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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빌딩 지하에 조선 골목이 통째로 남게 된 이유: 공평동 룰

spark_icon6분 지식
  • 2015년 종로 재개발 현장에서 쏟아져 나온 대규모 조선 시대 건물터와 골목 유적으로 개발과 보존이 정면 충돌했습니다.
  • 사업자가 지하 1층 전체를 유적 보존 공간으로 내어주는 대신 용적률 200%p 상향 혜택을 받는 '공평동 룰'로 해법을 찾았습니다.
  • 유적을 훼손하거나 사업을 백지화하지 않고 제자리에 온전히 되살려, 도심 개발과 역사 보존이 공존하는 기준을 세웠습니다.

서울 종로구 종각역 바로 옆 26층짜리 대형 오피스 빌딩 지하 1층에는 16~17세기 조선 시대 골목 42m와 집터가 원형 그대로 깔려 있습니다. 현대식 고층 빌딩과 수백 년 전 조선의 골목길이 한 건물 안에서 수직으로 공존하는 이 놀라운 풍경은 도시 개발과 문화재 보존의 극단적인 딜레마를 푼 '공평동 룰'이라는 제도적·공학적 역발상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왜 이 개념이 등장했을까: 개발과 보존의 진퇴양난

시작은 지난 2015년 종로 공평동 일대의 재개발 현장이었습니다. 지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내려가자 조선 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무려 4개 층에 걸친 생활 흔적인 '문화층'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땅을 파낸 네모난 구덩이 안에 격자무늬로 줄지어 있는 수많은 작은 집 모형들 위에 '건물터만'이라는 한글 자막이 적힌 3D 애니메이션 그래픽.

재개발 현장에서 쏟아져 나온 108개의 건물 터는 도시 개발의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발굴된 건물 터만 108개, 출토된 생활 유물은 1,000점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 자리에 지하 8층짜리 대형 빌딩이 들어설 예정이었다는 점입니다. 땅속의 유적을 원형 그대로 두면 지하 8층 규모의 흙파기 공사를 진행할 수 없고, 그렇다고 공사를 밀어붙이면 수백 년 된 골목과 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개발을 하자니 문화재가 울고, 보존을 하자니 사업이 멈추는 난감한 노릇이었죠.

왼쪽에는 베이지색의 전통 한옥 건물 모형이, 오른쪽에는 푸른빛의 현대식 빌딩 군 모형이 반씩 나뉘어 배치된 그래픽 이미지.

과거의 유산을 지키려는 노력과 현대적 개발의 필요성이 정면으로 충돌하던 당시의 고민이 느껴집니다.

공평동 룰의 정의: 유적을 전면 보존한 만큼 용적률을 보상하는 방식

'공평동 룰'이란 도심 재개발 구역에서 문화재나 도시 유적이 발굴되었을 때, 사업시행자가 해당 유적을 전면 보존해 시민에게 개방하는 대신 공공은 그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용적률 인센티브와 층수 완화 혜택을 제공하는 개발 보존 상생 모델을 의미합니다.

기존처럼 유적을 포기하거나 사업을 백지화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유적을 지킨 대가로 건축 기준을 완화해 줌으로써 민간의 손실을 막고 역사 자산의 현장 보존을 동시에 달성하는 방식입니다.

어디서 오해하기 쉬울까: 일부 이전 복원과의 명확한 차이

그럼 다른 빌딩들처럼 몇 개만 떼어 박물관으로 옮기거나 로비 구석에 모아두면 되지 않냐고요? 실제로 인근 청진동 등의 재개발 현장에서는 유적의 일부 조각만 떼어내 로비나 외부에 옮겨 보존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식 바닥 타일로 둘러싸인 정사각형의 유리창 아래로 오래된 돌과 흙이 쌓여 있는 유구 터가 들여다보이는 모습입니다.

기존 방식대로 일부 유적만 떼어내 옮겨 보존할 경우, 원래의 골목 형태와 동네의 맥락이 완전히 끊기고 맙니다.

하지만 조각만 떼어내 남기면 골목의 연결성이 끊기고 동네 전체의 맥락과 공간 구조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공평동 룰은 단순히 '유적의 일부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동네와 골목의 원형 전체를 제자리에 되살리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덮어두거나 치우는 대신, 잠시 밖으로 옮겨두었다가 공사가 끝난 뒤 원래의 높이와 좌표에 정확히 되돌려 놓는 고도의 이전 복원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실제 현장 적용: 지하 1층을 비우고 용적률을 얻다

사업자와 관계 기관은 반년 넘는 마라톤 협의 끝에 발상을 뒤집는 공학적 해법을 찾아냈습니다. 16~17세기 층의 집터와 길을 해체해 임시 보관소로 안전하게 옮겨둔 뒤, 대지를 지하 8층까지 굴착해 빌딩을 올렸습니다.

빌딩의 층별 구조를 나타내는 3D 다이어그램으로, 각 층이 분리되어 보이며 중앙에 '바닥 면적'이라는 한글 자막이 적힌 모습

유적을 보존하는 대신 늘어난 용적률을 활용해 빌딩을 위로 높이는 방식으로 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맞췄습니다.

핵심은 빌딩의 지하 1층 전체(높이 6m, 면적 3,818㎡)를 통째로 비워 전시장으로 만들고, 보관해 두었던 유적을 원래 놓였던 자리에 1:1로 되돌려 놓은 것입니다. 대신 서울시는 사업자에게 용적률을 기존 999%에서 1,199%로 200%포인트 상향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당초 22층으로 계획되었던 건물 한 동을 최고 높이 113.8m 한도 안에서 26층까지 올려 지을 수 있었습니다.

현대적인 화이트 톤의 건물 내부 공간으로, 중앙 통로를 따라 밝은 조명이 설치되어 있고 기둥들이 세워져 있는 모습

지하 1층 전체를 유적 전시를 위해 비워두는 대신, 용적률 완화 혜택을 통해 상생의 가치를 실현했습니다.

도시를 읽는 새로운 기준: 공평동 룰이 남긴 교훈

공평동 룰은 역사 도시 서울에서 묵은 갈등이었던 '문화재 보존 vs 도심 고밀 개발'의 충돌을 창의적인 제도 설계로 해결한 결정적 선례가 되었습니다. 이후 인근 인사동 재개발 빌딩 지하에도 동일한 방식의 도시유적전시관이 들어서며 도시 재생의 정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재 종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 방문하면 조선 시대부터 현대까지 실제로 쓰였던 골목길 42m를 누구나 직접 걸어볼 수 있으며, 그 위로는 매일 수많은 직장인이 출근합니다. 갈등을 힘으로 억누르지 않고 공간과 용적률을 맞바꾼 역발상, 종로 빌딩 밑 조선 골목은 이렇게 탄생한 것입니다.


FAQ

공평동 룰을 적용하면 건물 높이 제한도 무제한으로 풀리나요?

아닙니다. 용적률 인센티브(200%p)를 통해 22층에서 26층으로 층수를 더 올릴 수 있었지만, 서울 도심의 최고 높이 기준인 113.8m 제한은 그대로 준수하며 설계되었습니다.

지하 1층 유적은 공사하는 동안 어떻게 손상 없이 보존되었나요?

유적을 땅속에 그대로 둔 채 지하 8층을 팔 수 없었기 때문에, 16~17세기 문화층을 정밀 해체해 외부 보관소로 안전하게 옮겨둔 뒤 골조 공사가 끝난 지하 1층 원위치로 되돌려 복원했습니다.

종로 지하의 조선 골목 전시는 누구나 관람할 수 있나요?

네, 종각역 인근 센트로폴리스 빌딩 지하 1층에 마련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시민들에게 전면 무료로 개방되어 있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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