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DP 외벽은 축구장 4.5개 면적을 덮는 45,133장의 알루미늄 패널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와 곡률이 같은 판이 단 한 장도 없습니다.
- 기존 방식대로 고정 금형을 매번 새로 깎거나 수작업으로 두드려 가공하면 수십 년의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드는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 컴퓨터 3D 도면과 연동되어 상하 2,400개 핀의 높이를 조절하는 멀티포인트 성형기를 도입해 비정형 패널의 대량 생산을 실현했습니다.

서울 동대문에 자리 잡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는 멀리서 보면 이음매 없는 매끈한 은빛 우주선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거대한 단일 덩어리가 아니라 알루미늄 판 45,133장을 정교하게 이어 붙인 조각보 건축물입니다.
놀라운 점은 이 외장 패널 4만 5천여 장 가운데 크기와 곡률이 똑같은 판이 단 한 장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축구장 4.5개 면적(약 33,000㎡)을 덮는 외벽 패널 중 평평한 판은 3분의 1도 되지 않았고, 절반 가까이는 감자칩처럼 앞뒤 좌우 두 방향으로 휘어진 2차 곡면 판이었습니다. 도대체 이렇게 제각각인 곡면 패널을 어떻게 공사 기간 내에 정확하게 제작해 낼 수 있었을까요?

축구장 4.5개 면적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DDP는 독특한 비정형 곡선미로 도심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고정된 틀을 버린 기술: 가변 성형(멀티포인트 성형)의 개념
비정형 외장재 제작의 핵심 원리는 바로 멀티포인트 성형기(Multi-point forming machine)에 있습니다.
기존 프레스 가공 방식은 단단한 금속 틀(금형) 하나를 만든 뒤, 그 틀 위에 판을 올려 강한 힘으로 눌러 동일한 형태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구조였습니다. 규격화된 부품을 대량 생산할 때는 가장 효율적이지만, 모양이 매번 바뀌는 비정형 패널에는 쓸 수 없는 방식입니다.
반면 멀티포인트 성형기는 고정된 하나의 금형 대신, 독립적으로 위아래 이동이 가능한 수많은 '핀(Pin)'들의 집합을 틀로 활용합니다. 컴퓨터 3D 설계 데이터에 맞춰 각 핀의 높이를 미세하게 조절하면, 핀 끝이 이루는 굴곡면 자체가 즉석에서 맞춤형 성형 틀이 되는 기술입니다.
비정형 건축 패널 제작을 둘러싼 흔한 오해
많은 이들이 패널 제작의 난관을 들으면 "외국의 유명 전문 업체에 맡기거나 숙련된 장인이 수작업으로 가공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실제로 DDP를 설계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추천했던 영국과 독일의 유수 패널 성형 업체들에 타진했을 때 돌아온 답은 절망적이었습니다. 장인들이 판을 손으로 일일이 두드려 휘어 만드는 전통 방식을 적용할 경우, 외벽 패널을 전부 제작하는 데만 무려 2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패널 한 장마다 수억 원을 들여 일회용 고정 금형을 새로 깎는다면 공사비와 제작 기간은 천문학적으로 치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내에서 진행한 실물 모형(Mock-up) 테스트에서도 곡면이 가장 심한 출입구 부분은 세 번 연속 성형에 실패하며 기술적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고정된 틀 대신 수천 개의 핀 높낮이를 조절하여 다양한 곡면을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습니다.
2,400개 핀과 3D 디지털 설계가 이뤄낸 역발상
이 한계를 돌파한 해법은 틀을 새로 깎는 대신 스스로 모양을 바꾸는 가변 틀을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DDP 제작에 투입된 멀티포인트 성형기는 판재를 사이에 두고 상단과 하단에 각각 1,200개씩, 총 2,400개의 핀이 촘촘하게 배치된 구조를 갖췄습니다. 성형해야 할 패널의 정보가 입력되면 컴퓨터 제어에 따라 핀들이 오르내리며 순식간에 정밀한 3차원 곡면을 형성합니다.

컴퓨터 3D 설계와 가변 성형 기술이 결합되어 복잡한 곡면을 가진 비정형 건축물을 구현해 냈습니다.
이 공정이 가능했던 기술적 기반은 DDP가 국내 공공건축물 최초로 전 과정을 3차원 입체 도면(BIM)으로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도면의 3D 곡면 좌표가 멀티포인트 성형기로 직접 전송되어 핀 높이를 정하고, 성형이 끝난 굽은 판의 테두리는 3차원 레이저 절단기가 도면의 궤적을 따라 정밀하게 잘라냈습니다. 그 결과 네 번째 실물 모형 제작에서 마침내 완벽한 합격점을 받아내며 대량 생산의 길을 열었습니다.
비정형 구조물을 읽어내는 새로운 시각
DDP의 외벽은 단순한 미적 조형물을 넘어, 건축 설계의 디지털 데이터가 제조업의 가변 가공 기술과 직접 맞물려 탄생한 공학적 전환점입니다.
앞으로 비정형 건축물이나 유선형 곡면 구조물을 마주할 때는 다음과 같은 관점으로 그 가치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 패널의 분절성과 곡률 유형 파악: 평면 패널의 조합인지, 아니면 가로세로 축이 동시에 휘어진 다축 곡면 패널인지 관찰함으로써 제작 난이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 공구 및 금형의 유연성(Flexibility): 맞춤형 패널을 생산할 때 고정 금형 폐기물을 양산했는지, 핀 매트릭스 형태의 가변 툴링을 적용해 자원과 시간을 절감했는지가 현대 파라메트릭 건축의 핵심 평가 척도가 됩니다.
단 하나의 고정된 틀로는 결코 완성할 수 없었던 유기적 곡면. DDP의 은빛 외벽은 힘으로 재료를 억누르는 대신 2,400개의 핀 높이를 바꾸는 역발상 공학을 통해 완성된 결과물입니다.
FAQ
DDP 외벽에 쓰인 알루미늄 패널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요?
패널 한 장의 가로 길이는 약 1.6m로 성인 키에 맞먹는 크기이며, 총 45,133장이 사용되었습니다.
왜 모든 패널의 형태와 곡률이 다른가요?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설계가 물 흐르듯 이어지는 3차원 비정형 곡면을 띠고 있어, 표면을 감싸는 외장재 역시 부위마다 곡률과 크기가 달라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멀티포인트 성형기를 사용하면 어떤 장점이 있나요?
패널마다 일회용 금속 틀을 새로 깎을 필요 없이, 컴퓨터 데이터에 맞춰 2,400개 핀의 높이를 매번 조절할 수 있어 제작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