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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겉보기에 착한 사람들의 행동은 타인을 향한 진정한 배려가 아니라, 선택의 책임이라는 실존적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자기중심적 생존 전략일 수 있습니다.
  • 주변 환경이나 집단의 관행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착함은, 상황이 바뀌어 악행이 더 편안한 선택지가 될 때 너무나 쉽게 악으로 변질됩니다.
  • 진정으로 선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순응이나 관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남들과 달라질 수 있는 강력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평소에는 주변 사람들을 지극히 배려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인물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공의 뒤통수를 치며 악역으로 돌변하는 장면을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저는 이러한 극적 장치가 현실을 아주 날카롭게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도 겉보기에는 마냥 착해 보였던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아주 손쉽게 나쁜 일을 저지르곤 하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그것은 그들이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배려해서 착했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실존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착함'이라는 가장 편안한 상태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통찰을 바탕으로, 착해 보이는 사람들의 진짜 속마음과 그 이면에 숨겨진 실존적 위선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사물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나약한 욕망

시몬 드 보부아르를 비롯한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매 순간 '선택의 빈 공간'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행동을 멈출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른 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자유에는 늘 무거운 책임이 따릅니다. 내가 내린 선택의 결과를 오롯이 나 스스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겉으로 드러나는 자유에 대한 열망 이면에, 오히려 선택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유혹, 즉 '사물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물은 스스로 선택할 필요가 없으며,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선택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 "상황이 이래서 어쩔 수 없었다"라거나 "내 능력이 부족해서 못 한다"라는 식의 핑계를 대며, 자신이 주체적인 선택권이 없는 사물과 같은 상태라며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에 빠지곤 합니다.


숲속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며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남성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의 무게를 피하고 싶은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들여다봅니다.


이러한 심리는 현대 사회에서 더 정교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아무런 주체적 선택 없이 그저 화면을 넘기기만 하면 끊임없이 콘텐츠를 공급해 주는 숏폼 콘텐츠나 TV에 중독되는 것도, 내 안의 빈 공간을 마주하고 선택을 내리는 부담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철학자 한병철이 그의 저서 《서사의 위기》에서 지적했듯, 정보는 넘쳐나지만 정작 나 자신의 주체적인 이야기는 사라진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내 안으로 채워 넣으며 선택의 불안을 지워버리려 합니다.

'착함'이라는 가장 편안한 자기중심적 회피 수단

보부아르는 이러한 맥락에서 착한 사람의 자기중심성을 꼬집습니다. 흔히 착한 사람이라고 하면 남들을 배려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인 사람을 떠올리지만, 사실 이들의 착함은 그저 자기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방식을 고수한 결과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타인의 무례함이나 부당한 요구에 마땅히 저항하지 않고 묵묵히 참아 넘기는 태도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를 보고 "참 착하다", "배려심이 깊다"라고 칭찬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그것은 상대를 배려해서 참은 것이 아니라 그 순간 화를 내거나 따졌을 때 초래될 불편한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것에 불과합니다.


야외 숲길에서 갈색 셔츠와 짙은 색 재킷을 입은 남성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내면의 빈 공간을 마주하는 대신 무언가로 끊임없이 채우려는 현대인의 심리는 선택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욕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자신의 평온한 일상이라는 패턴을 깨뜨리고, 갈등이라는 낯선 가능성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서 가만히 있는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즉, 이들의 착함은 주체적인 도덕적 결단이 아니라, 갈등과 선택의 불안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가장 게으르고 편안한 타협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내면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입니다.

상황이 바뀌면 너무나 쉽게 악으로 돌변하는 이유

이처럼 주체적인 도덕적 훈련 없이 그저 편안함을 위해 착함을 연기해 온 사람들은, 상황의 역학 관계가 바뀌는 순간 아주 손쉽게 악행을 저지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함을 선택할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를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 길'을 걷는 사람들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주변의 모든 사람이 스리슬쩍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 상황에서 홀로 정의롭고 착하게 행동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야 하는 대단히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선택이 됩니다. 이때 평소에 착해 보였던 사람은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뭐 어때?"라며 대다수의 악행에 조용히 묻어가는 쪽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그 순간 자신을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야외 숲을 배경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이야기하는 남성

진정한 주체적 선택 없이 편안함만을 좇는 태도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 악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도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있는 핑곗거리가 주어지면 아주 기쁘게 악을 행합니다. 머릿속으로는 이것이 잘못된 행동임을 알면서도, "나도 고민을 많이 해봤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며 일정 수준에서 생각을 멈춰버립니다.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고민하는 시늉만 낸 뒤, 위선적인 자기기만을 통해 면죄부를 부여하고는 망설임 없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배신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진정한 선함은 강력한 용기와 주체성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변의 모든 착한 사람을 불신하고 회의적으로 바라보아야만 할까요? 결코 그런 뜻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아무런 주체적 결단 없이 그저 관행과 분위기에 휩쓸려 무난하게 좋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수동적 착함'입니다.

진정으로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와 강건함이 필요합니다. 위급한 순간에 심폐소생술을 하거나 119에 신고를 할 때, 군대나 안전 교육에서는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특정 사람을 콕 집어서 지시하라고 가르칩니다. 구경꾼 효과(Bystander Effect)처럼, 사람들은 무리 속에 섞여 있을 때 자기가 직접 행동의 당사자가 되어 책임을 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몸이 불편한 분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소한 행동조차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가만히 앉아 있을 때 홀로 일어서는 '주변과 달라질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진정한 선은 남들의 눈치를 보거나 관행을 따르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변이 아무리 무관심하고 심지어 악할지라도 나 스스로 주체적인 도덕적 결단을 내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강인함에서 탄생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착함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오늘 글에서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실존주의적 성찰을 통해, 겉보기에는 착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악으로 돌변할 수 있는 인간의 나약한 본성과 자기기만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저 또한 대중 앞에 철학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늘 무난하고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 쉬운 감옥에 갇혀 있을지 모릅니다. 저 역시 매 순간 선택의 책임을 온전히 마주하지 못하고 비겁한 타협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무난하게 사람 좋아 보이는 겉모습만을 믿고 안심하는 것보다는, 인간 내면의 숨겨진 실존적 나약함을 늘 경계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로운 삶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겉으로 보이는 '착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진정으로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착함이란 과연 무엇이어야 할까요? 여러분의 깊이 있는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FAQ

시몬 드 보부아르가 말하는 '사물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인간은 매 순간 선택을 내려야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실존적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반면 사물은 스스로 선택할 필요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인간이 선택의 부담과 책임에서 도망쳐, 마치 선택권이 없는 사물처럼 편안하게 존재하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인 나약함을 뜻합니다.

착한 행위가 어떻게 자기중심적인 회피가 될 수 있나요?

누군가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부당한 요구를 할 때, 갈등을 겪기 싫어서 가만히 참아 넘기는 행동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상대를 진심으로 배려한 것이 아니라, 갈등 상황을 마주했을 때 겪게 될 내 마음의 불편함과 선택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 '착한 사람의 가만히 있기'라는 가장 편한 방식을 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착한 사람과 겉보기에만 착한 사람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주변 분위기나 집단의 관행에 그저 순응하며 군중 속에 묻어가는지, 아니면 남들이 하지 않더라도 주체적으로 옳다고 믿는 바를 선택하고 행동하는지 그 '용기'의 유무를 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선함은 남들과 달라질 수 있는 주체적인 결단과 강력한 용기를 동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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