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km 길이의 직선 도시 '더 라인'은 모든 인프라가 직렬로 연결되어야 작동하는 구조적 한계 탓에 누적 사업비가 초기 발표액의 17배 이상으로 폭증했습니다.
- 유가 하락과 재정 적자가 겹치며 국내 건설사의 지하 터널 공사 계약이 해지되는 등 대대적인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졌습니다.
- 사우디는 막대한 매몰 비용과 위약금을 고려해 전체 선을 잇는 구상을 접고, 즉각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는 항만 거점 '옥사곤'에 집중하기로 선회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사막 한가운데에 높이 500m, 폭 200m,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에 달하는 길이 170km짜리 초대형 직선 건물 '더 라인(The Line)'을 짓겠다고 발표했을 때 전 세계는 경악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거대한 직선 프로젝트는 잇따라 멈춰 서고 있습니다. 막대한 오일머니를 쥔 사우디가 왜 170km짜리 한 줄 도시 계획을 사실상 중단하고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 이면에는 선형 도시가 지닌 치명적인 공학적 구조와 천문학적인 인프라 비용의 딜레마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1. 선형 도시의 구조적 딜레마: 왜 직선 인프라는 위험한가
도시계획 관점에서 '선형 도시(Linear City)'는 주거, 상업, 교통을 하나의 긴 띠 안에 모아 넣는 극단적인 형태입니다. 통상적인 원형이나 방사형 도시는 도심 중심부부터 단계적으로 개발하며 바깥으로 확장할 수 있어, 완성되지 않은 외곽이 있더라도 이미 지어진 중심부는 정상 작동합니다.

둥근 형태의 도시는 중심부에서부터 단계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유연한 운영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직선 도시는 완전히 다릅니다. 상수도관, 하수관, 전력망, 고속철도, 통신선까지 170km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생명선이 단절 없이 직렬로 연결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도시로 기능합니다. 옛날 크리스마스트리의 직렬 전구처럼 중간에 단 한 구간만 끊기거나 지연되어도 그 뒤에 위치한 모든 구역이 마비되는 치명적인 종속성을 갖게 됩니다. 무엇을 먼저 파고 무엇을 나중에 덮어야 할지 순서를 맞추는 공정 관리 자체가 거대한 난제가 된 셈입니다.
2. '돈만 있으면 된다'는 착각과 17배로 불어난 사업비
많은 이들이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라면 천문학적인 공사비도 무리 없이 감당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선형 도시의 직렬 인프라를 구축하는 현실적인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기대와 달리 급증하는 공사비와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초대형 인프라 프로젝트의 앞날이 안갯속에 빠져 있습니다.
당초 사우디가 발표한 전체 사업비는 약 5,000억 달러였습니다. 하지만 2023년 네옴 이사회 내부 자료에 따르면 2080년까지 필요한 누적 비용이 초기 발표액의 17배가 넘는 8조 8,000억 달러로 추산되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가 급등한 데다, 중동 정세의 불안정성과 산악 리조트 '트로에나' 등의 사업성 악화가 겹치며 해외 민간 자본 유치마저 부진에 빠졌습니다.
결국 2026년 3월,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수주했던 더 라인의 핵심 지하 터널 공사가 발주처로부터 해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2029년 동계 아시안 게임 개최지였던 트로에나의 인공호수 댐 및 스키 마을 철골 계약도 차례로 깨졌고, 대회 개최권이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가는 이슈도 있었습니다.
3. 재정 균형 유가의 붕괴와 결제선의 한계
이토록 무리한 구조라면 왜 더 일찍 설계를 수정하지 못했을까요? 답은 단일화된 최고 의사결정 체계에 있습니다. 사우디 국부펀드(PIF)와 네옴 이사회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한 사람이 총괄하는 구조에서는, 천문학적인 비용 경고가 나오더라도 국가적 간판 프로젝트의 규모를 축소하자는 의견을 아래에서 선뜻 내놓기 어려웠습니다.
진짜 문제는 간판을 지탱할 국고가 먼저 메말랐다는 점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사우디의 재정균형 유가는 배럴당 약 90달러 안팎입니다. 하지만 유가가 60달러 선 밑으로 내려앉으면서 국가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대로 벌어졌습니다. 2030 리야드 엑스포와 2034 월드컵 등 줄줄이 대형 국책 사업을 앞둔 상황에서 무한정 현금을 쏟아부을 여력이 사라진 것입니다.
4. 선(Line)을 버리고 점(Point)을 찍는 역발상: 옥사곤으로의 전환
그렇다면 프로젝트를 아예 백지화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투입된 자금만 약 640억 달러(약 90조 원)에 달하고, 일방적인 계약 해지 시 물어내야 할 위약금만 최대 160억 달러(약 22조 원)로 추산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습니다.

직렬식 개발의 한계를 넘어, 이제는 거점 중심의 옥사곤을 통해 효율적인 성장을 꾀하려는 전략입니다.
여기서 사우디는 발상을 뒤집었습니다. 170km 전체를 끝까지 잇는 '선' 대신, 당장 경제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점(Point)' 하나를 먼저 키우는 전략으로 급선회한 것입니다. 그 새로운 출발점이 바로 홍해 바닷가의 팔각형 부유식 산업단지 옥사곤(Oxagon)입니다.
옥사곤은 항만을 중심으로 물류, 첨단 제조업, 신재생에너지, AI 데이터 센터를 집약하는 거점형 도시입니다. 170km 전체를 연결할 필요 없이, 항만이 가동되면 바로 옆에 공장과 데이터 센터를 필요한 만큼만 붙여 나가며 즉각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도시의 크기보다 '자본의 회전 속도'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은 선택과 집중입니다.
5. 메가 프로젝트 해석법: 거대한 구상보다 중요한 것은 현금 흐름
네옴시티의 궤도 수정은 대규모 인프라 및 도시 개발 사업을 바라볼 때 핵심적인 기준을 제시합니다. 아무리 화려한 청사진이라도 인프라의 상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직렬형 설계'는 공정 지연과 비용 폭증의 덫에 빠지기 쉽습니다.
사우디가 탈석유와 '비전 2030'이라는 국가적 목표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아랍에미리트(UAE) 등 인접국과의 미래 주도권 경쟁 속에서, 실현 불가능한 직선의 환상을 걷어내고 실질적인 산업 생태계가 작동하는 거점 개발로 현실적인 타협을 본 것입니다. 결국 네옴시티의 진짜 변화는 선을 끝까지 긋는 무모함에서 벗어나 자생 가능한 점을 먼저 완성하려는 실용적 전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FAQ
네옴시티 '더 라인'의 공사가 중단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인가요?
170km 전체를 빈틈없이 직렬로 연결해야 하는 선형 도시 특성상 공사 난도가 극심했고, 누적 사업비가 초기 예상치의 17배가 넘는 8조 8,000억 달러까지 불어난 반면 유가 하락으로 재정 부담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트를 완전히 취소하지 않고 규모를 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미 약 640억 달러(약 90조 원)가 투입되었고, 계약을 전면 해지할 경우 물어내야 할 위약금만 최대 160억 달러(약 22조 원)에 달해 통째로 백지화하는 것 역시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을 낳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른 '옥사곤'은 어떤 곳인가요?
홍해 연안에 위치한 복합 산업 항만 도시로, 전체 인프라를 한꺼번에 다 완성할 필요 없이 항만을 중심으로 공장, 물류, 데이터 센터를 점진적으로 확장하며 즉각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거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