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
32

기록 없는 여의도 지하벙커는 어떻게 제 정체를 증명했나

spark_icon6분 지식
  • 2005년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공사 중 공문서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약 240평 규모의 지하 콘크리트 공간이 발견되었습니다.
  • 시공 서류 대신 과거 항공사진과 50cm 두께의 콘크리트 코어, 5·16 광장 사열대 위치를 대조해 1970년대 후반 요인 경호용 방호 시설임을 규명했습니다.
  • 역사적 흔적을 억지로 덮지 않고 원형을 보존해 서울시립미술관 '세마 벙커(SeMA Bunker)'라는 문화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승강장 한쪽 계단을 타고 지하 7~8m 아래로 내려가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거대한 콘크리트 방이 나타납니다. 2005년 환승센터 공사 현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이 공간은 총면적 약 793㎡(240평)에 달하며, 180평 규모의 대형 공간과 소파·화장실·샤워실을 갖춘 20평 남짓한 소형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이 거대한 시설을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 증명할 서류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기록이 완전히 증발한 상태에서 지하 시설의 용도와 가치를 어떻게 규명하고 보존해야 할까요? 여의도 지하벙커는 문서가 사라진 건축물이 현장에 남은 물리적 단서만으로 정체를 증명해 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서류 없는 지하 방호 시설의 구조적 실체

이 공간의 정체는 1970년대 냉전기 국가 비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극비리에 구축된 대통령 경호용 지하 방호 시설로 볼 수 있습니다. 환승센터 승강장 바닥 아래 방치되어 있던 공간을 조사했을 때, 바닥에는 30cm가량의 물이 차 있었고 외부로 연결된 출입구만 세 곳에 달했습니다.

대형 공간에는 자체 기계실과 화장실이 별도로 구축되어 있었고, 작은 방은 VIP가 머물 수 있는 독립된 주거 및 휴식 설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지하 창고나 배수 시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수 목적의 구조적 배치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기억과 현장 기록이 엇갈리는 혼란

공문서가 없다면 당시 공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구술 증언에 의존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 예비역 공병은 1975년 국군의 날 행사 준비에 동원되어 벙커 공사를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기억은 문서화된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교차 검증에서 오차를 만들어냅니다.

여의도 광장과 도로망을 단순화한 3D 건축 모형 위에서 자동차와 버스가 움직이는 항공 뷰 영상.

기록이 사라진 지하 공간의 실체를 찾기 위해 과거의 물리적 흔적과 구조를 면밀히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서류도 없고 기억의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때, 조사팀은 발상을 뒤집어 땅속 대신 하늘에서 촬영된 서울시의 연도별 항공사진을 전수 대조했습니다. 1976년 11월 항공사진에서는 해당 위치에 아무런 공사 흔적이 없었으나, 이듬해인 1977년 11월 항공사진에서 선명한 벙커 출입구가 포착되었습니다. 1975년이라는 구술 증언과 달리, 실제 공사는 1976년 말에서 1977년 말 사이에 진행되었음이 시각적 데이터로 입증된 셈입니다.

위치와 자재가 증명한 건축 목적

항공사진이 시기를 특정했다면, 시설의 건립 목적은 방이 위치한 지리적 맥락과 구조적 강도가 증명했습니다. 현재의 여의도공원은 1971년 조성된 12만 평 규모의 아스팔트 광장인 옛 '5·16 광장'이었습니다. 1970년대 이곳에서는 매년 대규모 국군의 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넓은 아스팔트 광장 위에 축구장 모양의 녹색 도식들이 수십 개 바둑판식으로 촘촘히 배열된 그래픽 이미지입니다.

과거 516 광장으로 불리던 여의도의 광활한 규모를 짐작게 합니다.

지하 벙커의 좌표를 지상 도면과 겹쳐 본 결과, 국군의 날 사열식 당시 대통령과 주요 요인들이 자리하던 사열 단상 바로 밑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여기에 콘크리트 벽체에서 추출한 원통형 코어의 두께는 무려 50cm에 달했습니다. 폭격이나 비상사태를 견뎌낼 수 있는 방호 벽체를 구축했다는 결정적 물증이었으며, 1977년 국군의 날을 전후해 대통령 경호 시설로 시공되었다는 해석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미완의 역사를 문화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역발상

정체가 규명되기 전인 2005년 당시에는 버스 환승객 편의시설 등 상업적 활용이 논의되었으나 낮은 사업성 때문에 문이 닫혔고, 10년 가까이 방치되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는 시설을 억지로 개조하거나 메우는 대신, 역사적 흔적을 있는 그대로 개방하는 역발상을 선택했습니다.

버스 여러 대가 줄지어 서 있는 버스 정류장의 모습을 표현한 3D 그래픽 영상 장면입니다.

기록조차 불분명했던 지하의 공간은 이제 시민들을 위한 문화적 자산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2015년 임시 개방을 거쳐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이 운영하는 문화 공간 세마 벙커(SeMA Bunker)로 정식 개관했습니다. VIP용 방은 벙커의 발굴 과정을 담은 역사 갤러리로, 대형 방호 공간은 현대미술 전시실로 탈바꿈했습니다. 상부의 5·16 광장은 여의도공원으로 바뀌었지만, 지하의 방은 지워지지 않고 온전히 보존되어 현대 시민을 위한 문화 자산으로 거듭났습니다.

누가 최종 지시를 내렸고 어떤 부대가 시공했는지 적힌 마지막 서류 한 칸은 여전히 빈칸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여의도 지하벙커는 서류가 침묵할 때 건축물의 물리적 두께와 지리적 흔적이 어떻게 역사를 증언할 수 있는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FAQ

여의도 지하벙커는 언제, 어떻게 처음 발견되었나요?

2005년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건립 공사를 진행하던 중 지하 7~8m 깊이에서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발견 당시에는 바닥에 30cm가량 물이 차 있었고 설계 도면이나 관련 기록이 전혀 없었습니다.

건립 시기를 1976~1977년으로 특정한 근거는 무엇인가요?

서울시가 보관하던 옛 항공사진을 전수 비교한 결과, 1976년 11월 사진에는 공사 흔적이 없었지만 1977년 11월 사진에서 벙커 출입구가 선명하게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여의도 지하벙커는 어떤 용도로 쓰이고 있나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뒤 리모델링을 거쳐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 공간인 '세마 벙커(SeMA Bunker)'로 개관하였으며, 현재 역사 전시와 현대미술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