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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체는 쇼펜하우어가 세상을 '맹목적 의지'로 규정하고 현실의 고통에서 초월적인 평온으로 도망치려 했던 사상적 구도를 기독교의 종교적 도피와 같다고 여겼습니다.
  • 쇼펜하우어와 달리 니체는 고통이야말로 기존에 안주해 있던 현실의 껍질을 깨고 더 높은 한계로 자아를 밀어붙이는 창조적 기능과 눈부신 활력을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 감정을 완전히 걷어낸 초연한 탐구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며, 현실을 부정하고 도피하는 사상이야말로 결국 삶에 대한 공포와 혐오의 발로일 수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오늘날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철학자를 꼽으라면 단연 니체와 쇼펜하우어일 것입니다. 니체가 기독교적 도덕과 초월적 가치를 극복하고자 했던 거침없는 사상의 여정 속에서 쇼펜하우어라는 스승을 마주하고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죠. 초기 니체는 세상을 꿰뚫어 보는 쇼펜하우어의 깊이에 감명하여 거의 찬사를 보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니체는 나중에 왜 그토록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적 지점을 강도 높은 눈빛으로 비판하고 적대시하게 되었을까요? 영국의 저명한 연구자인 크리스토퍼 재너웨이의 《쇼펜하우어가 묻고 니체가 답하다》에 따르면, 니체는 매우 충격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바로 쇼펜하우어야말로 수천 년 동안 이어진 기독교와 종교적 선입견에 여전히 꼭 붙잡혀 살았던 나약한 도피 수단의 사상가라는 평가였습니다. 기독교의 해체에 앞장섰던 그가, 철저히 세속적이고 이성적으로 인간을 관찰하려 했던 무신론의 거장 쇼펜하우어를 향해 이런 일침을 던진 맥락은 무엇인지 오늘 심도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흰색 배경 앞에 한 남성이 서 있고, 그의 앞에 '니체: 쇼펜하우어는 여전히 종교적인 선입견에 남아 있는 철학자다'라는 자막이 입혀진 영상 화면.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서구 철학의 근간이 된 종교적 영향력 아래 머물러 있는 사상가로 보았습니다.


기독교적 현실 부정과 초월이라는 선입견의 은밀한 대물림

쇼펜하우어는 이 우주의 근원에 흐르는 작동 역학이자 근원적 전자기력을 합쳐 '의지'라고 말했고, 각각의 독립적인 생물들은 그 맹목적인 근원 의지가 일시적으로 부딪혔다 흩어질 뿐인 구슬들이라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자아와 타인의 엄격한 경계선에 갇혀 물질과 감정을 쫓지만 결국 이는 무수한 정신적 풍파와 잔인한 고통만을 야기할 때가 많죠. 쇼펜하우어가 권고하는 탈출구는 결국 이 거대한 작동의 맹목성을 머리로 직시하고 나를 움켜쥐고 있던 하찮은 욕구의 끈을 놓아 불필요한 고난으로부터 평정심을 탈환하는 지혜였습니다.

수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며 현대의 상업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요긴하게 활용되는 이야기지만, 니체가 감지한 진실은 사뭇 달랐습니다. 기독교를 비롯한 대개의 전통 종교는 현실을 본래적 아픔과 죄로 얼룩진 '더 낮은 차원'으로 폄하한 뒤, 천국이나 극락과도 같은 미지의 영적 평정을 약속하며 괴로운 일상에서 발을 떼도록 부추깁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가 '맹목적 의지의 고갈'과 통찰이라는 방패막이를 이용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견뎌내는 대신, 고통에서 슬그머니 뒷걸음질 쳐 다른 초월의 현실로 도망치려는 정신적 도피를 정당화했다고 간파했습니다. 아픔이 따르는 실재와 정면으로 조우하기보다 나약하게 한 발 뒤로 물러나 안위를 구하는 유약한 방식이었다는 것이죠.

고통 속에 내재된 창조적 도약이라는 가치에 대한 완전한 거세

두 천재적 인물의 가장 강력한 파열음은 바로 고통이라는 불청객을 대하는 태도의 결 방향에서 벌어집니다. 상식적인 선상에서 고통을 무찔러야 할 질병처럼 취급한 쇼펜하우어의 세계에서 아픔은 제거할 때가 곧 완전한 성공으로 칭송됩니다.

이와 달리 니체는 인생의 모진 풍파를 기꺼이 품에 끌어안는 데서 인간이 자기 완성을 일군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마음을 강인하게 연마해 나가지 못한 병든 정신 상태를 염려하며, 오히려 고통이라는 예리한 칼날 아래 숨어 있는 '창조의 활력과 가능성'이야말로 인간다움을 발양하는 고귀한 열쇠라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진정한 극복인은 고통을 맞이해 낡은 자신으로부터 눈부시게 허물을 벗고 더 억센 동기부여와 의지로 무장한 채 앞으로 향합니다. 이 아픔이 나를 파괴하지 못한다면, 결국 나의 고유한 지평선을 넓힐 건강한 디딤돌로 자라난다는 확고한 생명주의적 신뢰였습니다.

순수 인식을 가장한 마음 속 본래적 인간 증오

쇼펜하우어는 우리 인간이 날것 그대로의 지저분한 사욕을 완전히 비우고 물끄러미 직관할 때 차분히 우주의 본질적인 실체인 의지를 깨닫는다고 가정했습니다. 정념의 렌즈를 일체 통제한 거울 같은 인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로드맵이었죠.

하지만 니체는 아무런 렌즈가 끼워져 있지 않은 텅 빈 '순수한 인식'이란 실현 불가한 망상이자 기만적인 자기부정의 서사라고 지적했습니다. 사람은 개인의 감정과 주관이라는 원통한 렌즈를 등대 삼아서 비로소 주체적 사유와 성찰에 다다르는 법입니다. 만일 개인의 고유한 감정을 모두 난도질해 낸다면 그것은 존재할 수 없는 허황되고 신화적인 자기검열에만 사로잡혀 자멸하게 될 뿐입니다. 니체는 심지어 쇼펜하우어가 주장한 허울 좋은 순인식의 깊은 바닥에 본인 삶에 도사리던 불안, 인간에 대한 극렬한 혐오, 사물 전반에 감지되었던 죽음에의 위안 욕구 등이 잔뜩 투영되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삶이 차마 안겨주는 화사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적극적으로 품을 창조의 정신을 이룩하지 못했기에, 삶 전체를 고통이라 낙인찍은 뒤 평온의 도치법을 구사한 게 아니냐는 냉정한 경고입니다.


흰색 카디건을 입은 남성이 정면을 보며 말하고 있고, 화면 중앙에 붉은색 자막이 배치되어 있다.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하려 했던 철학적 시도가 오히려 개인의 감정을 투영한 산물일 수 있다는 니체의 비판입니다.


타인을 보듬는 무아의 자비와 평온의 힘이 피워낸 가치

하지만 저는 한편으로는 니체의 관념만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 일방적 정답은 아니라고 봅니다. 가차 없는 실존적 고뇌와 투쟁만을 부르짖는 니체의 척박한 영웅주의를 살아내기엔, 우리네 인간은 때로 연약하고 깊은 고요가 필요한 지성인이기 때문입니다.

욕망을 고단하게 내려놓고 타인과 나 사이에 굳건히 드리워진 모진 벽을 깨며 고요에 몸을 담글 때 느껴지는 연대감과 자비심은 쇼펜하우어가 평생토록 웅장하게 도달하고자 시도했던 심원한 인격적 보배입니다. 세상의 고비마다 절망하는 영혼을 연민으로 쓰다듬으려는 기독교나 오랜 종고적 지혜들을 나약한 패자의 몸부림으로만 밀쳐내서는 곤란하죠. 이렇듯 두 거장의 이론은 세상에 불어 닥치는 삭풍 앞에서 나를 극강으로 벼려낼 날카로운 바늘이 될 것인지, 혹은 세상을 넓디넓은 자애와 긍휼로 안식하게 할 너른 담요가 될 것인지 결정하는 개별의 '취향'일 수도 있겠습니다. 크리스토퍼 재너웨이의 저서 역시 특정 주장을 편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며, 인류 역사의 위대한 기틀을 구축한 두 사람이 어떤 다채로운 무기로 인생길을 헤쳐 나갔는지 친절하게 보여 줍니다.

오늘 글에서는 쇼펜하우어 사상과 이에 뼈아프게 칼날을 꽂았던 니체의 주장을 전반적으로 다루어 보았습니다. 고난을 피해 쉴 곳을 갈망할 것인가, 혹은 고난을 벗 삼아 앞으로 질주할 것인가. 여러분은 과연 고난이 찾아올 때 나를 지킬 어떠한 필터를 채택하고 싶으신가요? 여러분의 뜻깊은 소중한 지혜를 남겨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FAQ

니체가 쇼펜하우어의 무신론 철학을 종교적 성격이라 지적한 연유는 무엇인가요?

쇼펜하우어는 기독교의 신은 배격하는 무신론자였으나, 현실적 세계 속에서 고통에 허덕이는 것을 무조건적인 회피 대상으로 간주하며 욕망을 거둬내 평정(도피)을 구하고자 했던 구조 자체가 기독교의 초월적 구원(천국 관념)과 닮아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니체가 강조하는 '고통 속에 깃든 창조적 기능'은 실제 삶에 어떻게 유용합니까?

니체가 보기에 무조건적인 보온 상태에서 인간은 안주하고 정체하기 마련입니다. 반면 삶의 격정적 통증이나 실패를 겪음으로써 우리는 오래된 자아의 껍질을 파괴하며 새로운 내면의 활력과 치유, 성장의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감정을 배제한 '순수한 인식'이 허구라는 비판의 참뜻은 무엇인가요?

인간은 누구나 개성을 둘러싼 독자적인 감정의 울림통을 거쳐 현실을 진단하는 실존적 생물입니다. 감정을 거세해야만 보편적 진리에 가닿는다는 전제는 외려 지성의 고유한 렌즈와 추진 동력을 스스로 마비시키는 것에 조응하는 신화에 불과하다는 일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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