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철원 최전방 GOP 장병들이 24시간 철통 경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민통선 내부 대마리 마을 주민들은 평화로운 농경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지뢰밭과 황무지를 맨손으로 개척한 1·2세대 주민들의 헌신과 영농철 대민지원에 나선 장병들의 노력이 어우러져 민통선 안의 오늘을 일구었습니다.
- 백마고지와 노동당사의 전쟁 상흔 속에서도 굳건히 삶을 지켜내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의 숭고한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248km 비무장지대 철책이 이어지는 강원특별자치도 철원의 최전방. 남북을 가르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육군 5사단 GOP 장병들은 철책 경계 임무를 쉼 없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 철책 아래 위치한 민간인 통제선 안쪽 대마리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군 장병들의 도움을 받아 들녘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죠. 분단의 최전선에서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파수꾼들과 지뢰밭을 일궈 삶의 터전으로 만든 주민들이 어떻게 한마음으로 일상을 지켜내고 있는지 그 현장을 살려봅니다.
최전방 철책 아래에서 이어지는 군과 민의 특별한 일상
북한 초소가 바라보이는 최전방 GOP 경계 초소에서는 밤낮없는 긴장감이 감돕니다. 장병들은 장비 점검과 탄약 확인을 마친 후 24시간 철통 경계 태세를 유지하며 북한군의 동향을 꼼꼼히 살피고 있습니다. 이들의 묵묵한 노고 덕분에 국민들은 안전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이죠.
한편, 철책 바로 아래 자리한 대마리 마을에서는 정겨운 농번기 풍경이 펼쳐집니다. 모내기철을 맞아 마을을 찾은 장병들은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돕기 위해 대민 지원에 나섭니다. 삼엄한 철책선과 전쟁의 흔적이 짙게 남은 노동당사 근처에서 군인과 주민이 어우러져 함께 땀 흘리는 모습은 접경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숭고한 진풍경입니다.
지뢰밭을 일궈 삶의 터전으로 만든 마을의 1세대 어르신을 만나 당시의 치열했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분단의 현실 속에서 민통선 마을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
대마리는 단순한 시골 마을이 아닌,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개척 정신이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과거 북한의 선전촌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략촌으로, 처음 조성될 당시에는 열을 맞추어 들어선 집들이 데칼코마니처럼 정돈된 구조를 띠고 있었습니다.
거친 땅을 일궈 삶의 터전으로 만들기까지, 민통선 마을 1세대 주민들이 겪어온 치열했던 세월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6.25 전쟁 이후 잿더미로 변했던 이곳은 지뢰가 묻혀 있던 황무지였습니다. 하지만 제대 군인들을 중심으로 한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땅을 일구어 낸 결과,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민간인 개척 마을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분단의 가혹한 조건 속에서도 삶을 뿌리내린 주민들의 역사는 오늘날 평화의 진정한 의미를 짚어보게 합니다.
민통선 안쪽 대마리 마을 주민들에게 이곳의 척박했던 개간 역사와 삶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봅니다.
개척의 역사와 철통같은 경계가 만들어낸 민통선의 구조
1967년 정부는 전역 군인 150명을 선발해 대마리 입주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주민들은 경운기 수십 대를 분양받아 지뢰와 돌자갈이 가득한 땅을 직접 개간해야 했죠. 이 과정에서 폭풍지뢰를 밟아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희생도 잇따랐습니다.
거친 황무지를 삶의 터전으로 일궈냈던 개척 시대의 흔적이 묵묵히 그날의 기억을 전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주민이라 할지라도 보안부대에서 발급한 출입증이 있어야만 마을을 드나들 수 있었고, 대북 및 대남 방송과 등화관제가 일상이었습니다. 마을 회관에 마련된 작은 기록 박물관에는 과거의 출입증과 가시철조망 등 삼엄했던 시절의 기억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당시의 고단했던 삶을 증언합니다.
영농출입증과 대민지원이 만드는 접경지역 농촌의 현주소
세월이 흘러 민통선은 북상했지만, 대마리 주민들은 여전히 민통선 안쪽 농경지로 이동할 때 엄격한 신원 확인과 영농출입증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네비게이션에도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 비포장도로를 지나야 비로소 비옥한 철원 평야의 논밭에 도달할 수 있죠.
민통선 너머 농경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엄격한 신원 확인과 전용 출입증이 필수입니다.
엄격한 신원 확인과 출입 절차를 거쳐야만 비로소 들어설 수 있는 민통선 안쪽 세상입니다.
고령화로 일손이 부족해진 민통선 농가에 군 장병들의 대민 지원은 천군만마와도 같습니다. 주민들은 땀 흘려 일한 장병들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돼지불고기와 따뜻한 집밥 새참을 대접하며 고마움을 전합니다. 철책을 지키는 든든한 군인과 들녘을 일구는 주민들이 이웃이 되어 따뜻한 정을 나누는 모습은 분단의 현장을 온기로 채우고 있습니다.
농번기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일손을 돕는 장병들의 지원은 접경지역 농가에 큰 힘이 됩니다.
평화의 소중함과 접경지역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지켜볼 점
대마리 인근에는 6.25 전쟁 당시 열흘 동안 주인이 24번이나 바뀔 정도로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적지가 위치해 있습니다. 수십만 발의 포탄이 떨어져 산이 백마의 형상처럼 변해버렸다는 이곳은 수많은 호국영령의 희생이 서려 있는 장소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범하고 평화로운 하루는 이처럼 수많은 이들의 숭고한 희생과, 지금 이 순간에도 최전방을 지키는 장병들, 그리고 철책 아래 삶을 묵묵히 이어가는 주민들의 노고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전쟁의 상흔을 딛고 피어난 민통선 마을의 가치를 기억하고, 접경지역 공동체가 안심하고 삶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FAQ
대마리 마을은 어떻게 조성된 곳인가요?
대마리는 1967년 대북 선전촌에 대응하기 위해 제대 군인 150명을 선발하여 조성한 전략 개척 마을입니다. 주민들은 지뢰가 묻혀 있던 황무지를 직접 개간하여 지금의 터전을 만들었습니다.
민통선 내부 농경지에 들어가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한가요?
민통선 안쪽에 위치한 농경지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군 부대의 엄격한 신원 확인을 거쳐야 하며, 관할 부대에서 발급한 영농출입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합니다.
GOP 장병들이 농가에 대민 지원을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접경지역 및 민통선 안쪽 농촌은 고령화와 특수 지역 특성으로 인해 농번기 일손이 크게 부족합니다. 이에 따라 인근 부대 장병들이 모내기철 등에 대민 지원에 나서 농가 일손을 돕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