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국가교육위원회가 킬러 문항 배제에 이어 서술형 수능 도입과 AI 채점을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 글쓰기와 독서는 독학과 인강으로 극복하기 어렵고 고가의 1:1 대면 첨삭 사교육과 가정 환경에 크게 좌우됩니다.
- 입시 형식만 바꾸는 땜질식 처방 대신 학벌에 따른 임금 격차 해소와 직업 교육 강화를 통한 근본 대책이 필요합니다.

킬러 문항을 없애더니 이제는 서술형 수능 도입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국가교육위원회 등에서는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고 폭넓은 독서를 유도하면 굳이 사교육 학원에 갈 필요가 없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인공지능(AI) 채점을 도입해 공정성까지 확보하겠다는 계산입니다.
하지만 이는 한국 사교육 시장의 생리와 글쓰기 교육의 본질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바라본 순진한 착각입니다. 입시 형식을 서술형으로 바꾼다고 해서 사교육비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부모의 경제력과 계층에 따른 교육 격차가 한층 더 정교하게 고착화될 위험이 큽니다.
수능 서술형 도입 논의가 교육 격차를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왜 서술형 수능이 사교육을 더 자극하는가
기존의 객관식 수능은 여러 한계와 비판 속에서도 EBS 강의나 기출 독학을 통해 개인이 노력으로 돌파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다리 역할을 해왔습니다. 막대한 사교육비를 쓰지 못하는 환경에서도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내는 일이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글쓰기와 논술은 학습 메커니즘 자체가 다릅니다. 서술형 시험 대비의 핵심은 대형 강의나 인강 청취가 아니라 1:1 대면 첨삭과 피드백입니다. 문장을 다듬고 논리적 결함을 교정해 주는 전문 코치가 붙어야 실력이 오르는데, 이러한 개별 맞춤형 첨삭은 사교육 시장에서 가장 단가가 높은 고비용 영역입니다. 결국 서술형 비중이 커지면 사교육 진입 비용의 기준선 자체가 껑충 뛰게 됩니다.
객관식 수능을 무조건적인 암기로 치부하는 시각에는 분명한 자기모순이 담겨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는 사교육보다 더 냉혹한 계급 지표다
당국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으면 학원 없이도 서술형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 통계는 정반대의 그림을 보여줍니다. 소득 하위 가구의 독서율은 급격히 떨어지는 반면, 고소득 가구는 부모의 직업적 특성과 환경 덕분에 독서 습관을 형성할 여유가 훨씬 많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는 개인의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가정의 문화적·경제적 자본이 장기간 누적되어 발현되는 계층적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혼자 방에 앉아 문제집을 푸는 것보다, 책을 읽고 토론하며 글을 첨삭받는 환경을 갖추는 일이 저소득층 학생에게는 훨씬 더 가혹하고 넘기 힘든 장벽입니다.
AI 채점 도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채점 알고리즘에 일관된 패턴이 존재하는 한, 막대한 자본을 굴리는 사교육 시장의 스타 강사들이 공교육 교사들보다 훨씬 빠르게 고득점 알고리즘 공식을 파헤치고 맞춤형 답안 템플릿을 상품화할 것이 자명합니다.
입시 제도의 변화가 사교육 시장에 미칠 실질적인 영향에 대해 여러분의 의견을 들려주세요.
문제의 본질: 시험 제도가 아니라 노동 시장의 보상 격차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이유는 시험이 객관식이냐 서술식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간판과 최종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와 생존 불안이 여전히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대졸과 고졸, 상위권 대학과 비상위권 대학 간의 보상 차이가 극심한 구조 속에서,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위해 가장 확실하다고 믿는 입시에 투자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험 문제 형식을 아무리 뜯어고쳐도 사교육은 형태만 바꾸어 더 비싼 프리미엄 시장으로 진화할 뿐입니다. 실제로 최근 전체 사교육비 총액 증가세가 소폭 둔화되더라도 1인당 사교육비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상류층은 값비싼 맞춤형 과외로 이동하고, 저소득층은 비용 부담 때문에 아예 사교육 시장에서 밀려나는 형태의 분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입시 개편을 넘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사교육 수요를 근본적으로 분산시키려면 대학 입시 제도를 만지작거릴 것이 아니라, 대학을 가지 않아도 양질의 소득과 삶을 누릴 수 있는 경로를 사회 전반에 깔아주어야 합니다.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 등 직업 교육의 질을 대폭 끌어올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산업 현장이나 첨단 기술 스타트업으로 진출할 수 있는 원스톱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른 나이의 창업과 기술 인력에 대한 과감한 투자, 그리고 학력에 얽매이지 않는 공정한 보상 시스템이 실제로 증명될 때 비로소 대입을 향한 비정상적인 사교육 질주가 멈출 수 있습니다.
FAQ
서술형 수능이 도입되면 정말 사교육비가 줄어드나요?
줄어들기 어렵습니다. 서술형 시험 대비는 1:1 맞춤 첨삭과 개별 피드백이 필수적이어서 일반 대형 강의보다 훨씬 비싼 고비용 사교육 시장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AI가 채점하면 채점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나요?
AI 채점 방식에 일정한 패턴이나 평가 기준이 적용되는 순간, 자본력을 갖춘 대형 사교육 시장이 해당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답안 작성 요령을 가장 먼저 분석해 상품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독서 중심의 학습으로 서술형 시험을 대비하는 것은 왜 어렵나요?
소득 수준에 따른 독서율과 가정 내 독서 환경의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독서와 글쓰기 역량은 공교육만으로 균등하게 채우기 힘든 계층적 격차를 유발하기 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