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홋카이도 치토세와 규슈 기쿠요초 등 지방 도시의 땅값이 첨단 반도체 기업 유치와 인프라 개발에 힘입어 30년 전 버블 시세를 회복하거나 넘어섰습니다.
- 이는 단순한 공장 이전의 결과가 아니라, 기업과 대학, 대형 병원, 전력·용수 인프라가 결합된 '산업 클러스터'가 지속 가능한 주거와 고용 수요를 창출했기 때문입니다.
- 인구 감소 시대를 맞이한 한국 역시 무분별한 선심성 분산보다는 경쟁력 있는 거점 도시에 핵심 인프라와 기업을 집중 배치하는 실질적인 국가 전략이 필요합니다.

일본 부동산은 지난 30년간 장기 침체의 대명사로 불려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도쿄가 아닌, 북쪽 끝 홋카이도 치토세와 남쪽 규슈 구마모토현 기쿠요초 같은 지방 도시의 땅값이 30년 전 버블 경제 시절의 최고가를 넘어섰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다 함께 침체하거나 도쿄만 홀로 오를 것이라는 대중의 통념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진 것입니다. 이번 상승의 핵심은 단순한 투기나 일시적인 호재가 아닙니다. 첨단 반도체 기업과 대학, 대형 병원, 전력·용수 인프라가 하나로 결합된 '산업 클러스터'가 지역 내에 강력한 주거와 고용 수요를 창출했기 때문입니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위기에 직면한 한국 경제에 일본 지방 부동산의 이례적인 반등이 전하는 메시지를 짚어봅니다.
30년 버블을 넘은 일본 지방 부동산, 도쿄가 아니라 홋카이도에서 일어난 반전
일본의 공식 공시지가 발표에서 전국 상승률 1위를 기록한 곳은 도쿄 번화가가 아니었습니다. 홋카이도 삿포로 인근에 자리한 인구 소도시 치토세시와, 규슈 구마모토현의 기쿠요초가 그 주인공입니다.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이후 일본 부동산 가격은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했으며, 서울 강남에 비견되는 도쿄 미나토구조차 아직 버블기 최고가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치토세와 기쿠요초는 30년 전 버블기 시세를 완전히 회복하거나 넘어서는 폭등세를 기록했습니다.
버블 경제 시절의 최고가를 넘어설 정도로 가파르게 상승한 특정 지방 도시들의 땅값 추이를 통해 부동산 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땅값을 견인한 직접적인 동력은 첨단 산업의 입지입니다. 홋카이도 치토세에는 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최첨단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Rapidus)의 공장 건설과 데이터센터 투자가 집중되고 있고, 규슈 기쿠요초에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TSMC의 일본 자회사 JASM 공장이 들어섰습니다. 공장이 자리 잡으면서 관련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들어섰고, 건설 인력과 상주 임직원이 대거 유입되어 주택과 쇼핑몰, 교통망 개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결국 실제 일자리와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의 존재가 죽어 있던 지방 부동산을 다시 일으켜 세운 셈입니다.
한국의 수도권 쏠림과 다른 길: 병원·대학·기업의 분산이 만든 차이
그렇다면 왜 유독 일본에서는 이러한 지방 거점의 반등이 가능했을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한국과 일본의 구조적인 인프라 배치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일본도 도쿄 일극 집중이 심각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세계적인 의료·교육·기업 인프라의 분포를 다른 주요국 및 한국과 비교해 보면 상당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세계적인 수준의 대형 병원이 모두 수도권에 몰려 있는 한국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불균형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발표한 세계 250대 병원 평가를 보면, 한국은 평가에 포함된 16개 우수 병원이 100% 서울 및 수도권(서울 13개, 경기 3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15개 우수 병원 중 도쿄 권역에 7개, 나머지 8개는 홋카이도, 규슈 등 전국 거점 지역에 고르게 분산되어 있습니다. 프랑스나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보아도 한국처럼 대표급 의료 인프라 전체가 수도권에 과도하게 쏠려 있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학 구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대학 경쟁력 순위를 보면 1, 2, 3위에 도쿄대, 와세다대, 게이오대가 오르지만, 상위 10개 대학 목록에는 홋카이도대, 규슈대, 교토대, 오사카대, 나고야대 등 지방 거점 국립대 및 명문대가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이 과거 지방 국립대의 위상이 높았던 시기를 지나 현재 '인서울' 중심으로 고착화된 것과 달리, 일본은 지방에서도 수준 높은 교육과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본적 토대를 수십 년간 유지해 왔습니다.
공장 하나가 아니다: 기업·대학·인프라가 엮인 '산업 클러스터'의 동력
지방 활성화 정책에서 흔히 범하는 실수는 텅 빈 벌판에 공장 건물이나 행정 타운 단 하나만 이전해 놓는 방식입니다. 정주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단순 공장 이전은 임직원의 출퇴근이나 단독 거주만을 부를 뿐, 지역 부동산과 경제 생태계를 살려내지 못합니다. 일본 사례가 보여주는 핵심은 기업, 대학, 대형 병원, 전력 및 용수 인프라가 사슬처럼 엮인 '산업 클러스터'의 형성입니다.
기업 하나만 덩그러니 놓는 방식으로는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짚어보고 있습니다.
규슈 구마모토 기쿠요초 사례를 보면, 이곳은 갑자기 만들어진 땅이 아닙니다. 이미 소니의 이미지 센서 공장과 덴소, 도쿄일렉트론 등 탄탄한 반도체·자동차 부품 산업 기반이 조성되어 있었고, 인근에는 규슈대와 규슈대 병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원자력 발전소 2기와 풍력·태양광 등 풍부한 전력 설비, 안정적인 용수 공급 능력이 결합되어 있었기에 TSMC가 JASM 합작 공장을 지을 최적지로 선택될 수 있었습니다.
TSMC가 들어서자 기존 소니와 덴소는 물론 소부장 기업들이 추가 투자에 나섰고, 규슈대는 반도체 맞춤형 인재를 공급하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되었습니다. 결국 대기업 유치라는 결과물은 이미 준비되어 있던 인프라와 교육·의료 여건이 기업의 경제적 유인과 맞아떨어졌을 때 비로소 발휘되는 시너지입니다.
규슈 JASM과 홋카이도 라피더스: 검증된 수요와 과감한 도전의 현주소
일본 지방 부동산을 이끄는 두 축인 규슈 JASM과 홋카이도 라피더스는 추진 전략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구마모토 JASM은 소니와 덴소 등 확실한 내부 수요처가 확보된 상태에서 출발했습니다. 첨단 2나노 공정이 아닌 12~28나노급 차량용 및 이미지 센서용 반도체를 주로 생산하며, 2024년 양산 개시 이후 2026년부터 이미 흑자 전환에 성공하는 등 실질적인 매출과 수익성을 증명해 내고 있습니다. 확실한 수요에 기반했기 때문에 주변 관련 기업들의 입지와 부동산 개발도 안정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홋카이도 치토세의 라피더스는 일본 정부 주도 아래 차세대 2나노 첨단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국가적 도전에 가깝습니다. 글로벌 IT 기업 IBM의 2나노 기술을 협업 형태로 이전받고, 도요타·소프트뱅크 등 8개 대기업의 출자와 정부 보조금을 바탕으로 공장을 건설 중입니다. 여기에 인근 소프트뱅크 대규모 데이터센터 유치까지 추진되면서 토지 개발과 건설 수요가 폭발했습니다.
다만 라피더스는 아직 양산 실적이 없으며, 실제 양산 성공 여부와 글로벌 고객사 확보라는 엄중한 검증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따라서 홋카이도 치토세의 집값 및 땅값 급등에는 향후 라피더스 사업 성패에 따른 불확실성도 공존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인구 감소 시대의 지역 생존법: 모든 지방이 아닌 '경쟁력 있는 거점'에 집중하라
급격한 저출생과 고령화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지방 시·군·구를 과거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일본의 경험이 제시하는 현실적인 대안은 전국을 무분별하게 분산하기보다 경쟁력 있는 '지역 거점 도시'를 선택해 집중 육성하는 전략입니다.
쇠퇴하는 전국의 모든 마을을 억지로 유지하려 애쓰기보다, 대형 병원과 교육 기관, 쾌적한 주거와 교통 인프라를 갖춘 거점 도시를 세우고 주변 소도시와는 신속한 교통망으로 연결하는 도시 구조 재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거점 도시의 핵심 중심축에는 반드시 청년층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기업과 산업 단지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국가 전체의 효율성을 위해 서울과 수도권에 선택과 집중을 했던 지난날은 한국 경제를 키우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고용 창출력이 떨어진 시대에 수도권 일극 집중은 이제 고비용과 저출생, 지방 소멸이라는 거대한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기업과 정부, 지자체가 장기적인 협력을 통해 지방 거점 도시의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해 나갈 수 있을지, 일본의 이번 부동산 반등 사례는 한국 사회에 매우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FAQ
일본 도쿄가 아닌 지방 도시 땅값이 버블 시대 이상으로 오른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요?
홋카이도 치토세와 규슈 기쿠요초 등지에 라피더스, TSMC/JASM 등 첨단 반도체 기업이 들어서고, 관련 소부장 기업과 대학, 대형 병원, 인프라가 함께 조성되면서 주거와 고용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규슈의 JASM과 홋카이도의 라피더스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JASM은 소니, 덴소 등 확실한 수요처를 바탕으로 12~28나노급 반도체를 양산해 이미 흑자를 기록 중인 반면, 라피더스는 정부 주도로 2나노 첨단 반도체 생산에 도전하는 단계여서 상업성과 기술 검증을 지켜봐야 합니다.
한국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독특한가요?
세계 250대 우수 병원 중 한국은 16개 전부가 수도권에 쏠려 있으며, 명문 대학과 주요 기업 본사 역시 수도권에 과도하게 밀집해 있어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균형적인 인프라 분산이 매우 부족한 편입니다.
지방에 공장 하나를 건설하는 것만으로는 왜 지역이 살아나지 않나요?
단일 공장 유치는 정주 여건이나 인프라가 부족할 경우 단순 출퇴근 거점에 그치기 쉽습니다. 기업과 함께 대학, 대형 병원, 주거 환경, 안정적인 전력·용수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산업 클러스터가 조성되어야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