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 습관이 극과 극인 부부가 서초구 도심에 사각형 본채와 원통형 별채를 나란히 짓고 '각채살이'를 시작했습니다.
-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로 생사를 오갔던 남편을 위해, 의사 아내가 자연과 가까운 터를 찾아 각자의 성향에 맞춘 독립된 공간을 선물했습니다.
- 서로의 다름을 온전히 인정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이들의 삶은, 불편한 동거보다 편안한 분리가 부부 금슬의 비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복잡한 사당역 사거리에서 불과 200m를 올라갔을 뿐인데, 숲속에 온 듯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곳 강남 한복판에 아주 독특한 형태를 한 집이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나란히 마주한 사각형 본채와 원통형 별채, 한 마당에 무려 두 채의 집이 지어져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집의 주인은 한 쌍의 부부입니다. 평생을 살아도 너무 안 맞는 성향 탓에, 집을 지으며 아예 '각채살이'를 선언했다고 하는데요. 도심 한가운데서 매일매일 데이트하듯 살아가는 부부의 숨통 트이는 일상, 대체 어떤 모습일까요?
도심 한복판에서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며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부부의 독특한 집입니다.
도심 한복판에 등장한 두 채의 집, 대체 무슨 일일까요?
아파트에 살 적부터 이들 부부는 생활 습관이 극과 극이었습니다. 아내 김은주 씨는 한겨울에도 창문을 열고 자야 직성이 풀리는 반면, 남편 성근모 씨는 추위를 많이 타서 두꺼운 이불을 덮어야만 했죠. 매일 밤 이어지는 이불 쟁탈전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아내는 문을 활짝 열어두고 넓고 트인 공간을 즐기는 성향이지만, 남편은 좁은 방에 들어가 문을 꼭 닫아야만 마음의 안정을 얻는 성격이었습니다.
결국 부부는 억지로 서로에게 맞추며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과감한 결단을 내립니다. 집을 지을 때 설계 단계부터 아예 각자의 성향을 100% 반영한 두 채의 집을 짓기로 한 것이죠. 그렇게 아내의 공간은 3면이 탁 트인 통유리 사각형 본채로, 남편의 공간은 외부의 시선을 차단한 아늑한 원통형 별채로 탄생했습니다. 그야말로 서로의 다름을 건축으로 완벽하게 풀어낸 진풍경입니다.
3면이 유리로 설계된 거실은 도심 속에서도 탁 트인 개방감과 따스한 햇살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공간입니다.
생사를 오간 위기, 아내가 남편에게 선사한 완벽한 자유
이토록 파격적인 집 짓기를 강행한 데에는 가슴 철렁한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약 10여 년 전, 개인 사업을 하던 남편 근모 씨는 동종 업계와 법적 분쟁을 겪으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어느 날 공복 혈당이 무려 450까지 치솟으며 길을 걷다 쓰러질 뻔한 생명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병리과 의사인 아내 은주 씨는 남편의 건강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결심합니다. 남편이 흙을 밟고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편히 숨 쉴 수 있는 집을 지어야겠다고 말이죠. 직장 때문에 서울을 떠날 수는 없었기에, 시아버지가 1970년대에 사두었던 우면산 자락의 땅을 활용하기로 합니다. 비록 30년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어 상수도와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는 악조건의 땅이었지만, 남편을 살리겠다는 따뜻한 정성과 결단이 지금의 기적 같은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서로의 생활 방식을 존중하며 각자의 공간에서 누리는 자유로운 일상입니다.
따로 또 같이, 매일매일 데이트하는 기분
각채살이를 한다고 해서 부부 사이가 멀어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애틋함은 배가 되었습니다. 아내 은주 씨는 지하 공용 주방과 1층 거실, 2층 침실, 3층 홈 짐을 오가며 사방이 막힌 병원 진료실에서 쌓인 답답함을 통창 너머의 풍경으로 치유합니다. 반면 남편 근모 씨는 자신의 키에 딱 맞춘 높이 1m의 싱크대에서 좋아하는 피자를 굽고, 3평 남짓한 다락방에 누워 밤하늘의 별과 달을 보며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켜갑니다.
두 채의 집 사이를 이어주는 야외 테라스는 부부의 다정한 오작교입니다. 별채가 만들어주는 시원한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식사 때가 되면 영상 통화로 서로를 부릅니다. 아내가 보고 싶을 때면 남편이 본채로 건너가고, 때로는 각자의 공간에서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며 미소 짓습니다.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너희 집으로 가!" 한 마디면 각자의 동굴에서 평화를 되찾을 수 있으니, 매일매일이 새롭게 데이트하는 기분이랍니다.
서로의 성향을 존중하며 각자의 공간에서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부부의 일상입니다.
당신에게도 숨 쉴 틈을 내어줄 공간이 있나요?
이 부부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선 시대의 안채와 사랑채가 떠오릅니다. 한 울타리 안에 살면서도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던 우리 전통의 지혜가 현대적으로 멋지게 부활한 셈이죠.
옹기종기 살갗을 맞대고 사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억지로 맞추며 겪는 '불편한 동상이몽'보다 서로의 다름을 흔쾌히 인정하는 '편안한 이상동몽'이 부부 금슬의 진짜 비결일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물리적인 거리를 허락하고 심리적인 숨통을 틔워준 아내의 배려. 각박하고 복잡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서로의 다름을 껴안아 줄 수 있는 마음속의 작은 별채 하나쯤 지어보는 건 어떨까요?
FAQ
부부가 왜 한 마당에서 두 채의 집을 짓고 따로 사나요?
온도에 대한 민감도와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 등 생활 습관이 극과 극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서로에게 맞추며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각자의 성향에 완벽히 맞춘 공간을 분리해 편안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각채살이'를 선택했습니다.
도심 한복판인데 상수도와 도시가스가 안 들어오나요?
네, 서초구 우면산 자락에 위치한 이 땅은 근 30년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여 있던 곳입니다. 규제는 풀렸지만 여전히 기반 시설이 부족해, 부득이하게 지하 120m 암반수를 끌어다 식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각채살이를 하면 부부 사이가 멀어지지 않나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각자의 사생활을 존중하면서도 마당과 테라스를 통해 수시로 소통하고, 식사 때마다 영상 통화로 만나며 매일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더욱 애틋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