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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마스 홉스는 국가를 자연적인 산물이 아니라,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인공적으로 맺은 '계약의 산물'로 규정했습니다.
  • 그는 권력이 분산된 민주주의가 필연적으로 사익 추구와 대중 선동, 그리고 책임 회피로 인한 분열을 야기한다고 보아 일인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군주정을 옹호했습니다.
  • 홉스의 극단적인 절대왕정 옹호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지만, 이는 현대 민주주의 구성원들이 잊고 지내던 '시민의 책임 의식'과 '사회적 결속'의 가치를 날카롭게 일깨워줍니다.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를 인류가 도달한 가장 완벽하고 당연한 정치 체제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직면한 수많은 갈등과 분열을 목격할 때, 우리는 이 체제를 지나치게 신격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체제의 단점을 외면한 채 맹목적으로 신봉하기만 하는 민주주의는 오히려 사회를 위험한 방향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입니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는 지금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절대왕정' 혹은 강력한 일인 독재에 가까운 체제를 옹호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단순한 독재 옹호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이 너무나도 날카롭습니다. 홉스의 사상을 깊이 들여다보면, 민주주의의 가장 취약한 고리인 '책임의 분산'과 '대중 선동의 위험성'을 정조준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홉스가 던진 충격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계약론: 국가라는 거대한 인공물의 탄생

홉스 사상의 출발점은 인간의 본성을 지극히 비관적이고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나 중세 철학자들은 인간을 본래 '사회적 동물'로 보았으며, 우주의 영적 질서나 신의 뜻에 따라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이룬다고 믿었습니다. 반면 홉스는 이러한 이상주의적 환상을 완전히 거부했습니다. 그가 바라본 자연 상태의 인간은 그저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몸부림치는 잔혹한 약육강식의 세계에 던져진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수염이 있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리석 흉상

인간을 본래 사회적 동물로 보았던 고대 철학자들의 관점은 홉스의 새로운 사회 계약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지배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비관적 인간관은 역설적이게도 근대 '자유주의'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정해진 목적지나 도덕적 규율이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개인이 자기 방식대로 살아갈 원초적인 자유를 가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각자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자유롭게 움직일 때,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이성적 계산 능력이 있어 늘 미래의 불안을 대비하려 하고, 타인과 힘을 합쳐 누군가를 공격할 수도 있기에 늘 서로를 두려워합니다. 결국 홉스가 말한 자연 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자,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도의 공포 상태입니다.

이 끔찍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이 고안해 낸 해결책이 바로 '사회계약'입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해치지 않기로 약속하고, 외세의 침략이나 내부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강력한 인공적 실체인 '국가'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즉, 국가는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개인이 생존이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발적으로 맺은 인공적 약속의 산물입니다.

분열을 막는 유일한 길, 권력의 집중

그렇다면 사회계약을 유지하고 평화를 보장하기에 가장 적합한 정치 체제는 무엇일까요? 홉스는 주저 없이 한 명의 군주에게 모든 권력을 몰아주는 '군주정'을 꼽았습니다. 그가 보기에 권력이 쪼개져 있는 체제는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었습니다.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정의가 적힌 검은색 배경의 자막 화면

홉스는 권력의 분배 방식에 따라 정치 체제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습니다.


만약 국가의 최고 권력이 두 명 이상에게 나누어져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인간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계산하는 영악한 존재이기에, 필연적으로 어느 한쪽 세력에 줄을 서게 됩니다. 사회는 순식간에 두 갈래로 분열되고, 한쪽 세력이 잘못을 저질러도 반대편에서는 이를 '정의'라 부르며 옹호하는 진흙탕 싸움이 시작됩니다. 권력이 쪼개진 상태에서는 법의 엄정한 집행도, 통일된 질서 유지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홉스의 생각입니다.

반면 권력이 단 한 명에게 집중되어 있다면,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사회는 안정적인 질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홉스는 절대 권력을 가진 군주야말로 '사익과 공익이 일치하는 유일한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나라가 망하면 왕 자신도 파멸하기 때문에, 군주는 국가 전체의 이익(공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강력한 유인을 가집니다. 반면 권력이 쪼개진 민주정이나 귀족정에서는 전체 국가야 어찌 되든 당장 자기 세력의 배를 불리려는 정치가들이 끊임없이 등장하여 사익을 위해 공익을 훼손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민주주의가 주는 독약: '희망'이라는 이름의 선동

홉스가 분석한 민주정의 가장 흥미롭고도 뼈아픈 단점은, 바로 민주주의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습니다. 흔히 희망은 좋은 것이라 여겨지지만, 홉스는 희망이야말로 갈등의 가장 강력한 불씨라고 보았습니다. 누구나 권력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은 사람들 사이에 극심한 권력 경쟁을 유발합니다.

문제는 이 경쟁이 결코 생산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홉스는 인간이 '웅변(말솜씨)을 지혜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럴듯한 말로 대중을 매료시키는 선동가들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똑똑하고 지혜로운 리더로 오해하곤 합니다. 심지어 말을 잘하는 선동가 본인조차 대중의 환호에 취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게 되며, 이는 곧 권력에 대한 눈먼 욕심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누구나 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민주정에서는 실제 지혜는 없으면서 자신을 포장하는 데만 능한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게 됩니다. 이들은 대중의 감정과 사익을 자극해 표를 얻고 사회적 갈등을 부추깁니다. 홉스가 경고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오늘날 포퓰리즘과 극단적인 진영 논리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대 정치의 모습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절대 권력이 가려버린 치명적인 결함들

그러나 홉스가 옹호한 절대왕정 역시 현대의 관점뿐만 아니라 당대의 기준에서도 치명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후대의 수많은 철학자가 홉스를 비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검은 배경 앞에 놓인 황금색 천칭 저울과 하단에 자막이 표시된 화면

권력의 분산보다는 사회 계약을 안정적으로 수호할 수 있는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권력 남용을 막을 제도적 안전장치가 완전히 부재하다는 점입니다. 만약 절대 권력을 쥔 왕이 미치거나 극단적으로 해로운 결정을 내린다면 국민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해 홉스는 군주가 국민을 보호할 능력을 상실하면 복종할 의무도 사라진다고 변호했지만, 시스템화되지 않은 왕의 교체는 결국 내전이나 폭력적인 반란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는 평화를 위해 맺은 계약이 되려 또 다른 피바람을 불러오는 모순을 낳습니다.

또한 홉스는 인간을 오직 이기적 생존 기계로만 묘사함으로써, 도덕적 가치나 보련적인 선을 추구하는 인간의 숭고한 면모를 지나치게 등한시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을 때 사익과 공익이 일치하기는커녕, 오히려 친인척 비리와 국가 재산 사유화 등 상상을 초월하는 부패로 이어진 사례가 셀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은 홉스의 가정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를 증명합니다.

우리는 국가라는 계약에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늘날 홉스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가 던진 '책임'과 '두려움'에 대한 질문이 현대 사회에 큰 울림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당연히 주어져 있는 공기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일상의 안전과 평화가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과 약속 위에서 지탱되고 있는지 잊어버립니다.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현대인들은 권리만을 주장할 뿐, 정작 구성원으로서 져야 할 책임은 회피하곤 합니다. 나라가 잘못되면 정치인이나 상대 진영의 책임으로만 돌리며 책임을 미루기 바쁩니다. 홉스는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민주정의 야비함을 꿰뚫어 보았고, 차라리 책임 소재가 명확한 일인 군주정이 야비한 책임 회피를 막는 데 유리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또한 평화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 우리는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최소한의 질서와 안보의 가치를 망각한 채 개인의 물질적 풍요(배금주의)에만 몰두하기 쉽습니다. 질서와 결속이 무너진 경제적 풍요는 모래성일 뿐인데도 말이죠.

우리가 민주주의를 부정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홉스의 경고를 이정표 삼아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이름 뒤에 숨어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말만 번지르르한 선동가를 지혜로운 리더로 착각해 권력을 쥐여주고 있지는 않은가?" 권력이 분산된 체제 안에서 구성원 각자가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홉스가 예견한 분열과 파멸의 시나리오를 극복하고 더욱 단단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회의 평화를 위해 권력을 한곳에 모으는 것이 과연 효과적일까요, 아니면 아무리 위험하더라도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이 안전할까요? 현대의 탈중앙화 흐름 속에서 홉스의 철학이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을 댓글로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FAQ

토마스 홉스는 정말로 독재를 찬성한 철학자였나요?

단순한 독재 옹호라기보다는 사익과 공익이 일치하고 책임 소재가 명확한 '군주정'이 사회의 분열을 막는 데 가장 유용하다고 본 것입니다. 홉스는 권력이 집중되어 질서만 유지될 수 있다면 정치 체제의 형태 자체는 크게 상관없다고 보았습니다.

홉스가 말한 '자연 상태'와 '사회 계약'은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인가요?

아닙니다. 이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만약 국가와 법이라는 통제 수단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인간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철학적 가상 시나리오(사고실험)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홉스의 사상을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까요?

민주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인 '책임 회피'와 '대중 선동'을 경계하는 도구로 삼을 수 있습니다. 홉스의 지적처럼 정치가들이 책임을 서로 미루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말솜씨만 뛰어난 선동가를 걸러내며, 시민 스스로가 사회 계약의 주체로서 책임 의식을 갖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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