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대 출신이라는 차별을 딛고 1,008병상 규모의 창원 최대 종합병원을 일궈낸 하충식 이사장의 집념 어린 성공기입니다.
- 구멍 난 셔츠와 양말 속 자투리 비누를 쓰며 자신에게는 철저히 엄격했지만, 지역 사회를 위해 무려 411억 원을 기부했습니다.
- 수도권과의 의료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암병원 건립을 추진하는 그의 행보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이정표를 제시합니다.

창원의 푸른 하늘 아래,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대형 종합병원을 일궈낸 의사가 있습니다. 바로 병상 4개의 작은 산부인과에서 시작해 1,008병상의 의료 기적을 만든 하충식 이사장입니다. 최근 그는 암병원 건립을 추진하며 7만 평 규모의 의료 허브를 꿈꾸고 있죠. 하지만 우리가 진짜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화려한 성공 뒤에 숨겨진, 구멍 난 셔츠를 꿰매 입으며 평생 411억 원을 이웃과 나눈 눈물겨운 자린고비 철학입니다. 과연 이 따뜻한 기적을 만든 비결은 무엇일까요?
1,008병상 대형 종합병원의 탄생, 그리고 7만 평 의료 허브를 향한 도전
최근 경남 창원에서는 의료계의 판도를 뒤흔드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창원의 대형 종합병원 설립자인 하충식 이사장이 2025년에 5,000평의 부지를 추가 매입하여 대규모 암병원 건립을 추진한다는 소식입니다. 이 암병원이 완공되면 병원의 전체 규모는 무려 7만 평에 달하게 되며, 규모 기준으로 국내 TOP 5 병원 진입을 눈앞에 두게 됩니다. 병상 4개의 작은 산부인과로 시작해 1,008병상을 갖춘 초대형 종합병원을 일궈낸 그의 집념이 마침내 거대한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30년 전 작은 산부인과에서 시작해 1,000병상이 넘는 대형 종합병원을 일궈낸 하충식 이사장의 감회입니다.
하지만 대중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이 화려한 타이틀 뒤에 가려진 그의 반전 일상이였습니다. 수천억 원대 자산가임이 무색할 정도로, 방송을 통해 공개된 그의 삶은 그야말로 '자린고비' 그 자체였습니다. 이 거대하고 따뜻한 기적의 이면에는 대체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요?
극단적 절약과 411억 원 기부, 왜 이토록 뜨거운 울림을 줄까요?
하충식 이사장의 일상은 대형 종합병원 설립자라는 직함이 믿기지 않을 만큼 극단적인 절약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옷깃이 닳아 해진 재킷과 구멍 난 부분을 몇 번이나 기운 셔츠를 아무렇지 않게 입고, 자녀들이 초등학생 때 쓰던 빛바랜 스탠드를 여전히 서재에 두고 사용합니다. 심지어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틀고, 작아진 비누 조각들을 헌 양말 속에 모아 알뜰하게 사용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수십 년 된 낡은 옷을 기워 입으며 실천하는 그의 검소한 일상은 나눔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 지독한 절약은 결코 인색함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에게는 눈물겨울 정도로 엄격하지만, 남을 돕는 일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엽니다. 개원 이래 32년 동안 지역 사회에 기부한 금액은 무려 411억 원에 달합니다. "병원을 키워준 것은 시민들이기에, 받은 만큼 돌려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그의 철학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마음의 빈곤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부(富)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묵직하게 되묻고 있습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유리 천장, 그리고 부모님께 배운 나눔의 철학
그렇다면 그를 이토록 치열하게 움직이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 시작점에는 청년 시절에 마주했던 차별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의대에 진학한 그는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과 편견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동료들이 모여 지방 대학을 비하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의 서러움은 그의 가슴속에 깊은 불꽃을 피웠습니다.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지역 최고의 병원을 만들어 진정한 의술을 베풀겠다"는 결심을 세운 것이죠.
4개 병상으로 시작해 1,008병상의 대형 병원을 일궈낸 하충식 이사장의 치열했던 초기 개원 시절 이야기입니다.
1994년, 그는 백 병상 규모 병원의 한 귀퉁이에 병상 4개를 얻어 샵인샵 형태로 산부인과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5개월 만에 병원 전체를 인수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후 7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요일까지 진료하는 구슬땀을 흘린 끝에, 마침내 2001년 자체 병원을 건립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절약 정신과 지방 의료를 바로 세우겠다는 뜨거운 집념이 결합하여 오늘날의 거대한 병원을 탄생시킨 셈입니다.
서울로 가지 않아도 되는 나라, 지역 의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다
하충식 이사장의 헌신은 창원을 비롯한 경남 지역 주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과거에는 큰 병에 걸리면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아 먼 길을 떠나야 했던 지역민들이, 이제는 고향에서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는 세계 7위의 췌장 명의로 꼽히는 김명환 교수를 창원으로 영입하는 데 성공하며 지역 의료의 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부부가 함께 병원을 운영하며 지역 의료 현장을 지키는 든든한 동반자로서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의 곁에는 든든한 동반자이자 소아과 의사인 아내 최경 이사장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이를 받으면 아내가 소아과에서 그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내는, 그야말로 완벽한 의료 파트너십을 보여줍니다. 부부는 일체의 부동산 투기를 멀리하고 오직 병원과 지역 사회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들의 진정성 있는 행보는 무너져가는 지방 의료 공백을 메우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 되고 있습니다.
암병원 건립과 청년 의사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화두
우리가 앞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하충식 이사장이 그려갈 지역 의료의 미래 지도입니다. 2025년부터 추진 중인 대규모 암병원이 완공되면, 경남 지역의 의료 자립도가 한층 더 높아질 것입니다. 또한 향후 지역 의과대학이 신설될 경우, 이 병원은 청년 의사들이 마음껏 실습하고 성장할 수 있는 든든한 배움의 터전이 되어줄 것입니다.
부동산 투기 대신 오직 병원 경영과 의술에만 집중해 온 그의 소박한 일상이 엿보입니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하지만 이웃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어주는 이 자린고비 의사의 삶. 그의 닳아 빠진 옷깃과 낡은 책상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노동의 숭고함'과 '상생의 가치'를 소리 없이 웅변하고 있습니다. 빠르고 편리한 것만을 쫓는 오늘날, 조금은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이웃과 함께 걷는 그의 따뜻한 발걸음에 우리도 함께 마음을 보태보는 것은 어떨까요?
FAQ
하충식 이사장이 지방에 대형병원을 짓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학 졸업 후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차별과 유리천장을 겪었습니다. 이에 자극을 받아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지역 최고의 병원을 만들어 진정한 의술을 베풀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처절한 노력을 다해 병원을 키웠습니다.
4병상짜리 작은 공간에서 어떻게 대형 종합병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나요?
1994년 기존 병원 내부의 공간을 빌려 '샵인샵' 형태로 산부인과를 개원한 후, 환자가 2~3배 늘어나며 5개월 만에 병원 전체를 인수했습니다. 이후 7년 동안 휴일도 없이 일요일까지 진료하며 철저한 계획하에 땅을 매입하고 건물을 지어 병상 규모를 계속해서 확장해 나갔습니다.
자신에게는 극도로 정직하고 엄격한 자린고비 생활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릴 적 부모님과 할머니로부터 근검절약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낡고 해진 물건을 아껴 쓰며 엄격하게 절약하지만, 병원의 의료 장비나 건물을 지을 때는 일류 건설사와 최고급 장비를 도입하고 사회 환원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이 그의 확고한 인생 철학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