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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터 위에 세운 화해의 공간, 대종손 부부가 선산 앞에 새집을 지은 사연

spark_icon5분 지식
  • 충북 청주에서 300년 터를 지켜온 대종손 부부가 평생 헌신한 아내와 자손들을 위해 현대적인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 옛 한옥의 툇마루를 살린 긴 복도, 냄새와 해충을 막는 편백 현관, 거실과 시선을 분리한 주방 등 종갓집 며느리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맞춤 설계가 적용되었습니다.
  • 선산을 향해 얹은 스페인 기와 지붕과 아들·손주가 함께 머무는 공간 배치는 전통 계승과 현대 가족의 편안한 공존을 보여줍니다.

충청북도 청주의 한적한 마을, 300년 동안 대대로 자리를 지켜온 유서 깊은 터에 조금 특별한 집 한 채가 들어섰습니다. 진주 유씨 27대 대종손 유만형 씨와 평생을 대종손 며느리로 살아온 권영애 씨 부부의 보금자리입니다.

과거 흙과 짚으로 지어진 낡은 집을 허물고 새로 지은 이 집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현대식으로 바꾼 것을 넘어 종가라는 전통의 무게와 가족 개개인의 삶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1년에 12번 제사를 치러낸 아내를 위한 결단

대종손 집안으로 시집와 4대 봉사 제사 여덟 번과 명절, 시제까지 합쳐 1년에 무려 12번의 제사를 묵묵히 받들어 온 아내 권영애 씨의 세월은 고단함 그 자체였습니다. 구들장에 쥐와 지네가 들끓고 비바람이 들이치는 흙집에서 수십 명의 친척을 맞이하며 음식을 차려내던 나날이었습니다.

실내 소파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중년 부부의 모습이 담긴 방송 화면이다.

종갓집 며느리로 평생을 헌신해 온 아내와 그런 아내를 위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남편이 지난 세월을 담담히 회상합니다.

할아버지가 손수 지어주신 집이라 옛집을 허물 때 눈물을 쏟았던 유만형 씨였지만, 평생 묵묵히 희생해 준 아내의 소원이었던 '편안한 새집'을 짓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터를 훗날 자손들에게 온전히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지금 세대에 맞는 변화가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300년 된 종가 터에 새로 지은 현대적이고 깔끔한 단층 주택의 외관 모습이다.

조상님들을 먼저 모신 뒤에야 비로소 두 사람만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전통의 툇마루를 실내로 들인 3대 공존의 공간 설계

새집은 대지의 형상을 살려 좌우로 길게 뻗은 구조로 완성되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옛 한옥의 툇마루를 연상시키는 긴 내부 복도입니다. 이 복도는 부부가 생활하는 왼쪽 공간과 아들 내외 및 손자·손녀가 머무는 오른쪽 공간을 자연스럽게 연결합니다.

복도 중간에는 작은 거실 형태의 전이공간을 두어 세대 간의 독립성을 지키면서도 언제든 모여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과거 대가족이 한 지붕 아래 부대끼며 살던 정취를 현대적인 동선 분리로 쾌적하게 풀어낸 셈입니다.

옛날 방식의 개방형 방 안에서 여성이 앉아 있는 모습이 담긴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벽돌 무늬 배경 위에 놓여 있습니다.

종가 며느리로 평생을 바친 고단함과 비바람을 견뎌야 했던 옛집의 풍경입니다.

종갓집 며느리의 애환을 지워낸 맞춤형 디테일

집 안 곳곳에는 영애 씨의 오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세심한 건축적 장치가 숨어 있습니다. 신발을 신다 지네에 쏘였던 끔찍한 기억을 달래기 위해 널찍한 실내 현관을 만들고 벽면을 편백나무로 마감해 은은한 향이 감돌도록 했습니다.

주방은 거실과 일직선으로 두지 않고 살짝 틀어진 엇갈린 구조로 배치했습니다. 명절이나 제사 때 손님들이 거실에 모여 있을 때 주방에서 일하는 뒷모습이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입니다. 사용 빈도가 낮은 상부장을 과감히 없애 개방감을 확보하고, 부부 침실 내 화장실 소음이 수면을 방해하지 않도록 화장실을 침실 밖으로 분리하는 등 실용성과 휴식에 집중했습니다.

조상님을 향해 올린 기와와 이어지는 효의 가치

집 뒤편에는 6대조 조상까지 한곳으로 정성껏 이장해 모신 가족 묘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집은 길 아래 정면에서 바라보면 현대적인 평지붕처럼 보이지만, 선산 묘소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면 붉은빛 스페인 기와가 지붕 가득 펼쳐집니다.

실내에서 나란히 의자에 앉아 인터뷰 중인 중년 부부와 그 아래 놓인 자막.

조상님을 향한 정성을 지붕에 담아낸 부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오직 위에서 굽어살피시는 조상님들만이 감상할 수 있도록 기와를 얹은 구조는, 후손으로서의 정성과 예우를 담아낸 유쾌하면서도 깊은 건축적 표현입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선산에 올라 인사를 드리는 대종손의 일상은 아들과 손주에게도 자연스러운 가르침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전통을 지키는 방식 역시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번 주택은 조상을 향한 지극한 공경과 곁에서 헌신한 동반자에 대한 배려가 만났을 때, 주거 공간이 어떻게 가족 모두의 따뜻한 안식처가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FAQ

집 뒤편 선산에만 기와가 보이도록 지붕을 설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면 진입로에서 볼 때는 단정한 현대식 평지붕 형태를 띠지만, 집 뒤편에 모신 조상님들의 묘소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아름다운 스페인 기와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설계하여 조상을 향한 정성과 예우를 표현했습니다.

주방과 거실을 일직선이 아닌 엇갈린 구조로 배치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제사나 명절에 많은 친척과 손님이 거실에 모였을 때, 주방에서 음식 준비를 하는 며느리의 뒷모습이 거실에 그대로 노출되는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시선을 분리한 맞춤 설계입니다.

부부 침실 안쪽에 전용 화장실을 두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방 안에 화장실이 있을 경우 발생하는 생활 소음이 숙면을 방해할 수 있어, 보다 깊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화장실을 침실 외부 복도 공간으로 분리 배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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