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존재를 단일한 물리적 입자와 법칙으로 환원하려는 형이상학적 실재론은 지식의 역사적 변동과 논리적 모순으로 인해 명확한 한계를 지닙니다.
-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의미장 존재론'은 모든 대상이 특정 규칙 체계(의미장) 안에서만 존재하며, 모든 것을 포섭하는 단일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 진실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의 유무로 '실재'를 구분함으로써, 하나의 틀로 만물을 설명하려는 독단에서 벗어나 복잡성을 수용하는 지적 태도를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연히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니 존재한다고 답하실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을 둘러싼 휴대폰, 침대, 공기, 나아가 국가나 기업 같은 개념은 과연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 걸까요? 현대 사회는 흔히 과학이나 물리학으로 밝혀낸 입자적 세상을 '진짜 존재'로 두고, 국가나 법, 기업 같은 사회적 합의는 파생된 '픽션'이나 환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주장한 관점 역시 이러한 틀과 맞닿아 있죠.
하지만 독일의 저명한 현대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은 그의 저서 『허구의 철학』을 통해 이러한 통념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물리적 우주만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근본 실재일까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단일한 '진짜 세계'라는 상상 자체가 어쩌면 증명된 적 없는 형이상학적 신화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물리적 실재론이라는 표준적 그림의 한계
오늘날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표준적인 그림은 '형이상학적 실재론(Metaphysical Realism)'입니다. 이는 인간의 믿음이나 지식과 상관없이 우주라는 단일하고 확실한 물리적 기초가 존재하며, 그 위에 우리 인간이 상상력을 발휘해 국가, 기업, 법과 같은 파생적 픽션을 만들어냈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물리적 실재를 넘어서 인간의 상상력과 믿음으로 만들어낸 국가와 종교 같은 사회적 개념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우주의 근본이라고 믿어온 물리학적 지식 자체가 역사 속에서 계속 변화해 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과거의 저명한 물리학자들은 전자기파나 중력을 전달하는 매질로서 '에테르'가 우주 공간에 확고히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당대의 관점에서는 에테르를 중심으로 우주를 설명하는 것이 완벽히 유효했죠. 하지만 현대 물리학에서 에테르는 사라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중력에 대한 고전적 개념 역시 시공간의 휘어짐이라는 상대성 이론의 시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과학을 발전시킨다 한들, 인간에게 영원히 완전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는 '근본적인 물리적 우주'가 변함없이 존재한다고 무조건 믿어야 할 논리적 근거는 없습니다.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는 불확실한 희망에만 기댄 채 '물리적 실재만이 유일한 진짜'라고 상정하는 것은 경험에 기초한 결론이라기보다 일종의 맹목적인 믿음에 가깝습니다.
왜 존재와 실재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하는가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지닌 또 다른 결정적인 문제는 바로 논리적 모순에 있습니다. 형이상학적 실재론은 '진짜 근본적 실재(물리적 우주)'와 '우리의 한계로 인해 나타나는 실재의 모습'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전제합니다.
그런데 이 '차이'라는 개념 자체는 과연 물리적인 대상일까요? 만약 차이라는 개념이 물리적 입자나 힘이 아니라면, 물리적 우주만을 유일한 실재라고 주장하는 순간 이 차이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결국 '진짜 실재'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 위해 도입한 기준 자체가 설 자리를 잃게 되는 역설에 빠지는 셈입니다.
이러한 모순은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실재라는 것은 하나의 거대하고 단일한 총체일 수 없으며, 근본적으로 다층적이고 다원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의미장 존재론' 메커니즘
가브리엘은 이러한 기존 실재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의미장 존재론(Fields of Sense Ontology)'을 제안합니다. 이 이론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모든 대상은 오로지 특정 '의미장(Field of Sense)'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질문하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은 우리 인식의 한계를 돌아보게 합니다.
의미장이란 일정한 규칙 체계를 따르는 대상들의 배열이나 영역을 뜻합니다.
- 물리적 대상의 의미장: 바위, 세포, 전자 등이 존재하지만, 유니콘이나 소설 속 인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상상 속 동물의 의미장: 유니콘이 존재하지만, 물리적 바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 과거 물리학의 의미장: 에테르라는 대상이 당대의 지식 규칙 안에서 명백히 존재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파격적인 주장은 '모든 의미장을 아우르는 궁극의 의미장, 즉 통합된 세계(World)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모든 의미장에는 빈틈이 있으며, 특정 의미장 안에서 존재하던 대상도 다른 의미장에서는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도 정치·사회적 의미장 안에서는 확실히 존재하지만, 동화 속 의미장이나 순수한 물리적 입자의 의미장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대상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과 절대적으로(모든 의미장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다릅니다. 이 세상에 모든 의미장 안에서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설 속 인물도 실재하는가: 존재와 실재의 구분이 주는 변화
그렇다면 의미장 존재론은 모든 것이 다 존재한다고 말하는 무책임한 허무주의일까요? 한라산의 돌덩이나 유니콘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브리엘은 여기서 '존재'와 '실재'를 명확히 구별합니다.
그의 시각에서 무언가가 '실재(Real)'한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해 진실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거짓의 가능성이 차단된 무차별적 상상은 실재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소설 『홍길동전』의 인물인 홍길동은 순전히 물리적인 의미장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의미장 안에서 홍길동은 결코 아무렇게나 상상해도 되는 무차별적 환상이 아닙니다. 홍길동전의 텍스트라는 기준에 의해 '홍길동은 남자이다'는 진실이고, '홍길동은 여자이다'는 거짓으로 가려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홍길동은 소설이라는 특정 의미장 안에서 실재하는 대상입니다.
반면, 어떤 기준도 없이 내 마음대로 상상하고 끝나는 순전한 허구적 대상은 거짓을 가릴 기준이 없으므로 실재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진실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맥락과 기준이 작동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대상을 실재로서 마주하게 됩니다.
단일한 세계관을 넘어 복잡성을 포용하는 지적 태도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의미장 존재론 역시 모든 것을 한 번에 총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만능열쇠는 아닙니다. 가브리엘 본인조차 이 이론 역시 하나의 의미장에 불과하며, 자신이 세운 틀 바깥에도 항상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함을 강력히 강조합니다.
하나의 원리나 단일한 의미장만을 고수하면서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한 지적 태도일 수 있습니다. 물리 법칙만으로 인간의 삶과 사회, 예술, 가치 전체를 전부 설명할 수 있다는 단순한 환원주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계는 단순히 하나의 물리 법칙으로 환원되는 가짜 환상들의 집합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각자의 맥락과 기준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다툴 수 있는 수많은 실재들로 가득 차 있는 다원적인 공간입니다. 하나의 틀에 세상을 맞추려 하기보다, 세상이 가진 다층적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정교한 지적 태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단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와, 복잡한 의미장들의 공존을 인정하는 시도 중 어느 쪽이 세상의 진실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시나요?
FAQ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말하는 '의미장'이란 정확히 무엇인가요?
의미장이란 일정한 규칙 체계를 따르는 대상들의 배열이나 영역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물리적 대상의 의미장 안에는 바위나 세포가 존재하지만 상상 속 유니콘은 존재하지 않으며, 반대로 상상 속 동물의 의미장 안에서는 유니콘이 존재하게 됩니다.
유발 하라리의 픽션 개념과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견해는 어떻게 다른가요?
유발 하라리는 물리적 생명체로서의 인간을 진정한 근본 존재로 두고 국가나 기업 등을 파생적인 '픽션'으로 바라봅니다. 반면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물리적 우주만을 유일한 진짜 실재라 보고 나머지를 파생물로 치부하는 이러한 관점(형이상학적 실재론) 자체가 근거 없는 현대적 신화라고 비판합니다.
소설 속 인물이나 가상의 대상도 정말로 '실재'한다고 볼 수 있나요?
가브리엘의 구분에 따르면 무차별하게 상상할 수 있는 대상은 실재하지 않지만, 소설 속 인물처럼 텍스트라는 명확한 기준을 거쳐 진실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대상은 해당 의미장 안에서 '실재'합니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일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요?
존재하는 모든 대상을 빠짐없이 포섭하는 하나의 궁극적인 의미장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대상이든 반드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의미장이 존재하므로, 전체를 통틀어 설명하는 단일하고 완전한 틀은 상상 속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