사람을 향하는 기술, 그리고 눈앞의 이익보다 사회적 책임을 먼저 생각하는 진짜 기업인의 고집을 만났습니다. 연간 50만에서 60만 켤레의 신발을 군과 경찰, 소방관에게 납품하며 우리 이웃들의 발을 묵묵히 지켜온 권동칠 대표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수백억 원의 개발비를 들여 완성한 혁신적인 신발을 출시 직전에 전량 폐기하는 믿기 힘든 결단을 내렸습니다. 단지 사회에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이토록 정직하고 따뜻한 철학을 가진 토종 신발 브랜드가 어떻게 세계적인 기술을 만들고, 위기 속에서 시민들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는지 그 감동적인 여정을 따라가 봅니다.

출시 직전 전량 폐기된 '천재적인 신발'의 비밀

시작은 외벽 청소를 하시는 분들의 안전을 지키고 싶다는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 높은 곳에서 밧줄 하나에 의지해 일하는 노동자들의 위험천만한 모습을 본 권동칠 대표는, 벽에 착 달라붙어 자유롭게 움직이는 거미의 발 구조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수많은 거미를 직접 관찰하고 연구한 끝에, 마침내 수직 벽면에서도 엄청난 접지력을 발휘하는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거미 신발'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지요.

그런데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제품을 세상에 선보이기 바로 직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당시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탈옥수 신창원이 도피 과정에서 주택 외벽을 타고 침입해 절도 행각을 벌였다는 뉴스를 접한 것입니다.


과거 뉴스 화면 속 현상수배 전단지에 흐릿하게 처리된 인물의 사진이 담겨 있다.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해 혁신적인 신발 개발을 포기해야 했던 당시의 긴박한 상황입니다.


그 순간 권동칠 대표의 머릿속에는 번뜩이는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만약 이 신발이 세상에 나와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 범죄에 악용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망설임 없이 결단을 내렸습니다. 개발에 들어간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뒤로한 채, 출시 직전의 신발을 전량 폐기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윤보다 사회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 참으로 눈물겹고도 위대한 고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타 광고 대신 '기술과 책임'을 택한 고집

이러한 남다른 철학은 그의 경영 방식 전반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현대의 수많은 기업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인기 스타를 모델로 기용해 수십, 수백억 원의 광고비를 쏟아붓곤 합니다. 하지만 권동칠 대표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 돈을 스타에게 주기보다 더 안전하고 편안한 신발을 개발하는 데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소비자를 향한 진정한 보답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제품 개발비로만 무려 수백억 원을 아낌없이 쏟아부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신발 개발하다가 회사 망하겠다"는 소리까지 흘러나왔지만 그의 발명 열정은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중년 남성과 서장훈이 실내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화면에는 '평소에 신발 신고 벗는 걸 싫어하시죠?'라는 자막이 떠 있다.

신발을 신고 벗는 번거로움을 꿰뚫어 본 대표의 예리한 통찰력이 대화의 분위기를 이끕니다.


선수 시절 단단한 농구화 끈을 꽉 조이느라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여 이제는 신발 신고 벗는 것조차 힘들어한다는 서장훈 씨의 사연을 듣고, 그는 허리 한번 숙이지 않고 손도 대지 않은 채 단 '1초 만에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직접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일상 속 아주 작은 불편함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기술로 해결하려는 집념, 그것이 바로 그가 길러낸 기술력의 원천입니다.

가난했던 소년에서 세계 최초 '290g 등산화'의 신화로

그가 이토록 신발에 미치게 된 배경에는 가난하고 고단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방학이면 하루 세끼조차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고, 신발이라고는 평생 단 한 켤레뿐이었던 소년이었습니다. 오직 돈을 벌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대학 졸업 전인 1981년, 당시 대한민국 신발 산업의 메카였던 부산의 한 신발 회사에 입사하게 됩니다.


젊은 시절 정장을 입고 서 있는 남성의 모습이 담긴 오래된 사진 액자

해외 브랜드 유치와 생산을 책임지며 신발 전문가로서의 기반을 다지던 시절의 모습입니다.


당시 부산은 전 세계 신발 공급의 70%를 담당하며 유명 글로벌 브랜드들의 제품을 도맡아 생산하던 황금기였습니다. 그는 해외 영업 책임자로서 밤낮없이 구슬땀을 흘렸고, 그의 성실함과 비범한 능력을 알아본 해외 바이어의 신뢰 덕분에 1988년 마침내 창업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하지만 남의 브랜드를 대신 만들어주는 OEM 방식은 마치 소작농과 같았습니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져야 비로소 자식을 키우는 것과 같다는 깨달음을 얻은 그는 1994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토종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 자체 브랜드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1998년, 전 세계 등산 문화를 뒤흔든 기적이 일어납니다. 당시 보통 1kg에 육박하던 무거운 등산화 시장에, 계란 4개 무게에 불과한 290g 초경량 등산화를 세계 최초로 선보인 것입니다. 신발 내부의 무거운 철판을 걷어내고 전 세계 최초로 카본 소재를 접목한 이 혁신적인 등산화는, 처음에는 등산화가 아니라며 외면받기도 했지만 직접 신어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며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연 매출 3,000억 원, 종업원 6,000명이라는 경이로운 신화는 그렇게 정직한 땀방울 위에서 쓰였습니다.

위기의 순간, 기업을 살려낸 시민들의 '눈물겨운 오픈런'

하지만 인생의 탄탄대로만 같던 그에게도 가혹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 여파로 유럽 수출길이 막히면서 회사는 순식간에 부도 직전의 위기로 내몰렸습니다. 급기야 평생의 피땀이 서린 회사 건물까지 매각해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이르렀지요.

그런데 이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향토 기업이 쓰러져간다는 소식을 접한 부산 시민들이 "이런 착한 기업은 절대 망하면 안 된다"며 자발적으로 지갑을 열기 시작한 것입니다. 매장 앞에는 신발을 사려는 시민들의 행렬로 그야말로 '눈물겨운 오픈런'이 펼쳐졌습니다. 여기에 권 대표가 만든 편안한 전투화를 신고 무사히 군 복무를 마쳤던 전국의 예비역들까지 가세해 힘을 보탰습니다.

시민들이 보여준 따뜻한 정에 깊은 감동을 받은 권동칠 대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2024년 영남 지역에 대형 산불이 발생하자마자 수천 켤레의 신발을 이재민들을 위해 기부하며 받은 사랑을 고스란히 사회로 돌려주었습니다. 어려울 때 돕고, 성공했을 때 나누는 상생의 선순환이 실현되는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한국 토종 브랜드가 꿈꾸는 '세계 1위'의 내일

권동칠 대표의 시선은 이제 더 먼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비록 수많은 실패를 겪었고 지금도 예상치 못한 풍파를 맞닥뜨리지만, 그의 사전에는 결코 포기란 없습니다. 한국의 토종 신발 브랜드가 전 세계의 쟁쟁한 거인들을 뛰어넘어 세계 1위의 자리에 우뚝 서는 것, 그것이 그가 가슴속에 품은 평생의 마지막 꿈입니다.

이윤만을 좇아 빠르게 달리는 세상 속에서, 조금 늦더라도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정직한 노동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그의 묵묵한 발걸음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진심을 담아 만든 신발로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그의 아름다운 도전이 세계 정상에 닿는 그날까지, 따뜻한 응원을 보냅니다. 여러분의 발끝에도 오늘 하루, 이토록 정성 어린 온기가 닿기를 바랍니다.


FAQ

거미 신발은 정말로 벽을 탈 수 있었나요? 왜 출시하지 않았나요?

네, 실제 거미의 발 구조를 관찰하고 연구하여 고층 건물 외벽 청소부들의 안전을 위해 개발된 혁신적인 접지력을 가진 신발이었습니다. 하지만 출시 직전, 탈옥수 신창원이 외벽을 타고 침입해 도피 자금을 마련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범죄에 악용될 것을 우려하여 전량 폐기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290g 초경량 등산화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과거 1kg에 달하던 무거운 등산화 때문에 발을 다치는 직원들을 보며 가벼운 등산화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무게를 1g 줄일 때마다 직원들에게 100만 원의 포상금을 거는 등 혁신을 장려했고, 등산화 내부에 들어가던 철판을 빼고 세계 최초로 카본 소재를 적용하여 계란 4개 무게인 290g 초경량 등산화를 완성했습니다.

최근에 겪은 부도 위기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유럽 수출길이 막혀 회사 건물까지 매각하는 등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부산 시민들이 향토 기업을 살리기 위해 자발적인 '오픈런' 구매 운동을 벌였고, 그의 편안한 전투화를 신었던 예비역들까지 동참하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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