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_banner
  • 기원전부터 우리와 함께하며 임금의 진상품으로 바쳐지던 제주 흑우는 일제강점기의 털색 규정으로 인해 졸지에 잡종 취급을 받으며 멸종 위기에 처했습니다.
  • 1980년대 불과 20여 마리만 남았던 벼랑 끝 상황에서, 과학적인 인공수정 복원 기술과 우직하게 소를 지켜낸 농부들의 땀방울이 모여 기적적인 개체 수 회복을 이뤄냈습니다.
  • 현재 1,700여 마리까지 늘어난 흑우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향후 1만 마리 증식을 목표로 우리 곁에 온전히 자리 잡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라산의 푸른 바람이 불어오는 제주의 한 목장. "우여~ 구~" 알아들을 수 없는 고즈넉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면, 숲속에서 까만 소 떼가 주인을 따라 묵묵히 걸어 나옵니다. 우리는 한우라고 하면 으레 누렁소만 떠올립니다. 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까만 소, '제주 흑우' 역시 까마득한 옛날부터 우리와 함께해 온 든든한 식구였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멸종 위기에 처했던 우리의 검은 소가 최근 과학적 복원과 우직한 농부들의 땀방울 덕분에 다시 제주의 초원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잃어버릴 뻔했던 검은 소의 뭉클한 귀환, 대체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 걸까요?

왕의 진상품에서 하루아침에 잡종이 된 비극

검은 소는 결코 낯선 외래종이 아닙니다. 고구려 안악 3호분 벽화에 그 늠름한 자태가 남아있고, 조선왕조실록과 탐라순력도에는 임금님께 바치는 진상품이자 나라 제사의 신성한 제물로 기록되어 있죠. 불과 6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도 전체 소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흑우는 우리에게 무척이나 친숙하고 귀한 존재였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배에 소를 싣고 있는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 자료

일제강점기 시절 수많은 흑우가 일본으로 강제 반출되던 당시의 아픈 역사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토록 사랑받던 검은 소가 왜 우리 기억 속에서 까맣게 잊힌 걸까요? 그 눈물 나는 시련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제는 한우의 표준 털색을 적색을 띠는 '황우' 하나로만 규정해버렸습니다. 졸지에 우리의 토종 검은 소는 명분도 없이 잡종 취급을 받게 된 겁니다. 게다가 빼앗겨 일본으로 유출된 흑우만 기록상 무려 200만 마리에 달했습니다. 축산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검은 소 사육을 기피하게 되었고, 그렇게 흑우는 서서히 제주의 푸른 들녘에서 설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벼랑 끝 23마리에서 시작된 기적의 복원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멸종의 길을 걷던 흑우. 1980년대 중반 무렵, 제주도 전체를 통틀어 남은 흑우는 고작 23마리에서 30마리 남짓이었습니다. 그마저도 15살에서 20살에 이르는 고령의 소들뿐이었죠. 자칫하면 이 땅에서 검은 소의 명맥이 영영 끊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제주 흑우들이 파란색 금속 틀로 된 보정틀 안에 서 있고, 옆에서 농부가 고삐를 잡고 있다.

멸종 위기에 처했던 제주 흑우를 되살리기 위해 과학적인 혈통 관리와 인공수정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1993년,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흑우를 되살리기 위한 극적인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전문가들은 마지막 남은 제주 흑우 씨수소에서 정액을 채취해 영하 196도의 액체 질소에 동결 보존했습니다. 그리고 나이 든 암소들에게 불임 치료를 해가며 조심스럽게 인공수정을 시도했죠.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려는 그 간절한 정성 덕분이었을까요? 다행히 네 마리의 암소가 임신에 성공했고, 2002년에는 214마리로 기적적인 부활을 알렸습니다.

바보 소리를 들으며 지켜낸 우직한 뚝심

이 기적의 이면에는 첨단 과학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황우만 찾으며 앞다투어 검은 소를 내다 팔 때, '바보' 소리를 들으면서도 묵묵히 흑우를 지켜낸 뚝심 있는 농부들이 있었습니다. 3대째 옛 방식 그대로 흑우를 키워온 고완수 할아버지의 삶이 바로 그렇습니다.


검은 모자를 쓴 중년 남성이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밖을 보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소들을 부르며 방목지로 향하는 고완수 씨의 일상입니다.


해발 400미터의 거친 땅. 할아버지가 부르는 구수한 노랫가락에 맞춰 소들이 졸졸 뒤를 따르는 진풍경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감동을 줍니다. 뼈마디가 굵어 일도 잘하고, 야무진 체구로 제주의 거친 기후도 거뜬히 버텨내는 검은 소. 할아버지에게 흑우는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평생 고단한 삶을 함께 버텨준 든든한 버팀목이자 가족이었습니다. 쉽고 빠른 것만 좇는 세상 속에서, 이런 묵묵한 헌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검은 소를 영영 잃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달리는 검은 쉐, 우리 곁으로 돌아오다

오랜 시간과 수많은 이들의 땀방울이 모여, 한때 전설로 사라질 뻔했던 제주 흑우는 이제 1,700여 마리까지 그 수를 늘렸습니다. 2013년에는 그 역사적, 유전적 가치를 인정받아 당당히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했죠.


연구실에서 위생복을 입은 두 연구원이 액체 질소 탱크를 다루며 흑우 정액을 보관하고 있다.

멸종 위기였던 제주 흑우를 되살리기 위해 전문가들은 동결 보존 기술을 활용해 종 복원에 힘쓰고 있습니다.


제주 흑우연구센터와 축산진흥원은 지금도 우수한 혈통의 씨수소를 특별 관리하며 종 복원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1만 마리 이상으로 증식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랍니다. 임금의 소였고, 나라의 소였으며, 척박한 땅을 일구던 농부들의 다정한 식구였던 검은 소. 그 강인하고도 따뜻한 검은빛이 앞으로도 우리 한반도의 푸른 들녘을 힘차게 누비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당신의 기억 속에도 이제 든든한 '검은 소' 한 마리가 자리 잡으셨나요?


FAQ

한우는 원래 누런색만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구려 벽화와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는 온몸이 까만 '흑우' 역시 우리의 자랑스러운 토종 소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털색을 적색(황우)으로 표준화하면서 검은 소가 부당하게 잡종으로 몰렸을 뿐입니다.

멸종 위기였던 흑우는 어떻게 다시 늘어났나요?

1990년대 초반, 마지막 남은 흑우 씨수소의 정액을 동결 보존한 뒤 고령의 암소에게 불임 치료와 인공수정을 시도했습니다. 이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20여 마리 남짓이었던 흑우가 현재 1,700여 마리까지 늘어날 수 있었습니다.

제주 흑우는 일반 한우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체구는 약간 작고 성장 기간도 6개월 정도 더 걸리지만, 뼈마디가 굵고 야무져서 제주의 거친 환경에 잘 적응합니다. 예로부터 일소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낸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습니다.


원본 영상 보기

# EBS다큐
# 검은소
# 농업
# 동물보호
# 일제강점기
# 제주흑우
# 종복원
# 천연기념물
# 토종한우
멸종한 줄 알았던 조선 시대 흑우, 알고보니|하나뿐인지구|#골라듄다큐 - 이글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