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_banner
  • 파키스탄 발루치스탄 해안에는 수명을 다한 1만 5천 톤급 대형 유조선을 맨몸으로 해체하는 극빈층 노동자들의 거대한 작업장이 있습니다.
  • 이들은 유독가스와 폭발 위험, 무거운 철판이 쏟아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안전장비 하나 없이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고철을 분리해 냅니다.
  • 위험천만한 노동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아버지들의 간절한 헌신과 가족애가 이들을 매일 작업장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수명을 다한 배들이 마지막 닻을 내리는 곳은 화려한 항구가 아닌, 가난한 나라의 황량한 해안입니다.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2시간 반을 달리면 닿게 되는 발루치스탄. 이곳에는 국제 규격 축구장 크기와 맞먹는 1만 5천 톤급 대형 유조선을 맨몸으로 해체하는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최소한의 안전장비조차 없이, 스스로 목숨을 지켜내며 거대한 철판을 뜯어내는 세계 최악의 작업장. 대체 이토록 위험한 곳에서 사람들은 왜 매일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걸까요? 오늘, 생태계의 끝자락에서 거대한 철골과 씨름하는 파키스탄 선박 해체공들의 현실을 들여다봅니다.

축구장 크기의 거대한 철거 현장, 대체 어떤 모습일까요?

여유로운 바다의 풍경과는 거리가 멉니다. 1970년대부터 선박 해체 산업에 뛰어든 파키스탄의 이 해안은 그야말로 거대한 '배들의 무덤'입니다. 낡은 연장과 도르래, 그리고 몇 가닥의 쇠줄이 이들이 가진 유일한 도구랍니다.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 남성이 인터뷰하는 모습으로, 배경에는 철거 현장의 고철들이 쌓여 있다.

생계를 위해 매일 아침 일찍 거대한 폐선 해체 현장으로 향하는 노동자들의 고단한 일상입니다.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것은 윈치(견인 장치)로 배를 육지 쪽으로 끌어당길 때뿐, 거대한 철골을 분리하는 강재 절단 작업은 오롯이 인간의 몫입니다. 1톤에 달하는 철판과 5톤이 넘는 송유관을 수작업으로 떼어내는 과정은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쇠줄이 팽팽하게 당겨질 때마다 끊어질 위험이 도사리고, 만에 하나 줄이 무거운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끊어지면 주변의 모든 것을 두 동강 내는 끔찍한 사고로 이어지죠.

생명을 담보로 철을 얻어야만 하는 이유

그렇다면 이토록 위험천만한 노동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파키스탄은 국가 전체적으로 철이 매우 부족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최근 지진 피해까지 겹치면서 철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폐선에서 나오는 고철은 하나도 버릴 것 없는 귀중한 자원이자, 파키스탄 산업을 굴러가게 하는 핵심 동력인 셈입니다.


파키스탄 선박 해체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송유관을 절단하며 작업하고 있다.

거대한 유조선의 송유관을 분리하기 위해 작업자들이 낡은 장비에 의지한 채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거대한 산업을 떠받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자국의 극빈층 노동자들입니다. 농사만으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전국 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이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이 하루 종일 폐유를 뒤집어쓰고 쇳조각을 분류해 손에 쥐는 돈은 하루 500루피(한화 약 6,000원)에서, 숙련공의 경우에도 1,200루피 남짓. 지독한 가난이라는 생존의 무게가 이들을 위험 속으로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유독가스와 불꽃이 튀는 칠흑 같은 지옥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열악한 작업 환경입니다. 선박 내부로 들어가 철판을 자르는 강재 절단 작업은 절단공들조차 '지옥'이라 부를 만큼 고역입니다. 폐유가 흥건한 배 안에서 고화력 가스 절단기를 켜는 순간,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대한 화약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작업복을 입고 모자를 쓴 두 남성이 야외 작업장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가족의 생계를 위해 위험한 작업 환경 속에서도 하루하루 묵묵히 일터로 향하는 노동자들의 고단한 일상입니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 작업자들은 오직 자신이 피워낸 불꽃에 의지해 배를 가릅니다. 섭씨 4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 속에서 원유와 화학물질이 타들어 가며 뿜어내는 유독가스를 그대로 들이마셔야 하죠. 하지만 이들에게 지급된 보호 장비라고는 낡은 야구 모자와 선글라스가 전부입니다. 답답하다는 이유로 고글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열악한 현실 탓에, 눈에 불꽃이 튀어 실명하거나 무너지는 철판에 팔다리를 잃는 참혹한 사고가 빈번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고철 더미가 쌓인 작업장에서 한 남성이 앉아 도구를 사용해 부품을 분리하고 있고, 뒤편에는 다른 남성이 짐을 지고 지나가고 있다.

33년 경력의 베테랑 작업자가 고철 더미 속에서 재사용 가능한 부품을 하나하나 골라내고 있습니다.


고단한 하루를 버티게 하는 단 하나의 이유

한 달 평균 10여 명이 목숨을 잃는 곳. 그래서 해체공들은 매일 아침 해가 뜰 때마다 다 함께 모여 무사히 하루를 넘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33년 경력의 베테랑 맘마타니 씨 역시 과거 작업 중 한쪽 눈을 잃었지만, 새카맣게 기름때 낀 손으로 오늘도 묵묵히 고철을 분류해 냅니다.


흰 셔츠를 입은 중년 남성이 좁은 골목길을 걸어오고 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일터로 향하는 가장의 뒷모습에는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토록 고단하고 비참한 노동을 견뎌내는 비결은 단 하나, 바로 '가족'입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부디 내 자식들은 힘든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헌신이 이 극한의 환경을 버티게 합니다. 한 달에 단 이틀, 먼 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의 얼굴을 볼 때면 그간의 고단함이 눈 녹듯 사라진다는 이들의 미소는 참으로 먹먹한 감동을 줍니다.

수십 년을 이어온 이들의 구슬땀, 당신에게도 삶의 의미로 다가가나요?

수명을 다한 유조선 한 척이 완전히 해체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90일. 그 긴 시간 동안 노동자들의 피와 땀은 고철과 함께 섞여 누군가의 유용한 자원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파키스탄 선박 해체공들.

결코 쉽고 빠르게 결과를 얻으려 하지 않고, 거대한 철골을 오직 사람의 손과 수고로움으로 해체해 내는 이들의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가난의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 묵묵히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의 치열한 하루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삶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 있지는 않을까요?


FAQ

파키스탄에서 선박 해체 산업이 발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파키스탄은 수요에 비해 철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가입니다. 특히 최근 지진 등의 재난 여파로 철강 수요가 더욱 급증하면서, 수명을 다한 폐선에서 고철을 분리해 재활용하는 선박 해체 산업이 국가 산업의 중요한 동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선박 해체공들은 주로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나요?

1톤이 넘는 철판과 5톤 규모의 송유관에 깔릴 위험은 물론, 강재 절단 과정에서 발생하는 맹독성 가스와 폭발 사고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충분한 보호 장비 없이 맨몸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눈에 불꽃이 튀어 실명하거나 신체를 잃는 중대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이렇게 위험한 일을 노동자들이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극심한 빈곤과 지역의 일자리 부족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일해 버는 돈은 한화로 약 6천 원에서 2만 원 남짓에 불과하지만, 자녀들을 교육해 자신과 같은 고단한 노동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부모의 간절한 책임감과 가족애가 이들을 매일 작업장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원본 영상 보기

# EBS다큐
# 극한직업
# 노동환경
# 발루치스탄
# 빈곤
# 사회문제
# 선박해체
# 유조선
# 파키스탄
# 해체공

시사 카테고리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