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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철학이 대중의 외면을 받는 이유는 개인의 내면적 실존 고민과 현대 사회의 보편 문법인 '돈'의 영역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 철학이 다시 호소력을 얻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무조건 죄악시하기보다 일상적인 돈의 문법 속에서 창조적인 언어로 소통해야 합니다.
  • 과거의 자연적 경의에서 나아가, 유물론적 세계관에 갇힌 현대인에게 '내적 경의'를 일깨우는 철학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과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철학은 어떤 위치에 있을까요? 최근 철학교육자대회에서 강연을 진행하며 저는 현대 철학의 영향력이 왜 이토록 줄어들었는지 깊이 고민해 보았습니다. 현대 철학이 대중의 삶에서 멀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철학에 기대하는 ‘내면의 수수께끼’와 우리 시대의 보편 문법인 ‘돈의 문법’을 외면한 채 학문적 상아탑 속에 갇혀버렸기 때문입니다. 철학이 다시 세상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철저히 개인의 실존적 고민과 현실적인 삶의 맥락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삶의 수수께끼를 외면하는 상아탑의 철학

많은 이들이 철학을 찾는 이유는 지적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나는 왜 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내면의 근본적인 수수께끼를 풀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고등학생 시절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실존적 의문을 해결하고자 철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으며 비록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 내는 언어의 연금술에서 엄청난 해방감과 위안을 얻었습니다.


마이크 앞에 앉아 있는 남성과 화면 왼쪽에 배치된 철학 서적 표지 이미지

철학적 사유는 삶의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자유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마주한 실제 철학 교육은 기대와 사뭇 달랐습니다. 원숙한 단계에 이르신 교수님들의 관심사는 개인의 특수한 실존적 고민이 아니라, 특정 이론이 형의상학 체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철학사적 위상 같은 보편적이고 거시적인 문제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교육이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학문적 지평을 넓히는 데는 훌륭한 경험이었지만, 대중과 학생들이 원초적으로 품고 있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갈증을 직접적으로 채워주기에는 정서적 격차가 너무나도 컸습니다.

자본주의라는 시대적 문법을 거부하는 태도

두 번째로 철학이 영향력을 잃은 이유는 현대 사회의 가장 강력한 보편 문법인 '돈'을 다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세 유럽의 보편 문법이 기독교였고 조선의 문법이 유학이었다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 문법은 단연코 돈입니다. 좋든 싫든 현대인들은 돈을 기준으로 사고하고 의사소통합니다. 그런데 대학원과 학계의 분위기는 자본주의를 죄악시하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는 남성과 화면 오른쪽에 실시간 채팅창이 떠 있는 영상 화면

현대 철학이 대중의 삶과 멀어진 이유를 짚어보며, 우리가 진정으로 갈구하는 실존적 질문에 대해 고민해 봅니다.


저는 이러한 태도가 철학이 사회에 참여하는 길을 스스로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트코인의 등장처럼 인류의 삶을 뒤흔드는 거대한 경제적 변화가 일어났을 때, 철학자들은 이에 대해 창조적인 해석을 내놓기보다 침묵하거나 구태의연한 비판만을 반복하곤 합니다. 철학이 대중에게 쓸모 있는 학문으로 다가가려면, 돈과 직접 관련된 철학적 이론을 발전시키거나 일상적인 영리 활동과 커리어 속에서 철학적 지식이 어떻게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쓸모없는 말잔치'를 넘어선 개념의 창조

미국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그의 저서 『철학은 시가 될 수 있을까』에서 현대 철학자들의 논쟁이 학과 밖에서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이미 물질과 뇌 과학 중심의 유물론적 세계관을 지극히 당연하고 안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상아탑 안에서 벌어지는 마음-신체 문제나 자유의지에 관한 구태의연한 논쟁은 소수의 명민한 학생들을 제외하면 대중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러한 형국을 극복하기 위해 철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학문이 따라올 수 없는 철학만의 무기, 즉 '개념의 창조와 연결'입니다. 칸트의 '정언명령'이나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사람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창조적인 언어를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뜬구름 잡는 소리나 뇌피셜에만 머문다면, 대중은 "이럴 바에는 경제학이나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는 게 낫겠다"며 철학을 완전히 외면하고 말 것입니다.

철학이 단순한 자기계발서로 전락할 위험성

물론 철학이 대중의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요구에 부합해야 한다고 해서, 단순히 위로를 건네는 얄팍한 자기계발서나 처세술로 전락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철학의 진짜 가치는 정답을 쥐여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배적인 관점(예컨대 물질만능주의나 유물론)에 균열을 내는 데 있습니다.


마이크 앞에 앉아 이야기하는 남성과 오른쪽에 실시간 채팅창이 떠 있는 영상 화면

철학이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고 자기계발의 도구로만 머물 때 대중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집니다.


즉, 철학이 실용성을 추구하되 본연의 비판적 깊이를 잃지 않으려면, 단순히 "돈을 잘 버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서도 돈의 문법을 활용해야 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전제에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고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다른 실용 학문과 구별되는 철학만의 경계선입니다.

'내적 경의'로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철학을 향해

고대 철학이 거대한 자연 세계를 바라보는 경의(타우마인)에서 출발했다면, 현대 철학은 물질 세계에 갇힌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내적 경의'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과학이 외부 세계에 대해 완벽한 설명을 제공하는 시대일수록, 물질로 해결되지 않는 허무와 삶의 의미라는 내면의 영토는 오직 철학만이 다룰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글에서는 현대 철학이 나아가야 할 쇄신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철학을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결국 자기 자신의 내면적 질문에서 출발할 때 철학은 비로소 살아 숨 쉬는 학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어떤 관점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계시나요? 혹시 세상이 주입한 당연한 문법에 갇혀, 나만의 진정한 수수께끼를 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FAQ

대학 철학 교육과 대중이 기대하는 철학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대중은 자신의 내면적 문제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실존적 수수께끼를 해결하기 위해 철학을 찾습니다. 반면, 대학 등의 학계에서는 이론의 역사적 위상, 형의상학 체계 내의 위치 등 보편적이고 학술적인 시스템을 다루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괴리가 발생합니다.

철학이 '돈의 문법'을 다루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사람들의 생각과 소통을 지배하는 보편 문법입니다. 철학이 자본주의를 무조건 죄악시하거나 회피하기만 하면 대중과의 소통 능력을 잃게 됩니다. 돈의 흐름과 경제적 상호작용 속에서 실존적 가치를 해석해 낼 수 있어야 철학이 현실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철학이 실용성을 추구하다가 단순한 처세술로 전락하지는 않을까요?

그것이 바로 철학이 경계해야 할 지점입니다. 철학의 실용성은 단순히 '돈 버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돈과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개인이 함몰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전제를 의심하고 새로운 관점을 창조해 주는 비판적 깊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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