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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한반도에는 호랑이보다 표범이 더 많이 서식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매화무늬의 아름다운 가죽 때문에 '돈범'이라 불리며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 일제강점기의 대규모 해수구제 사업 이후에도 표범은 소백산과 덕유산 등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버텼으나, 광복 이후 산에 촘촘히 설치된 올무로 인해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 1970년 마산 여항산 공식 포획을 끝으로 자취를 감춘 표범의 역사는 무분별한 인위적 포획이 어떻게 대형 맹수를 완전한 절멸로 몰아넣었는지 보여주는 뼈아픈 경고입니다.

불과 6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인왕산과 북악산은 물론 백두대간 깊은 골짜기에는 호랑이보다 표범이 더 많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와 표범을 엄밀히 구분하지 않고 함께 '범'이라 불렀으며, 아름다운 매화꽃무늬 가죽을 가진 표범을 동전 무늬와 닮았다 하여 '돈범'이라 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최후의 맹수였던 표범은 결국 우리 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표범은 어떻게 호랑이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왜 결국 비참한 절멸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요? 한반도 표범이 남긴 마지막 생존 기록과 멸종의 원인을 다큐멘터리 시선으로 차분히 짚어봅니다.

1. 한반도 최후의 맹수 표범, 우리 곁에서 어떻게 사라졌을까요?

공식적인 야생 표범의 마지막 기록은 1970년 경남 마산 여항산에서 몸무게 50kg의 다잡힌 수컷 표범이 포획된 사건입니다. 그보다 앞선 1962년 경남 합천 오도산에서는 황홍갑 선생에 의해 표범이 생포되어 창경원 동물원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한국의 마지막 표범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짙은 보라색 점퍼를 입고 모자를 쓴 91세 노인이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 화면으로, 하단에는 이름과 함께 '먹을 수 있는 건 모두 잡아먹었다'는 자막이 적혀 있다.

과거 척박했던 시절, 생존을 위해 야생 동물을 사냥하며 살아가야 했던 마을 주민의 증언을 통해 당시의 험난했던 상황을 돌아봅니다.


당시 오도산 8부 능선 바위 지대에서 올가미에 걸린 표범은 마을 주민들에 의해 생포되어 며칠간 마을에 갇혀 있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전북 덕유산, 경북 김천 삼방산과 수도산 등 백두대간 험준한 산악지대에서는 표범이 잡혔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호랑이가 일찌감치 자취를 감춘 후에도 표범은 특유의 은밀한 생존 능력 덕분에 1970~1990년대까지 극소수가 고립된 채 야생에서 생존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 호랑이보다 흔했던 '돈범', 왜 한반도 생태계에서 중요했을까요?

표범은 한반도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노루, 고라니, 토끼, 너구리 같은 소동물 개체수를 조절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호랑이가 거대한 체구로 사람이나 큰 가축에게 위협이 되었다면, 표범은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험준한 바위 지대에 숨어 살며 인간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는 편이었습니다.


두 명의 연로한 여성들이 실내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상 화면입니다.

과거 마을 근처까지 내려왔던 표범의 습격과 관련된 생생한 목격담을 듣는 자리입니다.


표범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매화무늬 가죽은 조선시대 왕실 진상품으로 공납될 만큼 호랑이 가죽보다 오히려 높은 경제적 가치를 가졌습니다. 가죽 가치가 높다 보니 조선시대부터 지속적인 표적이 되었지만, 표범은 뛰어난 적응력과 험준한 산세를 활용해 호랑이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한반도 산하의 생태적 균형을 유지하는 축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3. 아름다운 가죽과 끊이지 않은 올무, 표범을 절멸로 몰아넣은 원인

표범을 멸종으로 내몬 첫 번째 거대한 타격은 일제강점기 시행된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이었습니다. 일제는 사람과 가축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수천 마리의 범과 표범을 무자비하게 포획했습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한반도 표범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은 진짜 원인은 전국 산야에 촘촘히 깔린 '올무'와 덫이었습니다.


바위 틈새로 내디딘 얼룩무늬 표범의 발이 흑백 화면으로 클로즈업되어 있습니다.

은밀한 생존 능력으로 산속을 누비던 표범은 결국 인간의 덫을 피하지 못하고 우리 곁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습니다.


당시 주민들은 멧돼지나 노루 같은 야생동물을 잡아 단백질을 보충하거나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산에 올무를 놓았습니다. 올무는 동물의 종류, 암수, 성체와 새끼를 가리지 않고 일단 걸리면 목숨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도구였습니다. 잡힌 표범의 가죽이나 고기가 고가에 거래되거나 한약재로 팔려나가는 시장 구조 역시 무분별한 밀렵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4. 멸종이 남긴 상흔: 산골 주민들의 기억과 맹수 잃은 야생의 변화

과거 표범이 포획되었던 마을 주민들의 기억 속에는 맹수와의 강렬했던 접촉이 여전히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경남 산청 고촌마을에서는 집안까지 들어온 표범이 사람을 공격하자 절굿공이로 표범을 제압했던 기이한 실화가 전해지며, 무주 덕유산 일대에서는 산돼지를 잡으려다 표범을 만나 포수들이 총을 쏘았던 긴박했던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험준한 바위산과 주변의 울창한 숲이 보이는 풍경

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든 깊은 산간 지역은 표범이 마지막까지 숨어 지낼 수 있었던 은신처였습니다.


하지만 대형 맹수인 표범이 완전히 사라진 이후 한반도 야생 생태계는 심각한 불균형을 겪게 되었습니다.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지자 멧돼지와 고라니의 개체수가 급증하여 농가 피해가 커졌고, 이는 산림 생태계 전체의 먹이사슬 구조를 크게 흔드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5. 사라진 범의 경고: 생태계 복원과 야생동물 공존을 위해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표범의 멸종은 한번 파괴된 생태계와 종의 다양성을 되돌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입니다. 한반도 최후의 맹수가 올무에 걸려 쓸쓸히 사라져 간 역사는, 오늘날 우리가 추진하는 반달가슴곰이나 여우 등 야생동물 복원 사업에서 서식지 보호와 불법 포획 도구 제거가 왜 핵심 과제인지를 명확히 알려줍니다.


눈 덮인 산비탈에 방치된 동물의 뼈가 드러나 있는 모습이다.

무분별하게 설치된 올무와 덫은 야생동물들을 가리지 않고 희생시키며 한반도 생태계를 소리 없이 무너뜨렸습니다.


우리가 야생동물과의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고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순환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한때 이 땅의 주인이었던 생명체들은 언제든 기어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사라진 표범이 남긴 조용한 경고를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갈 생태적 공존을 향한 첫걸음일 것입니다.


FAQ

한국 야생 표범의 공식적인 마지막 포획 기록은 언제인가요?

공식적으로 확인된 한국 야생 표범의 마지막 포획 기록은 1970년 경남 마산 여항산에서 잡힌 몸무게 50kg의 수컷 표범입니다. 산채로 생포되어 창경원 동물원에서 살았던 마지막 표범은 1962년 경남 합천 오도산에서 포획되었습니다.

조선시대나 과거에 표범을 왜 '돈범'이라고 불렀나요?

표범 몸에 새겨진 아름다운 매화꽃무늬가 옛날 엽전(돈)의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돈범'이라 불렀습니다. 호랑이는 줄무늬 때문에 '줄범' 또는 '칙범'이라 불렸습니다.

한반도 표범이 호랑이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표범은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험준한 바위 지대에 서식하며 주로 토끼, 너구리, 노루 같은 소동물을 사냥했습니다. 호랑이처럼 마을을 습격하거나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적어 상대적으로 인간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한반도 표범을 최종적으로 절멸시킨 주요 원인은 무엇인가요?

일제강점기의 대규모 해수구제 사업으로 큰 타격을 입은 후, 해방 이후 전국 산야에 무분별하게 설치된 '올무'와 덫이 표범의 마지막 숨통을 끊었습니다. 올무는 암수나 새끼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야생동물을 죽이는 치명적인 밀렵 도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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