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_banner
  • 프랑스에서 13년 동안 활동하던 미디어 아티스트 이서제 씨는 서울의 작고 오래된 18평 한옥을 고쳐 자신만의 삶의 무대이자 정체성으로 꾸렸습니다.
  • 에어컨도 거의 모든 방충망도 없이 자연의 계절과 바람에 순응하며, 심지어 기울어 가는 천장을 대나무 세워서 직접 고치며 사는 자발적 불편 속에서 평온을 누립니다.
  • 깨진 그릇을 수선하여 새로운 쓰임을 불어넣듯 낡은 집을 무조건 허물지 않고 아껴 쓰는 손길을 통해 집이 곧 온전한 하나의 우주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끝없이 빠르고 화려한 것만을 쫓는 현대 사회에서, 프랑스에서의 13년 유학 및 예술가 활동을 과감히 접어 두고 서울의 작은 18평 한옥으로 들어간 이서제 씨의 행복은 과연 무엇을 뜻할까요? 에어컨도, 온전한 방충망도 없는 비좁은 보금자리이지만 이곳에서 그녀는 스스로 기분 좋은 불편함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낡아서 비틀어지고 물이 새는 것들을 직접 지탱하고 수리해 나가며 온전히 풍경에 몸을 정박하는 그녀의 슬기로운 삶은, 집이란 결코 단순한 부동산 재산이 아니라 영혼과 햇빛이 맞닿아 함께 거주하는 자신의 우주여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프랑스 생활을 접고 서울 18평 한옥을 선택하다

프랑스에서 13년 동안 미디어 설치 작가로 왕성하게 예술적 성과를 남기던 이서제 씨가 선택한 이주지는 현대식 고급 빌라나 아파트가 아니었습니다. 무려 8년 동안 그녀의 몸과 혼을 든든하게 안아 준 곳은 서울의 구석진 골목에 다소곳이 숨겨진 한옥입니다. 건평 10평에 작은 마당 8평, 대지면적을 다 합쳐 보아도 18평에 불과한 아주 작고 소박한 공간이지요.


프랑스의 센강 변을 배경으로 갈색 재킷을 입은 여성이 난간에 기대어 웃고 있는 모습의 과거 사진

프랑스에서의 13년 예술 활동을 마무리하고, 서울의 작은 한옥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기 시작한 이서제 작가입니다.


한자 이름이자 집의 간판이기도 한 '이서제(이집)'는 삶과 주거 공간,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작품 세계관이 서로 어긋나지 않기를 소원하는 철학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대문을 조용히 밀고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가지런한 대나무 숲은 도심의 숨 가쁜 피로감을 말끔히 씻겨 내려보내 줍니다. 비록 세월의 무게로 문틈은 어긋나 있고, 벽은 거칠지만 정겨운 사람의 때가 가득 묻어 있는 그야말로 신비한 기운을 내뿜는 요람입니다.

무더위와 겨울 외풍을 온몸으로 견디는 자발적 여유

사방에 사시사철 인공적인 쾌적함이 당연해진 요즘에 에어컨이 없는 일상이란 상상조차 어렵지요? 하지만 이서제 씨의 가옥에는 찬 공기를 만드는 에어컨과 시야를 가리는 합성수지 방충망이 없습니다. 숨 막힐 듯 뜨거운 복날 무더위가 찾아오면, 그녀는 자연을 향해 사방의 문을 환히 열어젖힌 채 맞바람을 집 안 깊숙이 들이고 우아한 삼베옷을 걸친 뒤에야 바람을 오롯하게 마십니다.


나무 격자무늬 문이 활짝 열린 한옥 방 안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문밖으로 길게 드리운 아침 햇살과 그림자가 방바닥을 비추고 있다.

계절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집안의 아침 빛은 일상을 가만히 응시하게 만드는 소중한 위안이 됩니다.


날카로운 영하의 냉기가 찾아오는 겨울철엔 또 어떤 모습일까요? 유리를 홑겹으로 대어 둔 창호 틈새로 살을 에는 세찬 외풍이 수시로 집어삼키지만, 그것까지도 지극히 계절의 정성으로 기꺼이 머리를 눕힙니다. 겨울을 고단하게 버텨 내야 보석처람 뒤따라오는 여름의 따사로운 햇살을 고마워할 줄 아는 감수성이 피어난다고 덤덤하게 말하는 미소가 깊은 영감을 줍니다.


전통 창호가 설치된 고즈넉한 한옥 실내 공간에 조명과 가구가 놓여 있고, 바닥에는 은은한 햇살이 비치고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햇살을 마주하며 소중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한옥의 따스한 일상입니다.


그릇에 고운 햇발이 기웃거리는 매일 아침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찬란해, 마당 뒤뜰에서 수확한 여유와 온기를 아침 차 한잔에 소담하게 담아 이웃들과 웃음으로 찻자리를 나누는 순간은 참으로 마음의 부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천장이 기운다면 대나무 한 대로 버텨내는 지지대

오래된 집 구석구석을 수선해 나가는 직접적인 수고 또한 그녀에게는 하나의 즐겁고 유의미한 수련입니다. 묵은 한지가 군데군데 떨어진 천장을 거둬 낼 때마다 붉은 모래와 진흙 덩이가 떨어지고, 비뚤어진 천장이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해 참으로 막막하고 큰불안이 밀려왔지만, 위기의 순간 그녀가 찾아낸 지혜는 의외로 투박하면서도 절정의 자연스러움이 가득합니다.


앞치마를 두른 여성이 실내에서 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과 왼편에 피아노, 오른편에 목재 가구가 놓인 방의 풍경

무엇이든 고쳐서 사용하는 삶의 태도는 집을 대하는 마음가짐에도 이어집니다.


마당 한구석에서 올곧게 수직으로 뻗으며 무궁히 세력을 뽐내던 싱싱한 장대 대나무 한 그루를 과감히 잘라다 침대 머리맡에 수직 기둥으로 고정시킨 것입니다. 행여 불안해 보일까 싶다가도 여태껏 천장의 휘어짐을 단단하게 다 받쳐 준 채 의연하게 한몸으로 정착된 모습은 고소한 웃음을 은은하게 자아냅니다.


단정한 옷차림을 한 중년 여성이 실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담긴 방송 화면

낡은 것을 허물기보다 고쳐 쓰며 나만의 이야기를 더해가는 삶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이것은 모가 나고 깨어진 사발을 밀가루 풀과 옻을 지성 들게 섞어 정히 기워서 새로운 미감을 탄생시키는 그녀 고유의 도예 재생 철학과 도플갱어처럼 매우 닮아 있습니다. 공장에서 기계로 사출된 흠결 없는 신상품보다 비바람에 조금 낡고 사람의 손으로 온전히 고쳐 쓴 상처 입은 살갗이 훨씬 우아하며 찬탄할 가치가 있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집이라는 경계를 허물고 함께 호흡하는 '집전'의 무대

타인 눈에 비치는 단지 투기용 보금자리로 변질된 현대 주거 세태와 달리 그녀의 작고 야무진 공간은 사람 사이에 둘러싸인 광장과도 같습니다. 문턱을 낮추고 이웃사촌을 환대로 초대해 집이 가진 향취를 공유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집전'(집을 여는 전시회)을 전개합니다.


전통 기법으로 그려진 수묵 산수화가 화면 전체에 펼쳐져 있고, 왼쪽 상단에는 '나를 닮은 집, 나를 담은 집, 집은 우주다'라는 문구가 적힌 방송 자막이 있습니다.

이서제 주변의 산세와 집의 풍경을 담아낸 이 그림은 집이 가진 가치와 삶의 온기를 이웃과 나누는 특별한 전시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서재 뒤에 자리한 산수의 비경을 직접 먹과 붓으로 묵묵히 풀어낸 '이서제 변산도' 병풍을 대청벽에 걸치고 가슴을 열며 서로 대화를 소통하고, 수성동 계곡에서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오디오 대신 삼아서 한옥에 둘러싸인 채 어울리는 일상은 신비로운 풍격을 일깨웁니다.


한옥 내부의 방에 피아노와 거문고가 놓여 있고, 벽에는 산수화가 걸려 있으며 창가에는 아기자기한 도자기와 가구가 배치된 모습

예술적 취향이 깃든 방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일상 속에서 사유와 휴식을 누리는 아늑한 작업실이 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 가락을 울리러 오는 가야금과 거문고 선율에 가볍게 몸을 기댄 채, 집이라는 협소한 물성을 털어내고 사람들이 나누는 영성적인 추억들이 층층이 스미며 비로소 만물과 따뜻하게 연대하는 놀라운 기적이 매 순간 잉태됩니다.

우리가 지켜봐야 할 나를 담는 우주의 완성

우리는 끊임없이 평당 가격의 드높은 숫자와 아늑하고 완벽한 시멘트 공간만을 그리워하며 성마르게 세월을 소진하고 있지만, "여기에 서면 바람이나 대나무, 마른 흙들이 저절로 고독의 빈틈을 메워 하나의 광활한 소우주를 만든다"고 조삭이는 이서제 씨의 나직한 철학은 무엇이 참된 만족인가를 자성하게 만듭니다.


실내에서 열린 문을 통해 마당에 심어진 대나무 숲을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의 여성

자연의 빛과 바람을 들이며 공간 안에서 하나의 작은 우주를 일궈가는 삶입니다.


오늘도 한반도 골골이 간직한 비경을 화폭과 글로 보듬기 위해 국토 지리(이서제 지리지)를 걷고 적어 내려가는 기나긴 여정은 그녀가 살고 수리해 가는 고색 어린 집과 물처럼 하나로 부드럽게 흐릅니다. 편리한 기계의 보조와 물질성에 기대어 사는 현대 주거인들을 향해 건강하고 묵직한 환기를 일으키는 깊고 시적인 '이서제'. 앞으로 그곳에서 꽃필 고요의 힘이 우리 마음의 건조한 표면까지도 은근하게 적셔 주고 위로하는 가장 큰 응원이 되기를 바라 봅니다.


FAQ

'이서제'라는 작명에는 어떤 뜻이 담겼나요?

이서제는 예술가 이서제 씨 본인의 본명과 동시에 거주하는 한옥의 고유 이름입니다. 자신의 평범한 살아감(生)과 거주 공간(舍), 작업하는 예술품(製)의 행위들이 한치 어긋남 없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 물려 나가길 염원하는 의식적인 조화가 투사되어 있습니다.

냉난방 장치가 없고 틈새가 벌어진 한옥 정비는 어떻게 진행했나요?

자신의 손을 믿고 매일같이 사포와 흙을 가마에 달궈 발라 가며 일꾼의 도움 없이 스스로 단열을 시도하고 천장 벽지를 발랐습니다. 천장이 오랜 모래 유실로 한쪽이 사정없이 쏠리기 시작했을 땐 마당의 대나무 줄기를 베어 기둥에 끼워 넣어 침실의 급격한 붕괴 위험을 상쇄하고 지탱하는 천재적이고 우연한 조화를 성취했습니다.

깨진 그릇을 메꾸어 고쳐 쓰는 행위와 집의 상관관계는 무엇인가요?

전통 도요 방식처럼 옻과 천연 쌀풀을 결합해 부서진 파편에 생명을 살리는 접합 기법은 오래된 가옥 기둥에 쐐기를 박고 단장해 쓰는 우리의 지혜정신과 완전하게 접점을 형성합니다. 쓰다 버리는 물질의 편리성 대신 결핍을 복구해 나가는 여백 위에서 가장 인간미 넘치는 독창적인 개성과 '뿌리미감'의 성찰을 끌어올릴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원본 영상 보기

# 건축탐구집
# 미디어아티스트
# 뿌리미감
# 수선도자기
# 이서제
# 전통공예
# 친환경라이프
# 한옥리모델링
# 한옥살이
# 한옥인테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