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3

용산에 아파트 지을까 공원 남길까… 해외 대도시가 푼 해법과 '녹지의 경제학'

spark_icon8분 지식
  • 서울의 녹지율은 31%로 높아 보이지만 대부분 외곽 산지에 쏠려 있어, 시민들이 일상에서 걸어갈 수 있는 생활권 도심 녹지는 매우 부족합니다.
  • 도심 녹지는 시민의 우울증을 낮추고 정신건강을 지키는 필수 인프라며, 한번 개발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비가역성을 지닙니다.
  • 용산 부지 활용은 감정적 구호 대신 주택 공급 유형별 파급효과와 공원의 사회적 편익을 수치화한 정밀한 비용-편익 분석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수도권 주택난이 심화될 때마다 반복되는 논쟁이 있습니다. 바로 용산 미군기지 반환 부지에 대규모 주택을 지을 것인가, 아니면 국가공원으로 온전히 보존할 것인가를 둘러싼 문제입니다. 한쪽에서는 집값 안정을 위해 서울 한복판 알짜배기 땅에 공공주택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미래 세대를 위한 대규모 도심 생태공원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맞섭니다.

단순한 가치관 싸움이나 정치적 구호로 결론을 내리기에는 용산 부지가 지닌 사회적·경제적 무게감이 큽니다. 싱가포르국립대 경영대학 부동산학과 이관옥 교수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감정이 배제된 객관적인 데이터와 비용-편익 분석이라고 지적합니다.

1.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용산 부지를 둘러싼 주택 vs 녹지 대립

서울 도심의 마지막 대규모 유휴부지인 용산 부지를 두고 정책적 딜레마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용산 부지에 수만 호 규모의 청년·신혼부부용 공공주택을 공급하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기존에 수립되었던 국가공원 조성 계획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도심 내 대규모 녹지를 지켜야 한다는 여론과 당장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사업 방향성은 명확한 데이터 없이 정치적 쟁점으로만 소비되는 실정입니다.

2. 왜 지금 이것이 중요한가: '서울 녹지율 31%' 통계의 착시

많은 분들이 서울은 산이 많아서 녹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서울 전체 면적 중 녹지 비율은 약 31%로 뉴욕보다도 높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거대한 통계적 착시가 숨어 있습니다.

서울시 자치구별 녹지 분포 지도와 1인당 녹지 면적 순위를 나타낸 인포그래픽이며 오른편 작은 화면에는 인터뷰 진행자가 등장합니다.

단순 통계상 녹지율은 높아 보여도 서울 내부의 자치구별 격차는 매우 큽니다.

서울의 녹지는 대부분 북한산, 관악산, 우면산 등 행정구역 외곽 산지에 쏠려 있습니다. 소고기로 치면 마블링이 골고루 퍼져 있는 것이 아니라 비계가 한쪽 구석에만 뭉쳐 있는 셈입니다. 위성 데이터 기반의 정규화 차분 식생 지수(NDVI)로 분석해 보면, 시민들이 슬리퍼를 신고 10~15분 내에 걸어서 접근할 수 있는 도보 생활권 도심 녹지는 세계 주요 도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종로구나 서초구처럼 산지를 낀 자치구를 제외하면 영등포구, 양천구, 동대문구 등의 체감 녹지율은 극도로 낮습니다.

싱가포르와 홍콩의 녹지 공간을 비교하는 발표 자료와 인터뷰 중인 진행자가 포함된 화면입니다. 좌측에는 공원 사진들이 배치되어 있고, 우측 하단에는 진행자가 출연하고 있습니다.

단순 면적 통계를 넘어 도심 속 녹지가 주민에게 실제로 얼마나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지 품질을 살피는 일이 중요합니다.

도심 녹지는 단순한 조경이나 미관용 공간이 아닙니다. 이관옥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팬데믹 당시 런던, 싱가포르, 홍콩 등지에서 녹지 접근성이 높은 거주자일수록 우울증 발병률이 유의미하게 낮았습니다. 한국에서도 코로나19 이후 우울증 초진 환자 증가율은 식생 지수가 낮은 도심 지역에 집중되었습니다. 걸어서 닿을 수 있는 도심 녹지는 시민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필수 보건 인프라입니다.

프레젠테이션 화면과 토크 진행자가 포함된 화면입니다. 왼쪽 슬라이드에는 싱가포르와 홍콩의 녹지 공간 사진들이 격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고, 오른쪽 작은 창에는 여성 진행자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거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공원 같은 녹지 공간은 직접 이용하지 않더라도 거주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줍니다.

3.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 '비용-편익 분석'과 '주택 시장 파급효과'의 부재

용산 부지 개발 논쟁의 가장 큰 맹점은 정작 중요한 경제학적 계산이 빠져 있다는 점입니다. 정책을 결정하려면 공급 규모와 주택 성격에 따른 시장 파급효과, 그리고 공원 조성을 통한 추가 편익을 정밀하게 비교해야 합니다.

  • 주택 공급의 한계와 필터링 효과: 만약 용산에 청년 임대주택 위주로 1만 호 안팎을 짓는다면, 이는 전체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 안정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제한적입니다. 주택 시장 전체의 연쇄 이동(필터링 효과)을 유도하려면 중산층 이상이 선호하는 주택이 대규모로 공급되어야 하지만, 공공 개발에서 이를 전면 수용하기는 어렵습니다.
  • 공원의 추가적 사회 편익: 용산에 공원이 생겼을 때 인근 주민뿐 아니라 서울 시민 전체에게 돌아가는 열섬 완화, 미세먼지 저감, 관광 유발, 정신건강 개선 등의 사회적 가치가 금전적으로 얼마인지 계산된 바가 없습니다.
  • 비가역성(Reversibility)의 문제: 녹지로 보존해 두면 10~20년 뒤 미래 세대가 더 시급한 용도로 전환할 수 있는 선택권이 남습니다. 하지만 한번 주택을 지어 분양하고 입주민이 생기면 이를 다시 공원으로 되돌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4. 해외 주요 대도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가

도심 내 녹지 보존과 주택 수요의 충돌은 서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런던, 뉴욕, 홍콩, 싱가포르 등 글로벌 대도시들도 동일한 갈등을 겪었으며, 입체 복합 개발과 명확한 우선순위 설정을 통해 절충안을 찾았습니다.

  1. 저이용 도심 유휴부지의 입체화: 뉴욕의 허드슨 야드나 홍콩의 MTR 차량기지는 선로와 기지창 상부를 인공 데크로 덮어 고밀도 주거·상업 시설을 올렸습니다. 기존 녹지를 훼손하지 않고 비어 있는 인프라 상공을 활용한 사례입니다.
  2. 군부지 및 골프장 전환: 싱가포르는 파야 레바 공군기지 이전 부지(800만㎡)와 케펠 골프장 부지를 활용해 수만 호 규모의 공공·민간 주택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골프장처럼 소수만 이용하던 녹지를 주택으로 전환하는 것이 대중 공원을 없애는 것보다 사회적 저항이 적기 때문입니다.
  3. 강력한 녹지 대체 규제와 타협: 싱가포르의 도버 포레스트(Dover Forest) 개발 당시, 정부와 환경단체 간 갈등 끝에 전체 부지의 3분의 1에만 주택을 짓고 3분의 2는 자연 보존 구역으로 남기는 타협안을 도출했습니다. 또한 건물을 지을 때 훼손된 녹지만큼 벽면 녹화와 옥상 정원을 의무화하고 정부가 비용을 보조하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도버 숲의 주택 개발 계획과 녹지 보존 구역을 나타내는 복잡한 지도와 설명이 담긴 발표 슬라이드, 그리고 화면 오른쪽에 인터뷰를 진행 중인 출연자의 모습.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를 수용하여 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찾은 싱가포르 도버 숲 사례입니다.

5. 앞으로 무엇을 지켜봐야 하는가: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

토지 이용의 우선순위는 명확해야 합니다. 도심 개발 부지를 찾을 때는 국공유 유휴지 → 철도·도로 상부 입체화 → 이전 군사시설·골프장 → 대중 접근성이 높은 도심 핵심 녹지 순으로 검토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가장 접근성이 좋고 가치가 높은 도심 중앙 녹지는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용산 부지의 미래는 '주택이냐 공원이냐'는 이분법적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시나리오별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 결정되어야 합니다. 주택을 짓는다면 어떤 계층을 타깃으로 몇 호를 지어야 전체 시장에 유의미한 공급 시그널을 줄 수 있는지, 공원으로 남길 경우 기존 남산·서울숲 대비 시민들에게 어떤 질적 차별성을 줄 수 있는지를 객관적인 숫자로 입증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FAQ

서울의 녹지율이 31%나 되는데 왜 도심 녹지가 부족하다고 하나요?

통계상 녹지 면적 대부분이 북한산, 관악산, 우면산 등 외곽 산지에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도보로 10~15분 내에 이용할 수 있는 평지형 도심 공원은 주요 글로벌 대도시에 비해 크게 부족합니다.

용산에 청년 임대주택을 지으면 서울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나요?

하위 가격대 중심의 소규모 임대주택 공급은 해당 입주자에게는 혜택이 되지만, 주택 시장 전반의 가격을 낮추는 연쇄 이동(필터링 효과)을 일으키기는 어렵습니다. 전체 시장 안정을 거두려면 공급 규모와 주택 유형에 따른 파급력을 면밀히 계산해야 합니다.

해외 대도시는 녹지와 주택의 충돌을 어떻게 해결했나요?

철도 차량기지나 도로 상부를 덮는 입체 복합 개발(뉴욕 허드슨 야드, 홍콩 MTR 기지), 이용률이 낮은 골프장·군부지 전환(싱가포르), 개발 시 부지 일부 보존 및 건물 벽면·옥상 녹화 의무화 등 다양한 제도적 절충안을 활용했습니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