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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이유를 객관적 정답처럼 이성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은 사회가 주입한 이성 중심적 선입견일 수 있습니다.
  • 이론적 윤리학은 정답을 주지 못하지만, 사랑과 관계에서 비롯되는 의지적 필연성은 이미 우리 삶을 견고하게 지탱합니다.
  • 존재하지도 않는 객관적 정답을 찾아 방황하기보다,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는 사랑과 소중한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갈 이유를 묻곤 합니다. 우리는 흔히 삶의 이유 역시 수학 공식이나 과학 법칙처럼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입증 가능한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제가 15년 넘게 철학을 공부하며 절감한 사실은, 삶의 이유는 이성으로 증명해 내는 객관적 정답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사랑'과 같은 감정적 필연성에 있다는 점입니다.


흰색 티셔츠를 입은 남성이 이야기하는 모습 옆에 책 표지가 그래픽으로 떠 있습니다.

사랑과 감정의 필연성에 주목하며 철학적 탐구를 담아낸 저서입니다.


최근 불거진 '삶의 이유'에 대한 오해와 질문

최근 현대 사회에서 감정이 이성보다 과도하게 존중받는 현상을 지적했을 때, 많은 분이 이를 "결국 이성이 감정보다 중요하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하지만 이는 저의 본의와 다릅니다. 이성과 감정은 모두 인간에게 필수적인 능력이며, 다만 이성이 작동해야 할 영역에 감정이 무분별하게 침범하는 것을 경계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저는 학창 시절부터 철학을 공부하는 내내 이성의 명확한 한계를 경험해 왔습니다. 학부 졸업 무렵에는 이성의 대척점에 있다고 여겨지는 감정 현상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자 독일 유학을 떠났고, '본래적인 사랑의 이해 가능성'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습니다. 철학적 탐구의 여정 전체가 곧 이성이 가진 무력함을 확인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성 중심 사고가 삶의 허무감을 낳는 이유

인간이 문명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이성은 필수적입니다. 이성의 핵심 기전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대상을 보편적인 개념의 틀에 포섭하는 데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며 '나무'라는 단어를 가르치듯, 보편적 개념을 익혀야만 세상에 대한 추상적·합리적 이해와 조작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주입식 교육을 거치며 보편적 정답만을 찾는 훈련에 매몰되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 정답 찾기 강박: 개별적인 삶의 경험을 상위의 보편적 규칙에 맞춰야만 안심하는 사고방식이 형성됩니다.
  • 존재론적 불안: 자신의 삶에 대해 이성적인 정답을 내놓지 못하면 스스로를 '실패한 문제 상태'로 규정하게 됩니다.

고등학생 시절 저 역시 서울대에 진학하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면서, 삶의 이유라는 정답을 찾지 못해 깊은 회의와 허무감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이는 삶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이성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만들어낸 착시였습니다.


흰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남성이 정면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고, 화면 하단에는 자막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객관적 증명에 집착하기보다 우리 내면의 감정이 지닌 근원적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삶을 움직이는 진짜 동력: 이성의 한계와 '사랑의 필연성'

대학에서 학문으로서의 윤리학을 접하며 이성의 무력함은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유명 교수님의 윤리학 수업에서 "다양한 현대 윤리학 이론 중 무엇이 가장 옳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교수님은 "각 이론마다 장단점이 있다"라는 답을 남겼습니다. 최고 권위자조차 이성적 윤리 이론만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단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한계는 미국 철학자 해리 프랭크포트(Harry Frankfurt)의 논의와 맥을 같이합니다. 프랭크포트는 필연성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1. 이성적 필연성: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 고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처럼 반대 상황을 논리적으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2. 의지적 필연성(Volitional Rationality): 논리적 생각은 가능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그렇게 할 수 없는 강제력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무 이유 없이 무고한 자식을 해치지 못하거나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입니다.

[출처] 충코의 철학 Chungco 제공 영상 · 14:25

삶을 지탱하는 의지적 필연성을 설명한 철학자, 해리 프랭크포트

도덕이나 삶의 의미는 무한히 물어질 수 있는 이성적 근거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논리학의 기본 법칙 자체가 더 이상의 근거 없이 주어지는 출발점이듯, 우리의 삶 또한 사랑이라는 기초적인 의지적 필연성 위에 구축됩니다.

이성적 이유가 아닌 감정적 관계가 삶을 지탱하는 방식

질문의 방향을 "살아야 하는 이성적 이유가 무엇인가?"에서 "이성적 이유가 없음에도 왜 우리는 계속 살아가는가?"로 바꾸면 답은 명확해집니다. 그 원동력은 증명해야 할 논리가 아니라, 타인과 맺고 있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저 역시 고통스러운 회의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바탕에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보여준 사랑, 그리고 연로하신 할머니를 보살펴 드리고 싶다는 책임감과 애정이 존재했습니다. "왜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무의미합니다. 이성적 정답보다 사랑의 마음이 우리 존재의 더 깊은 근원에 이미 우뚝 서 있기 때문입니다.


흰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젊은 남성이 화면을 보며 이야기하고 있고, 왼쪽에는 책 표지 이미지가 함께 떠 있습니다.

지나친 이성적 판단보다는 우리가 맺고 있는 가장 사적인 관계들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곤 합니다.


이성의 함정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법

결국 세상에는 이성적으로 입증 가능한 '삶의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적어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에 있습니다. 따라서 손에 잡히지 않는 객관적 이유를 찾아 방황하는 것은 이성의 함정에 빠지는 일에 불과합니다.

삶을 잘 살아가는 길은 정답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삶을 둘러싸고 있는 관계와 사랑, 그리고 소중한 가치들에 눈을 돌리는 일입니다.

과연 여러분이 계속해서 살아가게 만드는 진짜 동력은 무엇인가요? 거창한 이성적 근거인가요, 아니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누군가를 향한 사랑인가요?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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