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적 매출 5,000억 원의 신화를 쓴 1세대 디자이너 최복호는 고객과의 진정한 소통을 위해 18년 전 2,500평 산속 양장점을 열었습니다.
- 일주일 만에 임금 800원을 받고 쫓겨났던 청년 시절의 치욕을 마중물 삼아, 밤낮없는 노력 끝에 독보적인 맞춤옷 거장으로 우뚝 섰습니다.
- 백화점 화재로 전 재산을 잃었을 때 자신을 구원해 준 '자투리 천'으로 이제는 인형을 만들어 기부하며 따뜻한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맑은 새소리와 싱그러운 풀 내음이 가득한 경북의 한 깊은 산속. 이곳에 무려 2,500평 규모의 거대한 양장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이 험한 첩첩산중까지 옷을 사러 찾아오는 걸까요? 백화점의 차가운 규격화 속에서 사라진 '고객과의 따뜻한 대화와 맞춤옷의 설렘'을 되찾기 위해, 53년 경력의 패션 거장 최복호 디자이너가 일군 이 특별한 공간은 단순한 옷가게가 아닌 마음을 치유하는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첩첩산중 2,500평 양장점의 탄생과 월 매출 6천만 원의 기적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산속에 둥지를 튼 지 올해로 18년째를 맞이했습니다. 도심에서도 멀리 떨어진 이 외딴곳에 한 달 평균 1,000명에서 1,500명에 이르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월 매출 역시 최대 6,000만 원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기적 같은 진풍경을 보여줍니다.
백화점의 규격화된 시스템을 벗어나 고객과 진심 어린 소통을 나누고자 산속에 터를 잡은 지 어느덧 18년이 흘렀습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단순히 옷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푸른 자연 속에서 기분을 전환하고 자신만의 개성을 찾습니다. 기성복 매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와 정성이 깃든 맞춤 의상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백화점이라는 거대 시스템을 벗어나 자연과 소통을 택한 이유
누적 매출 5,000억 원을 기록하며 세계 무대까지 누볐던 거장이 왜 굳이 산속으로 들어왔을까요? 그 비결은 바로 '사라진 소통의 복원'에 있습니다.
백화점의 규격화된 시스템을 벗어나 고객과 직접 소통하며 맞춤옷의 가치를 되찾고 있습니다.
과거 백화점 입점 시스템 속에서 디자이너는 오직 수치와 디자인에만 갇혀 살아야 했습니다. 옛날 양장점 시절, 손님의 체형과 취향을 세심히 살피며 묻고 답하던 그 따뜻한 교감이 그리웠던 것이죠.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선물하겠다는 그의 철학이 이 산골 양장점을 탄생시켰습니다.
시련을 마중물로 삼은 53년 패션 거장의 집념과 역사
패션계의 거장인 그에게도 눈물나게 고단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세련된 멋쟁이였던 어머니의 옷자락을 보며 자란 소년은 앙드레김을 보며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습니다. 대학을 중퇴하고 군대에 가서도 매일 새벽 2시, 남들이 잠든 어두운 불빛 아래서 하루에 10장씩 그림을 그리며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젊은 시절 겪었던 뼈아픈 좌절과 시련은 훗날 그가 패션 거장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데뷔 이후 찾아온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실무 경험 부족으로 첫 직장에서 일주일 만에 단돈 800원을 받고 쫓겨나는 치욕을 겪은 것이죠. 그러나 그는 이 800원이 담긴 봉투를 평생의 마중물로 삼았습니다. 무급 실습생을 자처하며 기초부터 다시 배웠고, 이대 앞 양장점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벽마다 200여 개 가게의 쇼윈도를 돌며 디자인을 외우고 스케치했습니다.
'빽바지'에서 '가짜 가다마이'까지, 위기를 기회로 바꾼 한국 패션의 역사
서울에서 성공을 가두던 중 어머니의 병환으로 내려간 대구에서, 그는 또 한 번 판을 뒤흔들었습니다. 모두가 고상한 스타일을 고집할 때 과감한 실루엣의 '빽바지'로 젊은 층을 사로잡았고, 이후 어깨 패드 재킷인 일명 '가짜 가다마이'를 히트시키며 1980년대 월 매출 1억 원을 올리는 브랜드로 우뚝 섰습니다.
치열했던 초기 디자이너 시절, 매일 새벽 이대 앞 상가들을 돌며 트렌드를 분석하고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과거를 회상합니다.
백화점 화재로 모든 재산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을 뻔한 절체절명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 그를 살린 것은 동료 디자이너들이 선뜻 건넨 자투리 원단과 시장 상인들의 따뜻한 손길이었습니다. 이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그는 지금도 오직 대구 원단만을 고집하며 지역 경제와의 상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자투리 천으로 빚어내는 따뜻한 나눔, 패션 그 이상의 가치
이제 그의 시선은 더 높은 곳이 아닌, 더 낮은 곳으로 향합니다. 자신이 가장 힘들 때 도움을 받았던 '자투리 천'으로 인형을 만들어 판매 수익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한때 자신을 살렸던 자투리 천이 이제는 또 다른 누군가의 희망이 되어 흐르고 있는 것이죠.
가장 좋은 옷은 자기 몸에 가장 잘 맞는 옷이라고 합니다. 53년 동안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정성을 다해온 최복호 디자이너에게 '패션'이란 그야말로 그의 인생에 가장 잘 맞는 옷이 아니었을까요? 오늘 밤, 당신의 삶을 가장 따뜻하게 감싸 안아줄 '진짜 내 옷'은 어디에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FAQ
최복호 디자이너가 산속에 2,500평 규모의 양장점을 차린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형 백화점 유통 시스템 안에서 일하며 고객과의 직접적인 소통과 교감이 사라진 것에 갈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과거 맞춤 양장점 시절처럼 손님 한 사람 한 사람과 깊이 대화하며 그들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만들어주고 싶어 18년 전 산속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과거 첫 양장점 직장에서 일주일 만에 800원을 받고 해고당한 사연은 사실인가요?
네, 사실입니다. 당시 뛰어난 디자인 감각으로 주목받았으나 실제 옷을 재단하고 만드는 실무 능력이 부족해 일주일 만에 800원을 받고 해고당했습니다. 최복호 디자이너는 이 충격을 계기로 무급 실습생부터 다시 시작해 기초를 다졌고, 그 800원 봉투를 평생의 자극제로 삼았다고 합니다.
최복호 디자이너가 자투리 천으로 인형을 만들어 기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과거 큰 화재로 전 재산을 잃고 절망에 빠졌을 때, 동료 디자이너들과 시장 상인들이 선뜻 보내준 자투리 원단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때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세상에 돌려주기 위해 2008년부터 자투리 원단으로 인형을 만들어 수익금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