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르무즈 해협 차단 이후 사우디아라비아가 홍해 우회로(얀부항)를 통해 한국 등 아시아로 원유를 공급해왔으나, 예멘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 해협 봉쇄를 선언했습니다.
-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핵심 해상 무역로이자 사우디 원유 수출의 핵심 길목으로, 막힐 경우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10일 이상 돌아가야 합니다.
- 중동산 중질유에 특화된 국내 정유 설비 구조상 단기간 내 대체가 불가능하므로, 운임 상승과 원유 수급 불안이 결합된 강력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우려됩니다.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었을 때, 전 세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홍해 우회로 덕분에 최악의 원유 대란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마지막 숨통이었던 홍해 입구 바브엘만데브 해협마저 예멘 후티 반군에 의해 막힐 위기에 처했습니다. 왜 이 작은 해협의 봉쇄 선언이 호르무즈 해협 사태보다 우리 경제에 더 직관적이고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오는 걸까요?
많은 분이 '중동에서 기름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호르무즈 문제 때문이겠지'라고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실제 수급 데이터를 살펴보면 이야기의 핵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습니다. 호르무즈가 막힌 동안 한국은 사우디 동부 유전에서 서부 얀부항으로 연결된 파이프라인을 거쳐 나온 원유를 홍해를 통해 들여왔습니다. 바로 그 우회로의 유일한 출구가 바브엘만데브 해협인데, 이곳이 차단되면 사우디산 원유 공급망 전체가 동시에 마비되기 때문입니다.
미군과 이란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중동 지역의 군사적 갈등이 국제 원유 공급망에 미칠 위기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1. 바브엘만데브 해협이란 어떤 곳인가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지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브엘만데브(Bab-el-Mandeb) 해협은 홍해와 아덴만을 연결하는 폭 가장 좁은 곳이 약 20km에 불과한 매우 좁은 물길입니다. 아랍어로 '밥(Bab)'은 문, '만데브(Mandeb)'는 눈물이나 슬픔을 의미해 예로부터 '눈물의 문'이라 불렸습니다. 예전부터 암초가 많고 조류가 세서 배들이 자주 침몰하던 위험한 길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해협의 경제적 가치가 폭발한 계기는 1869년 수에즈 운하 개통이었습니다. 수에즈 운하와 홍해, 바브엘만데브 해협으로 이어지는 물길이 열리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 무역로가 완성되었습니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 영국이 예멘 아덴항을 점령하고 북예멘과 남예멘이 갈라지는 역사적 비극이 시작된 것도, 맞은편 지부티에 미국, 중국, 프랑스 등 강대국들이 해군 기지를 빽빽하게 주둔시키는 것도 모두 이 해협이 지닌 막대한 전략적 중요성 때문입니다.
중동 지역의 원유 생산량은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다 특정 시점을 기점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며 해상 물류의 중요성을 부각합니다.
2.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원유 수송 우회로의 진실
보통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중동 원유 수출이 100% 멈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는 육상 송유관 파이프라인을 사전에 구축해 두었습니다. 사우디는 동부 유전 지대에서 아라비아반도를 가로질러 홍해 연안 얀부(Yanbu)항으로 원유를 보낸 뒤, 배에 실어 아시아나 유럽으로 수출해 왔습니다.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 위기 이후 중동 전체 원유 생산량은 평시 일평균 약 2,300만 배럴에서 1,000만 배럴 수준으로 감소했으나, 서방 국가들이 받을 수 있는 유효 물량의 약 70%는 얀부항과 UAE 파이프라인 같은 우회로를 통해 차질 없이 수송되고 있었습니다. 홍해라는 우회로가 존재했기에 전 세계 원유 수급이 급격한 붕괴를 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멘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사우디 관련 선박 봉쇄를 선언하면서 이 핵심 우회로가 봉쇄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 우회로마저 잘린다면 지금까지 버텨주던 원유 수급의 70% 우회망이 일시에 소멸하는 셈입니다.
산악 지형이 밀집한 호르무즈 해협 일대는 방어와 공격 측면에서 상당히 위험한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3. 후티 반군을 군사적으로 제압하기 어려운 이유
'미군이나 연합군이 들어가 후티 반군을 쉽게 제압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멘의 지형적 특성과 역사적 경험을 돌아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후티 반군의 본거지인 북예멘 지역은 험준한 산악 고원지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과거 영국 전차 부대도 진입에 실패했고, 이집트군, 사우디 연합군, 심지어 미국의 대규모 공습 작전조차 이 산악 지하 기지들을 완전히 파괴하지 못했습니다.
후티 반군은 험준한 산악지대와 깊은 골짜기 지하 기지에 미사일과 무인 드론 포대를 숨겨 두고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는 선박을 타격합니다. 미국이나 연합군이 입구를 폭격하더라도 곧바로 다른 출구를 뚫고 나와 다시 미사일을 발사하는 구조입니다. 더욱이 이들은 최근 사우디의 사나 국제공항 활주로 공습에 대한 보복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한층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외부 군사 세력이 물리적으로 해협의 안전을 100% 보장하기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원유 수입처 다변화 노력과 실제 수입 비중 변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한국 경제와 정유업계에 미치는 파급력
2026년 상반기 국내 원유 수입 통계를 보면, 전체 수입량 중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 비중은 32%로 여전히 독보적인 1위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차단된 상태에서도 사우디산 원유가 안정적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얀부항을 통한 홍해 우회로 덕분이었습니다. 만약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완전히 차단된다면 사우디산 원유의 국내 입항 자체가 원천 봉쇄될 위험에 처합니다.
문제는 한국 정유업계의 설비 구조입니다. 국내 정제 시설은 중동 산지에서 주로 생산되는 중질유(Heavy Crude Oil) 처리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미국산 경질유 수입을 일부 늘린다 하더라도 중질유를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으며, 수급선을 단기간에 변경하는 것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또한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단순한 원유 수송로를 넘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공산품 해상 물류의 핵심 거점입니다. 홍해가 막히면 모든 컨테이너선과 유조선은 아프리카 대륙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우회해야 합니다. 희망봉 우회 항로는 항해 기간을 최소 9일에서 10일 이상 증가시키며, 이는 해상 운임 급등, 수송 연료비 증가, 전 세계 공급망 지연으로 이어져 강한 스태그플레이션 압력을 가하게 됩니다.
5. 지평을 넓히는 정세 해석과 대응 조건
바브엘만데브 해협 위기를 해석할 때 핵심은 단순히 '후티 반군의 사우디 공격'이라는 단편적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것입니다. 후티 반군은 이란의 강력한 대리 세력(Proxy)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 입구를 동시에 흔듦으로써 전 세계 물류와 인플레이션을 인질로 잡는 전략적 카드를 쥐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향후 경제 흐름과 시장 변동성을 관찰할 때 유의해야 할 구체적인 조건과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사우디의 패트리어트 요격 미사일 재고 상황입니다. 사우디는 약 2,800발에 달하던 패트리어트 미사일 재고가 연속된 교전으로 400발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입니다. 요격 미사일 재수급이 이루어지는 2027년 중반까지 사우디는 적극적인 전면전을 피하려 할 것이며, 이는 후티 반군이 해협 주도권을 쥘 가능성을 높입니다.
둘째, 기업과 정유사의 우회 항로 물류비용 전가 속도입니다. 원유 수급 자체의 완전한 차단보다는 희망봉 우회에 따른 운임 및 보험료 상승이 먼저 물가에 반영됩니다. 공급망 지연에 따른 원자재 및 에너지 비용 인상을 고려한 신중한 자산 배분과 기업들의 재고 관리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FAQ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막히면 희망봉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나요?
희망봉 우회 항로는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운항 거리가 대폭 늘어나 운송 시간이 9~10일 이상 더 소요됩니다. 이는 선박 운임 상승, 유류비 증가, 물류 지연을 유발해 유럽과 아시아 전반의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을 크게 자극합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바브엘만데브 해협 봉쇄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호르무즈 해협은 주로 페르시아만 내부의 원유 및 가스 수송에 집중된 경로인 반면,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수에즈 운하로 연결되어 유럽과 아시아 간 모든 공산품과 물동량이 지나가는 글로벌 핵심 해상 무역로입니다. 또한 사우디의 유일한 원유 우회로라는 점에서 파급력이 다릅니다.
한국 정유업계는 사우디산 원유를 미국산 원유로 바로 대체할 수 없나요?
한국 정유사의 고도화 정제 설비는 중동 산지의 무거운 원유(중질유)에 맞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미국산 원유는 주로 가벼운 경질유이므로 정제 설비의 효율성과 제품 수율 측면에서 사우디산 중질유를 완벽히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