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망만으로 지은 2층 시골집은 신체 노화와 전원생활 편의성을 고려하지 않아 무용지물의 불편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 아파트 습관을 버리고 흙 묻은 몸을 편히 쉴 수 있게 만든 '절충 공간'이야말로 시골 라이프의 핵심입니다.
- 우박이 내리는 기후 특성을 파악하고 폴리카보네이트를 택한 온실처럼, 지역 환경을 몸으로 배우는 과정이 참된 집짓기입니다.

숨 막히는 도시의 사교육 전쟁과 번잡함에 지쳐, 무작정 대한민국 3대 오지 중 하나라는 경북 봉화의 깊고 푸른 품속으로 떠나온 부부가 있습니다. 드넓은 산골 콩밭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그날로 이주를 결정하고, 미대 출신 남편이 온갖 로망을 가득 담아 직접 설계해 나만의 아름다운 집을 올렸답니다. 하지만 직접 살아보니 이 예쁜 집이 그야말로 '폭망 하우스'라며 다른 이들에게는 절대로 나처럼 집을 짓지 말라고 입을 모아 당부합니다. 낭만 가득해 보이는 전원주택이 왜 7년이 넘는 후회를 남기게 되었는지,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경북 봉화의 산골 마을로 이주해 13년째 전원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부부입니다.
1. 지금 일어난 일: 로망으로 지은 2층 시골집이 '폭망 하우스'가 된 사연
아파트 숲을 떠나온 세 가족이 넉넉하고 편안하게 살고자 2층짜리 목조 주택을 뚝딱 올렸습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세련된 디자인과 웅장함을 뽐내는 더없이 근사한 집이었지요. 2층 욕조에 누워 모닝 샤워를 즐기며 수평 창 너머 산을 바라보는 낭만, 문을 열면 시원하게 펼쳐지는 널찍한 평상에서의 여유로운 한때는 부부가 그토록 그리던 이상향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매정했습니다. 집을 지은 지 10년이 흘러가면서 이 아름답던 실내 구조들은 쓰임새가 완전히 달라지거나 방치되기 일쑤였습니다. 급기야 부부는 주거 생활에 가장 기본적이어야 할 안락함을 잃고 거실과 화장실, 다락 등 모든 공간의 비실용성으로 골머리를 썩이게 되었대요. 로망이란 로망은 집안 구석구석 다 우겨넣었건만, 짓고 나니 도리어 평생 일할 시골 일꾼들에게는 몸에 안 맞는 거추장스러운 옷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2. 왜 이것이 문제인가: 아파트 평면도의 습관이 시골에서 독이 되는 이유
가장 큰 문제는 일생을 아파트라는 규격화된 도심 주거 공간에서만 살아온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외딴 시골집을 구상했다는 데 있습니다. 택지지구도 아니며 넓은 땅이 펼쳐진 봉화에서 굳이 2층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구조는 세월이 흘러 무릎에 무리가 오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기피하는 짐스러운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럴듯한 잡지 속의 풍경만 쫓아 지은 2층 집은 기대와 달리 실용적이지 못해 아쉬움만 남았습니다.
낭만의 중심이었던 2층 세라믹 욕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포항에 지진이 일어난 이후 목구조가 미세하게 비틀리면서 욕조를 쓸 때마다 1층으로 누수가 발생해 결국은 반려묘들의 전용 화장실로 자리를 내주고 말았죠. 야심 차게 기획했던 높은 천장의 평상 역시 난방 코일을 전혀 깔지 않은 탓에 겨울이면 온몸이 시리는 냉기를 뿜어내어 아무런 쓸모가 없는 덩치 큰 창고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아파트처럼 실내 온풍이 일정하게 도는 조건만을 생각하고, 바닥 단열과 난방에 정성을 더하지 않은 대가였습니다.
3. 무엇이 실패를 부추겼나: ‘고정관념’과 ‘기후 조건’의 철저한 간과
부부가 시골에 와서 직접 삽을 쥐고 땀 흘리기 전까지는 집과 대지가 유기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주방에는 상부장을 없애 우아한 북유럽식 형태를 따랐지만, 막상 창문 크기는 익숙했던 아파트의 좁고 작은 수평 창을 무비판적으로 고수하여 이 집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봉화의 수려한 자연 전경을 가두는 어리석음을 남겼습니다.
또한 농사와 정원 일로 온몸에 흙과 진흙을 묻히며 들어와야 하는 삶에 필수적인 '완충 공간(Mudroom)'이 전무했던 것도 큰 패착이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복도를 지나 욕실까지 가는 동선이 먼지와 흙으로 범벅이 되는 현실 속에서, 부엌과 욕조 등 겉멋이 든 공간들은 차츰 빛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외국의 근사한 지하 창고 사진만 보고 설계했던 옹벽 저장고는 환풍과 습기 방지 공정을 철저히 누락시켜, 여름만 되면 습기가 한가득 차서 와인 대신 허드레 살림살이를 우겨넣는 보일러실로 쓰는 황망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4. 어떻게 극복했나: 5년간의 노동 끝에 탄생한 ‘절충 공간’
첫 집의 쓰라린 실패를 몸소 겪은 남편 이주환 씨는 주저앉는 대신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5년 동안 직접 집 짓는 시골 현장의 고단한 잡부 일부터 시작하여 단단한 기술들을 묵묵히 익혔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도시형 인간'에서 식물을 사랑하고 대지를 매만지는 '정원형 인간'으로 성숙해진 뒤, 마당과 거실 사이에 중목 구조로 아름답게 자리한 '절충 공간'을 새로이 직접 지어 올렸습니다.
건축의 경험을 바탕으로 5년간 정성 들여 지은 집은 주변 자연과 어우러져 편안한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낸 ‘절충 공간’은 실내외의 경계를 허물고 자연과 맞닿은 일상을 선물합니다.
이 공간은 가히 이 집에 숨구멍을 틔워준 기적의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울 예술의전당의 기획 전시물로 쓰이다 버려질 뻔했던 참나무와 소나무 가설 뼈대를 온전히 인수하여 봉화로 실어 온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마당에서 흙 묻은 장화와 옷을 털지 않고도 편하게 슬라이딩 홀딩 도어를 지나 걸터앉아 고즈넉하게 쉴 수 있는 사다리꼴 형태의 야외 사랑방인 셈입니다. 이곳이 마련된 뒤에야 부부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자연의 계절감을 눈앞에서 든든하게 마주하며 하루 삼시 세끼를 해결하고 담소를 누리는 진정한 여유와 행복을 품게 되었습니다.
5.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 자연의 변화에 온전히 순응하며 늙어가는 집
자연 속에서 평생 갈 직장을 얻었다는 아내 신혜정 씨는 마른 흙더미에 돌을 쌓아 세월이 축적되어야만 비로소 만개하는 영국 장미와 독일 장미 가득한 들꽃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남편은 지극한 아내의 소원을 받들어 고풍스러운 빈티지 나무 온실도 새롭게 직접 설계해 선사했지요.
여기에서 주목할 포인트는 온실의 지붕 자재입니다. 지붕을 예쁜 유리로 마감하는 대신 폴리카보네이트라는 다소 투박해 보이는 플라스틱 소재를 적용했는데, 이는 13년 동안 봉화의 지독한 바람과 날씨를 온몸으로 이겨냈기에 탄생한 지혜입니다. 몇 년에 한 번씩 시골집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골프공만 한 우박' 폭탄 속에서도 유리가 깨지는 대형 참사를 결코 겪지 않기 위한 현명한 생존 공식이었던 것이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온실은 자연의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인 정원과 어우러져 평온한 일상을 선사합니다
아파트의 편리한 도회적 관성에서 완벽히 탈피해 시골이 가진 혹독함과 넉넉함을 골고루 온몸으로 배우는 일. 남들의 이목을 위해 2층 구조로 집을 크게 올리기보다 흙에 맞닿은 나를 편히 감싸 안는 공간을 구성할 줄 아는 소소하고 꾸밈없는 지혜가 귀농 귀촌을 꿈꾸는 모두에게 왜 중요한지, 이 봉화의 아늑한 '절충 공간' 가득 번지는 햇살이 나직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FAQ
아파트에서만 살던 사람이 시골 단독주택을 설계할 때 범하기 가장 쉬운 오류는 무엇인가요?
실내와 실외를 엄격히 분리해 생각하는 '아파트식 평면도 관성'에 갇히는 것입니다. 시골에서는 넓은 전용 정원 가꾸기 등으로 흙과 먼지를 자주 묻히기 때문에 현관으로 들어가기 전 옷을 갈아입거나 먼지를 터는 머드룸(완충 구역)이 필요하며, 난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로망만을 담아 만든 2층이나 대형 평상 등은 겨울철 관리와 체력적인 부분에서 금세 짐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2층 주택 설계를 추천하지 않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나요?
나이가 들 피부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일 자체가 무릎과 허리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필지가 넓은 시골에서는 굳이 공간을 위로 올릴 건축학적 메리트가 적으며, 목구조 주택의 경우 추후 지진이나 미세 비틀림으로 인한 배관 이탈로 인해 2층 화장실에서 1층으로 누수가 일어났을 때 수리가 무척 복잡하고 까다로워집니다.
유리 대신 폴리카보네이트를 온실이나 차고 지붕 자재로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봉화와 같은 깊은 산골 지역은 종종 골프공 크기만 한 거대한 기습 우박이 떨어지는 기후 조건이 존재합니다. 지붕을 전면 유리로 구성했을 때 우박으로 인한 유리 파손 및 안전사고 위험도가 극도로 높아지므로, 이를 미연에 완벽하게 방지하고 충격 강도가 유리의 수십 배에 달하는 가벼운 폴리카보네이트로 대체하여 실용성을 극대화한 비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