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병수 건축가는 외관을 드러내지 않고 땅속에 묻힌 6평 규모의 땅속 집과 하늘을 담은 'ㅁ'자 집을 선보였습니다.
- 윤동주 시인을 기리며 현장의 흙과 재생 목재로 지어진 이 집들은 인공미를 덜어내고 자연과의 조화를 극대화합니다.
- 채우기보다 비워내고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건축적 시도는 주거 공간의 본질적인 가치를 다시 묻습니다.

산비탈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 마주하는 공간에는 거대한 외관 대신 땅 아래로 깊게 파인 마당과 낮은 문이 자리합니다. 얼핏 군사 훈련용 벙커처럼 보이는 이 집은 조병수 건축가가 설계한 '땅속 집'입니다. 화려한 건축적 조형을 뽐내는 대신, 집 전체를 땅속으로 묻어 자연의 품에 온전히 숨겨두었습니다.

산비탈의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 마주하는 이 집은 화려한 외관 대신 땅속에 몸을 숨겨 자연과 온전히 하나가 되었습니다.
화려한 외관을 지우고 땅속으로 들어간 이유
보통의 주택이 웅장한 외관이나 넓은 면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면, 이 땅속 집은 완전한 비움과 절제를 택했습니다. 방문객은 높이 1.5m 남짓의 낮은 문을 통과하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겸손한 태도로 공간에 들어서게 됩니다.
나무 한 그루 심지 않은 네모난 마당에 서면 사방의 흙벽과 프레임에 담긴 하늘, 주변 숲이 극적으로 대비됩니다. 인공적인 장식을 극도로 덜어낸 덕분에 오히려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풍경이 더욱 선명하게 도드라지는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마음과 흙으로 빚은 축조 방식
이 집의 뿌리에는 시인 윤동주를 기리는 마음과 건축가의 어린 시절 기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땅을 파고 그 안에 안식처를 마련하는 과정은 언젠가 무덤 위에 풀이 피어나듯, 집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길 바라는 철학에서 출발했습니다.
건축에 쓰인 주재료 역시 그 자리에 있던 흙과 재생 목재뿐입니다. 터를 파내며 나온 흙을 하루에 몇 줄씩 정성스레 묵묵히 다져 올려 벽을 쌓았습니다. 인위적인 콘크리트 대신 오랜 시간과 흙의 질감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벽체 자체가 하나의 시간 기록인 셈입니다.
지하의 한계를 넘은 빛과 바람의 순환 구조
땅속에 묻힌 구조이지만 내부는 결코 어둡거나 답답하지 않습니다. 집과 흙담 사이에 좁고 긴 틈을 둔 '빛의 정원'을 설계해 바람길을 열고 자연광이 실내 깊숙이 스며들도록 만들었습니다.

벽과 담 사이를 비워둔 덕분에 지하 공간임에도 답답함 없이 빛과 바람이 자유롭게 머물 수 있습니다.
한 평 남짓한 방 여섯 개가 미닫이문으로 연결된 구조는 전통 한옥의 스케일과 공간감을 떠올리게 합니다. 필요한 최소한의 면적만 남겨둔 방과 달리, 하늘과 맞닿은 욕조 공간 등은 자연을 고스란히 체감할 수 있도록 열어두어 작은 공간 안에서도 풍성한 공간적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ㅁ'자 집으로 이어지는 하늘과 자연의 확장
조병수 건축가의 자연 친화적 실험은 인근에 자리한 또 다른 공간인 'ㅁ'자 집으로 이어집니다. 겉에서 보면 네모반듯하고 육중한 상자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건물 한가운데에 연못과 뚫린 천장을 품은 중정이 나타납니다.

미음(ㅁ)자 구조의 중정을 품은 이 집은 하늘과 자연을 오롯이 담아내며 고요한 쉼을 선사합니다.
기존 건물의 골조와 재생 나무 기둥을 살려둔 중정은 주변 숲과 시각적으로 이어지며 경계를 허뭅니다. 인공의 구조물이 자연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네모난 하늘과 물을 집 안으로 끌어들여 자연의 일부로 녹아드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비워냄으로써 완성되는 지속 가능한 주거의 미래
더 넓고 더 화려한 집을 선호하는 시대에, 땅속 집과 'ㅁ'자 집은 주거의 본질이 무엇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시간이 흐르면 흙으로 돌아갈 재료를 사용하고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건축은 환경과 인간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명확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땅과 하늘에 자리를 내어주는 건축은, 과도한 소유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휴식과 안식이 머무는 공간의 조건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FAQ
땅속 집은 지하에 있어 어둡거나 습하지 않나요?
집과 외벽 사이에 '빛의 정원'이라 불리는 틈새 공간을 마련하여 햇빛과 바람이 원활하게 드나들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 덕분에 지하 구조임에도 쾌적한 환기와 자연 채광이 확보됩니다.
땅속 집의 벽체는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나요?
해당 부지의 터를 파낼 때 나온 본래의 흙만을 다져 올려 벽체를 완성했습니다. 인공 마감재를 최소화하고 흙을 켜켜이 쌓는 전통 방식을 활용하여 흙벽 고유의 질감과 포근함을 살렸습니다.
조병수 건축가가 땅속 집을 설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 흙과 땅속 공간에서 느꼈던 포근한 기억과 더불어 윤동주 시인의 시 세계를 기리고자 기획되었습니다. 거주자가 머물다 떠난 뒤 서서히 자연 속으로 사라지는 건축을 지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