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년 차 현역 디자이너 최복호는 효율적인 백화점 시스템 대신 고객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2,500평 규모의 산속 양장점을 선택했습니다.
- 대형 화재로 모든 것을 잃었던 절망의 순간, 동료들이 보내준 자투리 원단과 주변의 따뜻한 손길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이제는 자투리 천으로 인형을 만들어 기부하고 AI 기술을 접목한 예술에 도전하며, 자연의 순리 속에서 진정한 나눔과 인생의 멋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봄바람을 따라 초록빛이 차오르는 산길을 걷다 보면,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라 여겨지는 깊은 골짜기 끝에 거짓말처럼 세련된 건물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형형색색의 마네킹과 갤러리를 연상케 하는 조각상들이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죠. 이곳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1세대 패션 디자이너 최복호 씨가 가꾼 2,500평 규모의 산속 양장점입니다. 5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현역으로 활동하며 무려 누적 매출 5,000억 원을 기록한 패션계의 거장이 왜 돌연 도심의 빌딩을 팔고 이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 터를 잡은 것일까요?
1. 1세대 패션 거장의 파격적인 산골 행보
1973년에 데뷔해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 패션의 역사를 써 내려온 디자이너 최복호 씨는 18년 전 주변의 만류를 뒤로하고 대구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가 세운 2,500평 규모의 산속 양장점은 단순히 옷을 파는 상점이 아니라, 자연과 예술, 그리고 인간적인 교감이 어우러진 독창적인 문화 공간이랍니다. 도심의 화려한 백화점 매장 대신 선택한 이 외딴곳에 지금도 매달 1,000명에서 1,500명에 달하는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월 매출은 최대 6,000만 원에 이릅니다.
반세기 넘게 패션계를 지켜온 거장이 도심을 떠나 산속에 자신만의 예술 공간을 꾸린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2. 효율성의 시대에 던지는 '느림과 대화'의 가치
최복호 디자이너가 도심의 빌딩을 정리하고 산골로 향한 이유는 현대 패션 산업이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가치를 되찾기 위함이었습니다. 규격화되고 빠르게 돌아가는 백화점 시스템 안에서는 옷을 매개로 고객과 나누던 따뜻한 대화와 교감이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죠. 그는 고객의 체형과 분위기에 딱 맞는 맞춤 의상을 만들며, 옷 한 벌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나누던 과거 양장점의 정겨운 문화를 그리워했습니다. 조금은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자연의 품속에서 사람의 온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패션의 본질이라는 그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3.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피어난 '자투리 천'의 기적
그가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화려한 데뷔 이후 승승장구하던 중, 고향 대구로 내려와 과감한 실루엣의 '빽바지'로 젊은 층을 사로잡으며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백화점에 모피 매장까지 열며 기세를 올리던 순간, 입점해 있던 백화점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서 모든 재산을 잃고 양장점까지 처분해야 하는 극심한 절망을 겪었습니다.
2013년 뉴욕 맨 컬렉션에 한국 대표로 선정되어 작품을 발표했던 당시의 뜻깊은 순간입니다.
그때 무일푼이 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정이었습니다. 동료 디자이너들은 창고에 쌓여 있던 자투리 원단을 아낌없이 보내왔고, 시장 상인들도 선뜻 재료를 내어주며 그를 응원했습니다. 이 눈물겨운 도움으로 절치부심하여 만든 어깨 패드 재킷(가짜 가다마이)이 1980년대에 그야말로 초대박을 터뜨리며, 그는 월 매출 1억 원을 올리는 브랜드의 대표로 당당히 재기했습니다. 이후 런던, 밴쿠버, 뉴욕 등 세계 무대로 뻗어 나갔고, 중동의 부호들을 사로잡으며 한 벌에 200만 원에서 300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 의류를 수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중동의 부호들에게도 사랑받으며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최복호 디자이너의 패션 세계입니다.
4. 과거의 은혜를 갚는 나눔과 멈추지 않는 예술적 도전
주변의 도움으로 기적처럼 살아난 최복호 디자이너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을 살려준 고마운 대구의 원단 시장을 잊지 않고 지금도 오직 대구 원단만을 고집하며 지역 사회와의 의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을 구원했던 '자투리 원단'을 활용해 정성껏 인형을 만들어 판매하고, 그 수익금 전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나눔을 2008년부터 묵묵히 이어오고 있답니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일흔아홉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무려 5개의 AI 프로그램을 구독하며 직접 디지털 아트를 창작하고, 이를 양장점 곳곳의 모니터에 전시하며 젊은 세대 못지않은 역동적인 예술 세계를 펼치고 있습니다. 10년 전 길을 잃고 헤매던 유기견 '6월이'를 가족으로 맞이해 따뜻한 옷을 입혀 기르는 모습에서도 생명을 향한 그의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5.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진정한 삶의 멋
최복호 디자이너의 삶은 우리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빌딩을 소유하고 더 많은 매출을 올리는 것보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이웃과 정을 나누는 삶이 얼마나 더 가치 있는지를 그의 2,500평 산속 양장점이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옷은 결국 자기 몸에 가장 잘 맞는 옷이듯, 그에게는 디자이너라는 직업과 산골에서의 여유로운 삶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 아닐까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정성과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는 그의 아름다운 뒷모습은, 오늘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에 따뜻한 위로와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습니다.
FAQ
최복호 디자이너가 산속에 양장점을 차린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빠르게 돌아가는 백화점 시스템 속에서 사라진 '고객과의 진정성 있는 대화'를 되찾기 위해서입니다. 자연 속에서 맞춤 옷을 만들며 손님 한 사람 한 사람과 깊이 교감하는 아날로그적인 가치를 실천하고자 18년 전 산골로 이주했습니다.
과거 대형 화재로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어떻게 재기할 수 있었나요?
절망의 순간에 동료 디자이너들과 시장 상인들이 선뜻 보내준 '자투리 원단'과 재료 덕분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원단들로 만든 어깨 패드 재킷이 1980년대에 큰 성공을 거두며 월 매출 1억 원의 브랜드로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현재 산속 양장점에서는 어떤 사회공헌 활동과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나요?
자신을 살려준 자투리 원단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2008년부터 자투리 천으로 인형을 만들어 판매 수익금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흔아홉의 나이에도 5개의 AI 프로그램을 구독해 디지털 아트를 직접 제작하고 전시하는 등 끊임없는 예술적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