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시대에 지식 학습과 규칙 준수 능력은 기계가 더 잘하지만, 인간은 규칙 자체를 의심하고 변형하는 '열린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 기존 규칙에 갇혀 승리만을 좇는 '진지함'에서 벗어나, 외부의 노이즈를 수용하는 시(詩)적 확장과 적폐를 걷어내는 철학적 축소가 필요합니다.
- 삶과 죽음이라는 진지하고 무상한 시스템 앞에서, 인간은 규칙을 바꾸는 메타 게임을 통해 스스로 재미와 의미를 창조해 나가는 존재입니다.

AI가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이제 단순히 지식을 많이 알고 일을 잘하는 것으로는 성공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제는 비판적 사고나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 창의성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체코 출신의 철학자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의 혜안을 빌려, 우리가 왜 삶을 너무 진지하게만 살아서는 안 되는지, 그리고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다움, '게임하는 존재'
전통적으로 우리는 이성적 사고, 도구 제작, 혹은 노동 능력을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정의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대신해 일할 기계를 정교하게 발명해 가면서, 이러한 능력들은 점차 기계에 의해 완벽하게 대체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계가 인간보다 일을 더 잘하게 된 지금, 과연 인간다움의 본질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플루서는 일찍이 1960년대에 발표한 저작에서 인간을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 바라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이 놀이라는 개념을 독일어 '슈피일(Spiel)', 즉 게임(Game)으로 설명합니다. 플루서가 정의하는 게임이란 여러 요소(레퍼토리)들이 규칙(구조)에 따라 다양하게 조합되는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체스판과 말이라는 레퍼토리가 체스 규칙이라는 구조 안에서 무수히 조합되어 펼쳐지는 세계가 바로 게임인 것입니다.
인간의 언어도, 심지어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적 방법론도 넓은 의미에서는 모두 기호와 규칙을 조합하여 이론을 만드는 일종의 게임입니다. 그런데 플루서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구분을 제안합니다. 바로 게임에는 '닫힌 게임'과 '열린 게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학적 탐구처럼 구조와 규칙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열린 게임의 영역은 인간만의 고유한 창의성을 보여줍니다.
열린 게임을 이끄는 힘: 시(詩)와 철학
닫힌 게임은 체스처럼 레퍼토리와 규칙이 완전히 고정되어 있어, 시간이 흐르면 결국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가 고갈되는 시스템입니다. 반면 열린 게임은 규칙과 요소가 끊임없이 변화에 열려 있는 시스템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과학과 예술입니다. 과학은 고정된 규칙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새로운 관찰 도구를 도입하고 방법론 자체를 혁신하며 영역을 확장해 나갑니다.
플루서는 열린 게임이 변화하는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외부의 불필요해 보이는 요소, 즉 '노이즈(Noise)'를 게임 내부로 들여와 시스템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플루서는 이 과정을 비유적으로 시(詩)라고 불렀습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수영과 자전거가 합쳐져 철인삼종경기가 되고, 아프리카의 리듬이 클래식과 섞여 재즈가 되듯, 이질적인 요소를 융합해 새로운 언어를 개척하는 창조적 행위가 바로 시적 확장입니다.
둘째는 기존 시스템 안에서 불필요하거나 고착화된 요소를 비판적으로 걸러내 숨통을 트이게 하는 축소 과정입니다. 플루서는 이를 철학(Philosophy)이라고 칭했습니다. 기존의 모순을 밝혀내고 적폐를 걷어냄으로써 새로운 조합이 가능하도록 돕는 비판적 사유의 힘입니다. 이렇듯 모든 창조적인 시는 철학적이며, 모든 비판적인 철학은 시적입니다. 열린 게임을 지향하는 인간은 시와 철학을 통해 부단히 게임의 우주를 넓혀 갑니다.
'진지함'이라는 함정: 규칙의 맹신에서 벗어나기
그런데 열린 게임도 플레이어의 태도에 따라 언제든지 닫힌 게임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플루서는 오직 승리만을 목적으로 삼고 기존의 규칙과 레퍼토리를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맹목적으로 플레이하는 태도를 진지함이라고 불렀습니다.
진지한 사람은 시와 철학을 거부합니다. 규칙을 의심하거나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는 행위를 게임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승패 결정을 지연시키는 방해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어진 틀 안에서 최선의 효율만을 뽑아내려는 이러한 진지한 태도는,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가 창의성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흔히 발견됩니다. 창의성조차 하나의 고정된 스펙이나 경쟁 게임의 규칙으로 여기며 학생들에게 주입하곤 하죠.
승리만을 목적으로 삼는 태도는 삶이라는 열린 게임을 닫힌 시스템으로 가두어 버립니다.
하지만 주어진 규칙을 가장 빠르고 완벽하게 학습하여 승리하는 일은 이제 컴퓨터가 인간보다 훨씬 더 잘하는 영역입니다. 인간이 기계와 구별되는 진짜 지점은, 게임에 완전히 몰입해 규칙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물러서서 게임 자체를 객관화하고 변형하는 메타 게임(Meta-game)을 수행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정치는 사회라는 게임을 바꾸는 게임이고, 사상은 정신의 게임을 바꾸는 메타 게임인 것처럼 말입니다.
AI 시대, 인간은 과연 '메타 게임'의 우위를 지킬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과연 현대의 발전된 AI는 플루서가 말한 '진지함의 결여'를 모방할 수 없을까요? 어쩌면 AI 역시 스스로 새로운 요소를 조합하고 규칙을 변형하며 메타 게임을 수행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한편으로 의문이 듭니다. AI가 메타 게임을 훌륭히 수행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게임'이라는 상위 규칙을 또다시 진지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인간이 그보다 더 높은 층위의 메타-메타 게임으로 무한히 나아갈 수 있을지는 저 역시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그 연쇄적인 과정에서 인간이 AI보다 절대적인 우위를 가질 수 있는지도 냉정하게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게임으로 바라보며 기존의 완고한 틀을 깨부수는 플루서의 통찰은,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의 규칙, 혹은 과학적 가설이나 특정 가치관을 절대적인 진리로 맹신하며 지나치게 진지해지곤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시스템은 결국 우리가 선택하고 변형할 수 있는 열린 게임의 일부일 뿐입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
거대한 삶과 죽음의 질서 속에서도 인간은 각자의 방식으로 의미를 찾고 놀이를 이어갑니다.
플루서는 삶과 죽음이라는 엄연한 실존적 한계가 모든 감각과 의미를 마비시키는 궁극의 진지함을 품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거대한 자연의 법칙과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인간의 노력도 무상함으로 해체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압도적인 진지함 앞에서 결코 굴복하지 않고 자신만의 게임을 시작합니다. 우주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재미'라는 놀이의 언어로 바꿔 부르면서 말입니다. 삶의 규칙을 고정된 진리로 믿고 아등바등 승리만을 좇는 진지함을 버릴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이라는 게임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시와 철학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빌렘 플루서의 철학을 통해 진지함에서 벗어나 삶을 열린 게임으로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의 삶이라는 게임에서 어떤 새로운 규칙과 시를 만들어가고 계시나요? 혹은 여전히 타인이 정해놓은 닫힌 게임의 규칙 속에서 지나치게 진지해져 있지는 않으신가요? 여러분의 생각이 과연 어떠한지 댓글로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FAQ
빌렘 플루서가 말하는 '게임'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플루서에게 게임은 단순히 오락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요소(레퍼토리)들이 특정 규칙(구조)에 따라 조합되는 모든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언어 사용이나 과학적 연구 방법론 역시 넓은 의미에서 게임에 해당합니다.
'진지함'이 왜 창의성에 걸림돌이 되나요?
'진지한' 사람은 기존의 게임 규칙과 요소를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고 오직 승리(성공)만을 좇기 때문입니다. 규칙 자체에 의문을 품거나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는 시(詩)적 확장과 철학적 비판을 거부하므로 진정한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AI 시대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독창적인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주어진 규칙 안에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 승리하는 것은 기계가 더 잘합니다. 하지만 게임 자체를 객관화하여 바라보고, 규칙 자체를 바꾸거나 새로운 메타 게임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태도는 여전히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