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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대 과학과 철학은 인간을 추상화하고 단순한 인과관계로 설명하려 했지만, 소설은 삶의 구체적인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탐구해 왔습니다.
  • 밀란 쿤데라는 소설이 단순한 오락적 허구가 아니라, 실존의 다양한 가능성과 애매모호함을 탐구하는 독보적인 사유 형태라고 지적합니다.
  • 모든 것을 단정적 확언과 명확함으로 일괄 해석하려는 현대 사회에서, 소설적 상상력과 유희의 정신을 회복하는 일은 사고의 경직을 막는 주요한 계기가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현상을 뇌과학이나 진화심리학, 혹은 명확한 논리적 수치로 해명하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직관적이고 명쾌한 설명은 사태를 빠르게 이해하도록 돕지만, 과연 인간 존재가 명확한 인과법칙이나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전부 설명될 수 있는지는 깊은 의문이 남습니다. 저 역시 철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명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철학의 무력함을 느낄 때가 많은데요. 근대 철학과 과학주의가 인간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동안, 소설은 삶의 구체적인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탐구하며 독보적인 가치를 증명해 왔습니다.


실내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하는 젊은 남성과 그 옆에 '문학이 철학보다 위대한 이유'라는 제목과 함께 밀란 쿤데라의 흑백 사진이 띄워진 영상 화면.

과학적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삶의 구체적인 복잡성을 문학이 어떻게 포착하는지 밀란 쿤데라의 시선으로 살펴봅니다.


철학과 과학이 놓친 인간 존재의 구체성

현대 인문학 지평에서는 과학적 사고가 인간을 이해하는 유일한 열쇠처럼 취급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떠한 심리 현상이나 행동 패턴을 진화심리학적 맥락으로 설명하면 대중은 이를 완벽한 정답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그러나 철학자 후설과 하이데거가 지적했듯,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 학문은 구체적인 인간 존재의 풍성한 층위를 추상적인 지식으로 환원해 버리는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저서 《소설의 기술》(1986)에서 철학자들의 이러한 진단조차 소설가들의 업적을 평가절하한 결과라고 반박합니다. 현대 철학이 이제야 다루기 시작한 존재의 구체성과 실존적 분석을, 유럽의 소설가들은 이미 세르반테스 이래 수백 년 동안 지속해서 수행해 왔다는 것입니다. 내면의 미세한 움직임을 세세히 파헤친 새뮤얼 리처드슨부터 역사와 일상, 비합리적인 계기,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순간을 포착한 프루스트와 조이스에 이르기까지 소설은 이미 인간 존재의 수많은 측면을 입증해 왔습니다.

데카르트의 확실성과 세르반테스의 '불확실성의 지혜'

근대 사유의 출발점인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 아래 확실하고 명료한 진리를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논리적 사고는 세상을 'A이거나 A가 아니다'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나눕니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성의 세계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세르반테스가 개척한 불확실의 지혜와 애매모호함의 세계입니다.

소설 속 세계에서는 인물의 정체성이나 선과 악의 경계를 단정적으로 잘라 말하지 않습니다. 쿤데라는 모든 것을 하나의 논리로 규정하려는 시도를 무력함의 증상으로 보았습니다. 흑백으로 나누어떨어지지 않는 삶의 사태와 다양한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열어둔 채 탐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소설이 지닌 본질적인 복잡성의 정신입니다.

사회적 시스템의 압도와 소설적 실존 범주의 변화

과거 보카치오나 단테의 시대에는 개인의 인격과 그의 외부적 행동이 일치했습니다. 영웅은 영웅적인 행위를 하고, 악당은 악행을 저지르는 방식이었죠. 그러나 시대가 흐르며 행동과 내면 사이에 거리가 벌어졌고, 카프카에 이르러서는 개인의 내면적 동기보다 관료주의와 역사라는 외부적 시스템의 힘이 개인을 압도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제 거대한 관료주의 사회와 매스미디어는 인간 삶을 단순한 사회적 기능으로 축소하며 상투적인 정보만을 퍼뜨립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쿤데라는 소설이 인간에게 남아 있는 실존적 가능성을 탐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일어난 사실(fact)을 나열하는 것은 학문의 영역이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인간 삶에서 전개될 수 있는 실존의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소설 본연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경직된 시대, 왜 우리는 소설의 웃음과 상상력을 회복해야 하는가

쿤데라는 유럽의 소설이 신의 확언이 아니라 '신의 웃음의 메아리' 속에서 탄생했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적 신의 말씀이 절대적인 확언의 형태를 띤다면, 소설은 절대적 진리를 독점한 사람이 없음에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매혹적인 유희와 상상의 공간을 창조했습니다. 확실한 논리나 인과 법칙에 갇히지 않는 유연한 공간이 바로 소설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 사회는 유희와 웃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직된 사고에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명확한 인과법칙과 관성적인 관념으로만 파악하려 할 때, 우리의 사고와 존재는 단단하게 굳어버리고 공허해집니다. 삶의 애매모호함과 복잡성을 견디지 못하고 당장의 명료한 정답만을 요구하는 문화가 계속된다면, 소설과 문학이 지닌 원초적인 힘은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처럼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시대 속에서 소설이 전하는 불확실성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FAQ

철학이나 과학보다 소설이 인간 이해에 더 유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과학과 철학은 인간의 행동과 존재를 추상적 법칙이나 명확한 인과관계로 정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소설은 단정할 수 없는 삶의 애매함과 구체적인 실존의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펼쳐 보여줌으로써, 현실 속 복잡한 인간성을 훨씬 풍성하게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밀란 쿤데라가 말하는 '실존적 코드'란 무슨 뜻인가요?

인간 존재의 깊은 곳에 자리한 핵심 키워드가 한 인물이 처한 삶의 조건과 만나 어떻게 전개되는지 탐구하는 기준점입니다. 소설은 이러한 실존적 코드를 바탕으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삶의 갈래를 가상으로 구현해 냅니다.

현대 사회에서 문학이 죽어가고 있다는 진단은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들이 확실한 정답과 단순한 인과법칙, 즉각적 자극만을 요구하면서 삶의 애매함과 상상력의 유희를 견디지 못하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불확실성을 탐구하는 소설의 정신이 외면받을 때 사고의 경직화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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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소설가 밀란 쿤데라, 소설의 가치를 말하다 - 이글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