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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 역사상 종교가 없는 문화는 단 한 번도 없었으며, 이는 종교가 인간의 생존과 집단 결속에 결정적인 이득을 제공했음을 시사합니다.
  • 종교는 영장류의 물리적 '털 고르기(그루밍)'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탄생한 일종의 '광역 그루밍'이자, 대규모 집단 생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호르몬 분비 기제입니다.
  • 외세의 침략에 맞서 집단 크기를 키우는 과정에서 발생한 극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고도의 인지 능력인 '마음 이론'을 발휘하여 자발적 규율을 이끄는 '인격 신'을 모델링했습니다.

인류학과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역사상 종교가 없는 문화는 단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다고 합니다. 형태가 조금씩 다를 뿐,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은 인간 사회라면 어디에나 존재해 왔습니다. 오늘날 고도로 세속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 중에서도, 스스로 종교가 없다고 믿는 이들조차 저마다의 보이지 않는 신념을 품고 살아갑니다. 과연 인류는 왜 이토록 오랫동안, 그리고 보편적으로 신을 믿어왔을까요?

흔히 종교를 두고 마르크스처럼 '지배층이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퍼뜨린 마약(인민의 아편)'이라 비판하거나, 과학이 발달하기 전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해 낸 미개한 가설로 치부하곤 합니다. 하지만 옥스포드 대학의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그의 저서 신을 찾는 뇌에서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종교는 기득권의 착취 도구도, 단순한 지적 무지의 산물도 아닙니다. 오히려 종교는 인류가 대규모 집단을 이루고 생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진화시킨 생물학적이고 인류학적인 생존 필수품이었습니다.

영장류의 '털 고르기'에서 시작된 종교의 기원

영장류 집단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매우 강한 사회적 결속력을 보입니다. 이들은 서로 가까이 지내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사회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공동체 생활에는 필연적으로 스트레스가 따릅니다.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고, 집단의 규칙을 따라야 하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개체들을 끊임없이 견뎌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이 북과 북채를 들고 노을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

샤머니즘은 인류 초기 종교의 원형으로, 초월적 존재와 소통하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했습니다.


던바의 연구에 따르면, 영장류는 이 집단 생활의 스트레스를 '그루밍(털 고르기)'을 통해 해결합니다. 피부에 닿는 부드러운 자극은 뇌에서 고통을 줄이고 기분을 좋게 만드는 엔돌핀을 분비시킵니다. 이 엔돌핀 덕분에 개체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형성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물리적인 털 고르기에는 시간과 인력의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뇌 용량으로 볼 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집단의 크기는 대략 150명(던바의 수) 안팎인데, 이 수준을 넘어가면 물리적인 그루밍만으로는 더 이상 집단의 결속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발한 대안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엔돌핀을 분비할 수 있는 일종의 '광역 그루밍', 즉 종교적 의식입니다. 인류는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고, 무아지경(트랜스) 상태에 빠지는 의식을 통해 단체로 엔돌핀을 활성화했습니다. 실제로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같은 행동을 할 때 엔돌핀 분비 효과는 혼자 할 때보다 배 이상 커집니다. 초기 샤머니즘 형태의 종교 의식은 집단 내에 쌓인 갈등과 스트레스를 주기적으로 리셋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증진시키는 강력한 사회적 접착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생존 위협이 불러온 인구 팽창과 공식 종교

그렇다면 인간 집단은 도대체 왜 스트레스를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크기를 키워야 했을까요? 전통적으로는 농업 혁명으로 식량이 풍부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인구가 늘어났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초기 농경 사회는 수렵 채집 시절보다 훨씬 더 고되고 영양 상태도 불량했습니다. 풍요로워서 모여 산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고대 그리스 군인들이 창과 방패를 들고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모습이 담긴 회화

생존을 위해 집단을 확장하고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사회적 결속을 유지할 강력한 구심점이 필요했습니다.


던바는 집단 크기가 커진 결정적인 원인을 전쟁과 외세의 침략에서 찾습니다. 잔혹한 폭력과 학살이 난무하던 고대 사회에서, 이웃 집단의 침략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조건 머릿수를 늘려 집단의 규모를 키워야만 했습니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대규모 정착 생활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수천, 수만 명이 모여 살게 되면서 갈등과 범죄, 무질서의 스트레스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과거 소규모 부족 사회에서는 비공식적인 의식만으로도 갈등 해결이 가능했지만, 거대해진 사회에서는 그것만으로 부족했습니다. 결국 인류는 더 정교하고 체계적인 통제 메커니즘을 발달시켜야 했고, 이 과정에서 전문 사제 계급과 규칙적인 의례를 갖춘 공식적인 종교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매년 버팔로 사냥 철에만 수천 명이 모여 살며 일시적으로 강력한 종교 행사와 규칙을 가동했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사례처럼, 종교는 대규모 인구가 분열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도록 돕는 유일한 질서 확립 도구였습니다.

마음 이론과 고차 지향성이 탄생시킨 '인격 신'

초기 종교가 막연한 초월적 힘을 믿는 형태였다면, 문명이 발달하면서 점차 고유한 성품을 지니고 인간의 행동을 감시하는 '인격 신(Personal God)'의 형태가 등장했습니다. 과학과 철학에서는 이를 인간 독특의 인지 능력인 마음 이론(Theory of Mind)과 관련지어 설명합니다.

마음 이론이란 타인의 마음 상태나 관점을 추론하여 이해하는 고도의 인지 능력입니다. 나의 관점과 타인의 관점을 동시에 뇌에 모델링해야 하므로 엄청난 뇌 용량을 소모합니다. 뇌과학적으로 인간은 '철수가 영희를 좋아한다고 민수가 믿는다고 내가 생각한다'와 같이 주관적 마음 상태를 중첩하는 '지향성(Intentionality)'을 대략 5차 단계까지 추론할 수 있는 한계를 지닙니다.


안개가 자욱한 숲속에 사슴 세 마리가 서 있는 모습

인간의 뇌가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 이론을 발달시키며 진화해 왔습니다.


이 고차원적인 마음 이론 능력이 극대화되면서 인류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마음을 모델링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신이라는 존재가 나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으며, 내가 규칙을 어기면 신이 진노할 것이고, 다른 이들도 이 신의 규칙을 믿고 따른다'라는 복잡한 다차원적 지향성을 공유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인격 신의 등장은 거대 제국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신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고 판단한다고 믿을 때, 인간은 물리적인 경찰력이 감시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도덕 규칙을 준수하게 됩니다. 결국 인격 신에 대한 믿음은 거대한 공동체가 내부 분열 없이 굳건히 유지되도록 만든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소프트웨어였던 셈입니다.

질문과 한계: 왜 하필 '종교와 신'이어야 했을까요?

이처럼 진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종교는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가능하게 한 위대한 발명품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저는 한편으로 이러한 기능주의적 설명에 한 가지 건전한 의문을 품게 됩니다.

대규모 집단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결속을 다지는 메커니즘이, 과연 꼭 '종교와 신'이라는 형태여야만 했을까요? 인류가 역사 속에서 발명해 낸 다른 문화적 도구들, 예컨대 정교한 법률 체계나 세속적인 축제, 혹은 스포츠나 정치적 이데올로기 같은 방식으로도 스트레스 해소와 집단 통제는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류 역사의 초기 단계에서는 유독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신'을 상정하는 종교적 방식이 그토록 압도적이고 강력하게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추가적인 탐구와 철학적 질문이 필요해 보입니다.

결국 인간은 신을 믿도록 진화했다

오늘 이야기한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인간은 영장류 특유의 결속력 있는 사회성을 지닌 채 진화해 왔고, 타인의 마음을 읽는 고도의 '마음 이론'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집단의 규모를 키워야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극심한 사회적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규칙을 지키며 결속할 수 있도록 만든 열쇠가 바로 신을 향한 공동의 믿음과 종교적 의식이었습니다.

비록 현대 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종교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우리 뇌의 깊은 곳에는 여전히 공동체 속에서 초월적인 무언가를 갈망하고 함께 그루밍받고 싶어 하는 진화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 신과 종교를 발명했다는 이 흥미로운 진화학적 설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연 현대 사회의 세속적 제도들이 과거 종교가 했던 '광역 그루밍'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자유롭게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FAQ

종교가 지배층의 통제 수단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과 로빈 던바의 이론은 어떻게 다른가요?

마르크스는 종교를 엘리트 계층이 피지배층을 고분고분하게 만들기 위해 위에서 아래로 강요한 마약으로 보았습니다. 반면 로빈 던바는 종교가 가난하고 억압받는 일반 대중으로부터 시작되어 위로 퍼진 경우가 많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합니다. 즉, 종교는 특정 계급의 이익을 넘어 대규모 집단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구성원 모두에게 보편적 이득을 주도록 진화한 기제라는 것이 던바의 설명입니다.

농업 혁명이 아니라 전쟁 때문에 인구가 늘어나고 종교가 생겼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초기 농경 사회는 수렵 채집 생활보다 노동 강도가 훨씬 높고 영양 상태도 나빴기 때문에 단순히 풍요로워서 인구가 늘어난 것이 아닙니다. 고고학적 증거들은 고대 인류가 극심한 폭력과 전쟁에 노출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집단의 크기를 키워야 했고, 이 거대해진 집단 내부의 갈등과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해 체계적인 종교 의식과 제도가 필수적으로 도입되었다는 뜻입니다.

인격 신을 믿기 위해 왜 '마음 이론'이라는 뇌 능력이 필요한가요?

인격 신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신비로운 힘을 느끼는 것을 넘어, '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신이 나를 감시하며 평가한다고 생각하는 고차원적인 인지 활동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이 신의 도덕 규칙을 믿고 따를 것이라고 상호 신뢰해야 합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존재의 마음 상태와 타인들의 믿음을 다차원적으로 동시에 모델링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 고유의 고등적 인지 능력인 '마음 이론'과 지향성 중첩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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