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서궐로 불리던 경희궁은 경복궁 중건 자재 전용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정전 숭정전과 정문 흥화문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 동국대로 팔려간 진짜 숭정전은 노후화와 변형으로 이전이 불가능해지자, 터에 남은 유구 발굴과 고증을 통해 현장에 새로 세우는 역발상을 택했습니다.
- 그 결과 진짜 숭정전은 동국대 정각원으로, 고증 복원된 새 숭정전은 경희궁 터에 남아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왕좌가 놓인 정전 건물이 두 채나 존재하는 기묘한 궁궐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역사박물관 옆에 자리한 경희궁 이야기입니다. 원래 한 궁궐의 정전은 하나여야 마땅하지만, 진짜 숭정전은 현재 남산자락 동국대학교 안에 서 있고, 경희궁 터에는 1990년대에 새로 지은 숭정전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조선 왕실의 중심 건물이 대학교 법당이 되었고, 궁궐에는 또 다른 숭정전이 세워지게 되었을까요? 훼손된 문화재를 되살리는 과정에서 선택한 독특한 복원 해법을 들여다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7만 평 서궐이 다섯 채로 줄어든 해체의 역사
1617년 광해군 때 짓기 시작한 경희궁은 창덕궁과 창경궁을 '동궐'이라 부를 때 '서궐'로 불리던 거대한 궁궐이었습니다. 부지만 7만 평 남짓(축구장 30개 규모)에 달했고 백여 동의 전각이 들어서 있었죠. 경종, 정조, 헌종이 이곳 숭정문에서 즉위식을 치렀을 만큼 왕실의 중추적인 무대였습니다.

경희궁의 얼굴이자 정전인 숭정전은 일제강점기에 해체되어 여러 곳을 떠도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흔히 일제가 처음부터 궁궐 전체를 철거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전각 대부분은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헐려 목재 자재로 먼저 쓰였습니다. 이후 1910년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었을 때는 궁궐 안에 단 다섯 채의 건물만 남았고, 궁터 절반에는 일본인 학교인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며 파괴가 가속화되었습니다. 1926년에는 궁의 얼굴인 정전 숭정전이 일본 사찰에 매각되었고, 1932년에는 정문인 흥화문마저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박문사)의 문으로 뜯겨 나갔습니다.
진짜 건물을 도로 가져올 수 없었던 딜레마
해방 이후 정문 흥화문은 장충동 신라호텔 정문으로 쓰였고, 일본 사찰로 팔려갔던 숭정전은 동국대학교 안에서 '정각원'이라는 법당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1980년대에 이르러 마침내 경희궁 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팔려간 진짜 숭정전을 도로 뜯어서 원래 자리에 옮겨오면 되지 않았을까요? 문제는 상황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목재가 심하게 낡았을 뿐만 아니라, 불교 법당으로 쓰이면서 내부 구조와 외형 변형이 너무 많이 일어난 상태였습니다. 건물을 통째로 해체해 원형대로 복원 이전하기에는 구조적 한계와 파손 위험이 극심했죠. 치울 수도, 그렇다고 원형 그대로 가져올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부딪힌 셈입니다.
이건 대신 발굴을 택한 1980년대의 역발상
여기서 복원팀은 발상을 뒤집습니다. 무리하게 건물을 옮겨오는 대신, 땅속에 묻힌 유구와 주초를 발굴해 옛 기록과 맞춰 새로 짓는 방식을 선택한 것입니다.

건물을 옮겨오는 대신 발굴을 통해 확인한 기초 자리를 바탕으로 복원을 진행했습니다.
1987년부터 학교가 사용하던 터를 본격적으로 파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땅속에서 기와와 자기 조각만 1,000점 넘게 쏟아져 나왔고, 1990년에는 학교 강당을 헐어내며 원래 숭정문 자리까지 명확하게 찾아냈습니다. 이 발굴 결과와 조선 시대 문헌 기록을 정밀하게 대조하여 1990년대에 경희궁 터에 숭정전을 새로 건립했습니다.
이후 1998년 자정전과 회랑, 2000년 태령전, 2001년 금천교까지 순차적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신라호텔 정문으로 쓰이던 흥화문도 1980년대 후반에 돌아왔지만, 옛 정문 자리에는 이미 도로와 민간 건물이 들어서 있어 부득이하게 지금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두 개의 숭정전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
결과적으로 우리는 서울 안에서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두 개의 숭정전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동국대학교 정각원은 비록 형태는 변형되었으나 조선 시대 목재와 골조가 살아 숨 쉬는 진짜 유물이며, 경희궁 경내의 숭정전은 철저한 발굴 조사와 고증을 거쳐 장소의 역사성을 되살린 재건 건축물입니다.

복원된 경희궁 일대는 오늘날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경희궁은 2002년부터 전면 개방되어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건물이 겪은 수난의 역사와 현장 복원의 한계를 이해하고 나면, 왜 진짜 건물을 제자리에 두지 못했는지 그 속사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지금 우리가 도심 속에서 호젓하게 거니는 경희궁은 물리적 이건의 한계를 발굴 고증이라는 역발상으로 극복해 낸 결과물입니다.
FAQ
경희궁 숭정전 원본 건물은 현재 어디에 있나요?
1926년 일본 사찰에 매각된 후 현재는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 내에서 '정각원'이라는 법당 건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은 왜 원래 위치가 아닌 곳에 서 있나요?
신라호텔 정문으로 쓰이다 1980년대 후반에 반환되었으나, 원래 흥화문 터에 이미 도로와 민간 건물이 들어서 있어 부득이하게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습니다.
경희궁은 일제강점기 이전에 이미 훼손되었던 건가요?
그렇습니다. 1865년 흥선대원군이 화재로 소실된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경희궁의 전각 대부분을 헐어 목재 자재로 전용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