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를 고정된 생물학적 본질이 아닌, 역사적 대본을 반복해 수행하는 행위의 결과물로 해석합니다.
- 이러한 구성주의 시각은 이분법적 성별 관념은 물론, 페미니즘 내부에서 '여성' 범주를 고착화해 온 방식까지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게 만듭니다.
- 다만 역사적으로 형성된 관념을 순전한 우연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오랜 인류 역사 속에서 축적된 정당성과 필요성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온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구분은 과연 생물학적 진실일까요, 아니면 사회가 오랜 세월 다듬어온 정교한 대본일까요? 현대 철학에서 주목받는 사상가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논문 「수행적 행위들과 젠더 구성(Performative Acts and Gender Constitution)」을 통해 젠더가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역사적 대본을 반복 수행하는 연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합니다.
버틀러의 해체적 시각은 사회적 강요와 억압의 메커니즘을 직시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저는 한편으로 역사적으로 형성된 모든 관념을 순전한 우연이자 철폐해야 할 오답으로만 몰아세우는 데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버틀러의 핵심 주장을 짚어보고, 왜 이러한 철학적 논의에 건전한 균형 감각이 필요한지 살펴보겠습니다.
젠더는 본질이 아니라 역사적 대본을 반복하는 연기이다
버틀러는 그동안 페미니즘 이론가들이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을 구분해 온 역사에서 논의를 출발합니다. 현상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가 '몸은 역사적 관념'이라고 보았고, 시몬 드 보부아르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선언했듯, 우리 몸의 행위와 의미는 단순한 자연적 사실이 아닌 역사적 상황에 따라 구성됩니다.
버틀러에 따르면 인간은 단순히 어떠한 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특정한 방식으로 '행하는(does one's body)' 존재입니다. 젠더란 개인이 사회적으로 이미 수용되어 온 기존 행동 패턴에 자신의 몸을 맞춰 나가는 수렴 과정입니다.
비유하자면 젠더는 연극 배우의 연기와 같습니다. 배우가 무대에 오르기 전 이미 전승되어 온 대본이 존재하듯, 우리는 사회가 제시하는 지침에 따라 끊임없이 젠더를 연기합니다. 만약 개인이 이 대본을 따르지 않으면 사회적 지탄이나 제재라는 일종의 처벌이 따릅니다. 결국 '참된 젠더'나 '본질적인 젠더'란 존재하지 않으며, 정교하게 규제된 사회적 픽션에 불과하다는 것이 버틀러의 결론입니다.
이분법적 성별 구성을 해체하고 기존 페미니즘을 넘어서다
버틀러는 더 나아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집단 존속과 번식을 위해 설계된 비자연적 연합물로 규정합니다. 정주 생활과 친족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가 특정 성별 정체성을 정답으로 규정하고 구성원에게 강제해 왔다는 뜻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버틀러가 남성중심적 철학뿐만 아니라 기존 페미니즘의 전략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던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에 맞서 여성의 권익을 옹호하고자 '여성'이라는 범주를 강하게 가시화하고 연대를 도모했습니다. 하지만 버틀러가 보기에 이는 '여성'이라는 가상의 카테고리를 고착화하여 오히려 이분법적 젠더 틀을 강화하는 모순을 낳았습니다.
진정한 해방은 '여성의 관점'을 새로 세우는 데 있지 않고, '여성'이라는 범주 자체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구성되어 왔는지를 추적하고 고찰하는 데 있습니다. 여성성이나 남성성이라는 고정된 본질을 전제하는 순간, 그 틀에 맞지 않는 수많은 개인은 다시 비가시화되고 억압받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다고 해서 모두 우연인 것은 아니다
저는 젠더가 생물학적 조건 이상으로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통해 형성되어 왔다는 버틀러의 주장에 깊이 동의합니다. 하지만 버틀러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질문에 도달합니다. 과연 역사적으로 형성된 모든 것은 순전히 우연이며 배격해야 할 대상일까요?
어떤 대상이 역사적으로 만들어졌고 다른 방식으로 구성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곧 아무런 정당성이나 필연성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인간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쌓아온 삶의 지혜 중에는 나름의 타당성과 합리성을 지녀 살아남은 규범도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동시대에 급격히 등장한 SNS 생태계처럼 역사가 짧은 사회적 조건은 피로감과 해악이 명확할 때 비교적 부담 없이 비판하고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검증의 시간이 짧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먼 과거부터 인류 역사와 함께 이어진 기본적인 성별 관념이나 가족 체계는 오랜 검증을 거친 구조입니다. 이를 순전히 무의미한 가스라이팅이나 철폐해야 할 우연으로만 깎아내리는 태도는 신중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존중과 전통적 관념의 보존은 양립할 수 있다
이러한 비판적 성찰은 결국 사회적 다원성과 전통적 가치의 양립 가능성으로 연결됩니다. 소수자나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지닌 이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포용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기존 남성과 여성이라는 전통적 젠더 틀을 고수하고 유지하려는 사회적 의지 자체를 완전히 부인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도덕과 사회적 규칙은 엄밀한 의미에서 자연적 사실이 아닌 사회적 구성물입니다. 만약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존 구조를 무효화할 수 있다면, 인류가 가꿔온 모든 도덕 체계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A(사회적 구성물임을 인지함)가 아니라 B(그것을 무조건 파괴함)라는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포용성과 오랜 역사 속에서 검증된 기본 틀을 지켜나가는 가치는 서로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라 충분히 함께 끌고 가야 할 과제입니다.
해체의 날카로움 속에 건전한 균형을 모색하며
오늘 살펴본 주디스 버틀러의 논문은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동조해 온 사회적 행위와 억압의 대본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위대하고 날카로운 철학적 유산입니다. 연기하고 있던 대본의 존재를 알게 되는 순간, 비로소 자율적인 개별자로서 스스로를 돌아볼 여지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판적 해체가 철학의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해체를 통해 자유를 얻는 것만큼이나, 인류가 축적해 온 유의미한 질서와 지혜의 정당성을 돌아보는 일 역시 건전한 삶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여러분은 주디스 버틀러가 말한 '젠더 수행성'이라는 해체적 시각과, 역사가 증명해 온 규범의 정당성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고 싶으신가요?
FAQ
주디스 버틀러가 말하는 '젠더 수행성(Gender Performativity)'이란 무엇인가요?
젠더가 태어날 때부터 고정된 생물학적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전승된 역사적 대본에 맞춰 개인이 특정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비로소 만들어지고 유지된다는 개념입니다.
버틀러는 왜 기존 페미니즘의 '여성' 강조 행보까지 비판했나요?
'여성'이라는 고정된 정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오히려 남성과 여성이라는 기존의 이분법적 젠더 틀을 공고히 만들고 그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능성을 억압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젠더가 사회적 구성물이라면 전통적인 성별 관념은 완전히 폐지되어야 하나요?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사실이 곧 무의미한 우연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먼 과거부터 인류 사회를 거치며 검증된 관념은 나름의 역사적 필요성과 정당성을 지닐 수 있으므로, 다원적 존중과 함께 그 보존 가치를 균형 있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